<경제칼럼> 금융지주회사법의 자회사 출자한도 규정 사문화

지난 8월 21일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이 개정·공포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올 4월에 개정된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상의 동일인 주식 보유한도 완화(4% → 10%), 금융주력자 개념의 도입, 그리고 대주주에 대한 금융감독 강화 등의 조치에 맞추어 그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시행령 개정내용도 5월 31일에 이미 입법예고된 것이었기 때문에, 모법의 개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별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5월 31일의 입법예고안에 없던 사항이 슬그머니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 제46조의 자회사 출자한도 규정(‘금융지주회사는 당해 금융지주회사의 자기자본을 초과하여 자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즉 자기자본의 100% 이내)에 대한 예외인정 사유가 새로 추가된 것이다.

구 시행령에서는 자회사가 부실화되어 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 손자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경우, 금융지주회사 설립 당시 한도를 초과한 경우 등 세 가지 사유에 한해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하여 130%까지 자회사 주식 소유를 허용하되(시행령 제25조 제1항의 1, 2, 3호), 2년 내에 초과분을 해소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존의 예외인정 사유 세 가지 외에 자회사를 완전 자회사화하거나 유동화전문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경우(4호)와 주식스왑을 통한 출자(5호)도 예외로 추가 인정되었다. 문제는 주식스왑을 통한 출자, 즉 ‘출자액 증가와 동시에 금융지주회사의 자기자본이 증가하여 자회사에 대한 출자총액을 금융지주회사의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이 높아지지 아니하는 경우’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개정 전 법령에 따르면, 자회사 출자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금융지주회사는 원칙적으로 자회사를 신규 편입하는 것이 금지된다.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는 금융지주회사가 무리하게 자회사 확장을 시도하다가 금융그룹 전체를 부실화시키고 나아가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의 취지이다. 외국의 경우 금융그룹이 위기에 처한 원인이 자회사의 부실보다는 주로 지주회사의 부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되는 만큼,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는 대주주 신용공여한도 규제와 함께 금융지주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치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가 사실상 사문화될 위기에 처했다. 어떤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 출자비율이 100%를 초과한 상태에서 새로 자회사를 편입하기 위해서는 일단 유상증자를 통해 자회사 출자비율을 100% 이내로 떨어뜨린 다음 100%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신규출자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지주회사의 재무건전성과 신규편입 자회사의 사업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식스왑을 통한 출자를 예외로 인정하게 되면, 이 모든 것이 어긋난다. 예컨대, 출자비율이 120%(= 120/100; 즉 자회사 출자액 120, 자기자본 100)인 금융지주회사 A가 자기자본이 20인 금융기관 B를 인수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주식스왑이란, 금융지주회사 A가 신주를 20만큼 발행하여 금융기관 B의 주주에게 주고, 대신 금융기관 B의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경우 금융지주회사 A의 출자비율은 116.7%(= 140/120)로 여전히 100%를 초과할 뿐만 아니라, 이 경제거래의 실질은 금융지주회사 A가 사모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한 다음 그 사모 인수자(금융기관 B의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되사주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방식을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의 예외로 인정해준다면,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는 금융지주회사라도 경영권에 위협이 발생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자회사 확장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시장의 평가와 감시를 우회하면서….

물론 자회사 출자비율 100%가 금과옥조는 아니다. 즉 100% 이내면 건전한 금융지주회사고, 100%를 초과하면 위험한 금융지주회사라고 단정할 이론적·실증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100% 비율 자체가 문제라면, 법을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금융지주회사법 제 46조)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시행령을 바꾸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이처럼 중요한 시행령 개정 사안을 별도의 입법예고 절차도 없이 슬그머니 끼워 넣어 통과시키는 것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다. 참여연대가 이 사안을 재경부에 질의했을 때, 그 답변은 ‘주식스왑의 경우에는 현행 법체계에서도 허용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있었는데, 그동안 명문화되지 못해서 혼란이 있었던 것을 바로잡자는 취지이고, 따라서 그렇게 중대한 변경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별도 입법예고는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 전문가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금융지주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장치인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를 사실상 사문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 어떻게 현행 법체계 하에서도 허용될 수 있으며, 이것이 중요한 변경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 변경인가.

한편, 시행령 개정의 배경도 의심스럽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금융지주회사가 2개 있다. 그 중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 구조조정 등의 사유로 예외를 많이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자비율이 115%에 이르고 있다. 혹시 이번 시행령 개정이 우리금융지주회사를 배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널리 퍼져 있다. 우리금융지주회사가 대형 증권사와 생보사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인 만큼 그 재무건전성 유지는 곧 국민의 세금부담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규제는 투명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에서 규정한 것을 시행령으로 사문화시키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필요하다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법을 바꾸어야 한다. 시행령 개정으로 누더기가 된 자회사 출자한도 규제의 원상회복을 촉구한다.

김상조(한성대교수,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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