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경제강좌 2009-07-03   2889

[시민경제교실]금산분리 완화는 이명박정부의 굴레

금산분리 완화는 이명박정부의 굴레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

금산분리 논의에 중대한 전환점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7일에 발표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에 금산분리 원칙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비은행권에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행업과 산업을 분리하는 은산분리에 머물지 않고 문자 그대로 금산분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어찌할 것인가? 아직도 미국이 금산분리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는 헛된 주장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이제 무슨 논리로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개정을 변호할 것인가?

시계를 잠시 작년 10월 중순으로 되돌려 보자. 금융위는 작년 10월 13일 ‘은행주식 보유규제 및 금융지주회사 제도 합리화방안(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및 같은 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자료의 참고자료 격으로 ‘은행주식 보유규제 합리화 방안’이라는 보도참고자료도 발표했다. (이 입법예고안이 훗날 한나라당의 박종희 의원안으로 변모하여 국회로 갔다가 정무위 날치기 끝에 지난 4월 30일에 은행법은 통과되고 금융지주회사법은 부결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는다. 금융위는 또한 같은 날 삼성특혜법으로 알려진 또 다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은 훗날 공성진 의원안으로 변모하여 국회로 간 뒤 현재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금융위는 이 두 자료에서 미국이 금산분리를 완화했다는 주장을 폈다. 구체적으로 입법예고안 제3쪽 상단의 박스에는 “금산분리의 모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은행주식 보유규제를 완화”했다는 주장이 있고, 이에 연결하여 “은행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의결권 있는 주식을 15%(☜ 기존 10%) 이내에서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준)의 사전 승인 없이도 자유롭게 보유 가능”하도록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도참고자료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약간 다르게 주장되어 있다. 보도참고자료 제14쪽의 ‘참고 5’라는 도표의 미국 부분에는 “이사선임 등을 통하여 은행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 FRB 등의 사전승인 없이 의결권 있는 주식을 15% 이내에서는 자유롭게 보유 가능”하다고 하여 이사선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하고 있다.

이 두 자료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작년 9월 22일자 미국 연준의 정책의견서(policy statement)를 인용했다. 필자는 이 정책의견서를 구해서 그야말로 한 문장 한 문장 밑줄을 긋다시피하며 정독했다. 그러나 이 정책의견서 그 어디에도 미 연준이 금융위기에 따른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이제까지의 정책을 변경하여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다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주장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정책의견서는 은행의 자본 확충과는 관계가 없고, 그 기본 문제의식은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은행에 확고한 지배주주가 있는 상황에서 소수 주주로 참여한 다른 회사의 소수주주권을 어떻게 금산분리 원칙과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미국의 금산분리 원칙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만일 산업자본이 소수 주주로 은행에 투자한 경우 은행을 사실상 지배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결권 등 주주권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소수주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 보호와 금산분리 원칙의 준수라는 두 개의 정책목표를 적절히 조화시킬 필요가 생기는데 이 정책의견서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 연준은 소수주주가 은행의 이사선임 과정에서 1명 정도를 자신이 선임하는 것은 소수주주권의 차원에서 용인하지만 2명 이상을 선임하는 것은 지배력의 행사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이 문건은 어떤 경우에 소수 주주의 행위가 지배력의 행사로 판정받는가에 대한 다양한 경우를 예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주관적이다. 이사를 선임해도 지배력의 행사로 판단받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사를 선임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경영에 간섭하면 지배력의 행사로 판단 받을 수 있다. 이 정책의견서에는 심지어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라도 그것을 많이 보유하면 지배력을 행사할 유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이 문건이 미국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한 대표적인 논거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한 적이 없다. 우선 미국 금산분리 규제의 기본인 미국의 은행지주회사법상의 금산분리 규정은 최근 들어 개정된 적이 없다. 그리고 미 연준은 이를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오히려 미 연준은 은행지주회사법상의 금산분리 규제에 유사은행(소위 nonbank bank, 공식적으로 은행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은행업을 하는 소규모 금융기관)이라는 규제사각지대가 있는데, 이런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미 연준의 스코트 알바레즈 고문이 2007년 10월 4일 미국 상원에서 공식적으로 증언한 내용이다.

