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 한도 부활, 이 역시 “눈가리고 아웅”인가?

출자총액 한도 부활 관련 당정협의 결과에 대한 참여연대 성명서

1. 지난 8월 25일 정재계 간담회에서는 출자총액한도를 2000년 4월 1일부터 재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9월 9일 국민회의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정협의를 거쳐 그 구체적인 내용 및 일정을 결정·발표하였다. 즉 30대 재벌의 타회사 출자총액을 순자산 대비 25%로 제한하되, 그 초과분에 대해서는 1년간의 해소시한(2002년 3월 말)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2. 계열사간 출자는 소수 지분의 재벌총수가 수십개의 계열사를 독단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수단이며, 그룹 외부로부터의 현금유입 없는 가공자본을 만들어냄으로써 재벌의 열악한 재무상태를 은폐하고, 나아가 한 계열사의 사업위험을 그룹 전체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계열사간 출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한도 부활은 재벌개혁을 위한 핵심적 조치이다.

3. 그러나 9월 9일 당정협의 결과는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의 것으로, 과연 정치권과 정부가 재벌체제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요한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4. 첫째, 출자 총액한도의 부활시기가 너무 늦어 재벌 구조조정의 압박수단으로서의 실효성이 의문이다. 지난해 출자총액제한이 폐지된 후 불과 1년여만에 재벌그룹 계열사간 순환출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출자총액제한을 2001년 4월 1일에야 부활하고 또 그때까지 늘어난 출자총액을 1년 동안 인정해 줄 경우 재벌기업들은 점진적으로 순환출자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2001년 4월까지 출자를 늘릴 수 있는데 까지 늘릴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초과분 해소시한을 늘리는 한이 있더라도 출자총액제한을 내년 4월 1일까지 부활하여야 한다. 또한 해소시한 중에도 단계적인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그 이행을 강제하여야 한다.

5. 둘째, 순자산 대비 25%의 출자총액한도 비율 자체가 너무 높다. 25%의 비율은 95∼96년경 30대 재벌이 큰 무리 없이 근접했던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단지 IMF사태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것일 뿐, 재벌체제의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1999년 4월 현재 30대 재벌의 순자산 대비 출자총액 비율이 32.1%인 점을 감안하여, 25%(해소기간 2년) → 15%(해소기간 2년) 등의 순차적 감축 일정이 제시되어야만 한다.

6. 셋째, 당정협의 결과에서 명시된 바와 같이, 지주회사는 그 성격상 출자총액한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지주회사는 타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주요 사업목적인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회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지주회사제도는, 지주회사와 자회사간의 수직적 연결고리는 강화하되 자회사와 자회사간의 수평적 연결고리는 느슨하게 함으로써, 시너지효과 확보와 이해상충 방지라는 두 가지 충돌하는 목적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기업조직 형태이다. 따라서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출자총액한도를 적용하지 않지만, 자회사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한 출자총액한도를 부과하여야 한다. 즉 자회사에 대해서는 25%보다 낮은 비율을 적용하고 또 예외 인정도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주회사제도가 구조조정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재벌체제를 개혁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완조치 없이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기존의 재벌체제를 겉모양만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7. 넷째, 너무나 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또 예외인정기간도 너무 길게 설정함으로써 출자총액한도를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예컨대, 구조조정과정에서의 예외인정 사유로서 ① 빅딜에 따른 통합법인에의 출자, ② 기업분할에 따른 출자, ③ 외자유치를 통한 계열분리 기업에의 출자, ④ 비주력업종 지분정리를 위한 일시적 출자 등을 예시하면서, 이에 대해 최대 8년(최초 5년, 3년 연장 가능. 2001년 4월부터 시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0년)의 유예기간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재벌들의 출자 중에서 이상의 예외인정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더군다나 재벌체제 개혁이라는 것이 10년을 그냥 내버려두어도 될 정도로 한가한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아닌가?

특히, 철도차량·항공기·석유화학 업종에서의 빅딜에 따른 통합법인에까지 예외를 인정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재벌들의 중복과잉투자의 결과 총체적 부실에 직면한 이들 업종에 부채탕감과 출자전환이라는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결국 공적자금(국민세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책임추궁은커녕 출자총액한도 예외인정이라는 또다른 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어떠한 논리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8.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억제, 변칙상속 규제, 순환출자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 금지 등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새롭게 제시하였던 재벌개혁 과제들은 건전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원칙들조차 구체적인 정책·제도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크게 왜곡·후퇴하고 있다. 이번 공정거래법 상의 출제총액한도 부활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외형적으로만 재벌개혁일 뿐 내용적으로는 재벌과의 타협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회의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진정한 재벌체제 개혁의 길로 매진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에 속을 국민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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