최근에 발표된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은 정확히 이런 추세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금융개혁안의 34쪽을 보자. 거기에는 이번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부실화하여 청산되거나 미국 국민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던 베어스턴스, 리만 브러더스와 같은 투자은행, 그리고 AIG와 같은 보험회사의 이름이 나온다.  금융개혁안은 이들 비은행 금융기관이 유사은행을 지배함으로써 금산분리 규제의 그물망은 회피하면서 예금보험이라는 공적 안전망에 무임승차했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유사은행을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끌어내서 은행과 동등한 규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2007년에 있었던 알바레즈 고문의 의회 증언과 정확히 똑같은 주장이다.

이 금융개혁안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경제에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거대 금융조직에 대해서는 설사 그 조직이 은행을 지배하는지와 무관하게 금산분리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선진국의 규제당국이 뼈저리게 경험한 것은 너무 규모가 크거나(too big to fail), 다른 경제부문과 복잡하게 연관된(too connected to fail) 금융조직의 경우 그것이 부실화하더라도 시장원리에 따라서 퇴출시키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대마불사의 불가피성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의 규제당국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부실한 대마를 퇴출시키겠다는 비현실적인 이상론을 접고 그 대신 대마에 대해서는 강력한 감독을 부과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런 감독강화의 중요한 꼭지중의 하나가 이들에게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를 똑같이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남의 나라 얘기는 그만 하고 우리 상황을 돌아보자. 우리나라에는 예금보험이라는 공적 안전망이 있다. 주로 은행과 같은 수신 금융기관만을 보호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예금보험은 은행, 증권, 보험, 종금 등을 폭넓게 커버하고 있다. 따라서 은행은 물론이고 비은행 금융기관들도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정도로 규모가 크거나(too big) 다른 경제부문과 연관이 많은(too connected) 경우, 공적 안전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규모의 금융기관이 우리 금융권에 체제적 위기를 야기할 수 있을까? 2003년의 신용카드 사태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한때 신용카드사들은 여신전문업이고 예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체제적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3년에 우리는 삼성카드나 엘지카드를 청산처리하지 못했다. 청산은커녕 적기시정조치도 발동하지 못했다. 왜 그랬던가? 이들 기관이 망가지면 체제적 위기가 온다는 엄포 때문이었다.

신용카드사가 무너져도 체제적 위기가 오는 나라에서 그렇다면 증권사나 보험사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증권사는 자본시장통합법에 의해 지급결제망에 포함된다. 다른 경제부문과의 관련성이 매우 크게 된 것이다.(too connected) 보험사 특히 생명보험회사들은 문자 그대로 공룡이다.(too big) 삼성생명은 삼성그룹 전체의 핵심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금융권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모두 예금자 보호법상의 부보 금융기관이다. 잘못될 경우 그들의 부실은 즉각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안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증권회사나 보험회사에 대한 처방은 명료하다. 이들에게 모두 은행에 준하는 금산분리 규제를 가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회사는 금융기관 경영에서 손을 떼든지, 아니면 산업자본 활동에서 손을 떼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삼성특혜법으로 잘 알려진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안은 재벌기업에만 적용되는 특혜조항을 넣어 재벌 계열사가 금융투자지주회사나 보험지주회사를 만들겠다고 계획만 세워 승인 받으면 그 때부터 즉시 산업자본을 자회사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6월 9일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부결시켰던 한나라당의 박종희 의원안을 다시 부활시켰다. 은행과의 형평을 맞추겠다는 것이 그 논거였다. 그러면서도 은행보다 더 산업자본에 대한 소유규제를 완화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거대 금융조직에 대한 규제를 특별히 더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은행보다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더 완화하는 것을 형평성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금산분리 완화 주장이 이명박 정부의 굴레라고 생각한다. 어쩌다가 이것이 대선공약에 들어가면서 논리도 맞지 않고, 한국적 현실과 맞지도 않고, 국제적 규제체계의 추세도 거스르는 궁지로 몰려가게 된 것이다. 덕분에 금융위에 있는 우수한 공무원들은 감독체계의 현대화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이 때에 되지도 않는 궤변을 짜내느라고 밤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명시적으로 포기할 때가 된 것이다. 특히 금융위 수뇌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적어도 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또 무엇이 국제적 추세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깝게는 부하직원을 덜 고생시키고 멀게는 본연의 임무인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제고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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