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센터 칼럼(ef) 2013-10-08   469

[기고] 경제 민주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 접어야

[경제 민주화 워치] <11> 물 건너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

송원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업경제학과 부교수

이번에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돈이 도는 경제 민주화’라고 해서 재벌 대기업 친화적인 경제 민주화를 표방할 때나, 경제 민주화 ‘조기 완료’ 선언을 할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긴 하다. 얼마 전 발표된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령을 보면 박근혜 정부, 집권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마치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엄청나게 규제하는 것처럼,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협박을 일삼는 언론과 학자들이 과연 경제 민주화란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심이 될 정도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경제 민주화를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제 민주화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이라는 희미한 의식이 있을 때인 7월 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기대에 못 미치기는 했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큰 방향은 그런대로 쓸 만한 것이었다. 특수 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부당한 행위의 범위를 확대했고, 과거 규제에서는 ‘현저히’ 유리한 조건이던 것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꾸어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특수 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가 거래 단계의 중간에서 실질적인 역할 없이 수수료만 챙길 수 있도록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하는 통행세 규제도 포함되었다. 또 특수 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가 상당히 유리한 조건임을 알고도 다른 기업의 지원을 받을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총수 일가(동일인 또는 그 친족) 또는 이들이 보유한 계열 회사와 거래를 하면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재벌 총수의 절대적 지배력을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지배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따라서 이걸로는 총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는 따지고 보면 여러 경제 민주화 조치들 가운데 가장 최소한의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진 데는 그동안 재벌 그룹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재벌이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불공정 거래를 일삼고 골목 상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지역 경제 성장과 고용 확대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아 지역 경제는 물론 국민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방해한다는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벌 계열사들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를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우리 재벌들의 성장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일감 몰아주기는 2대를 지나 거의 3대로 경영권을 이어가려는 대부분의 재벌들에서 재벌 2, 3세들은 과거 재벌 총수가 누리던 최대 주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또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한 출자나 순환출자를 통해서 누리던 제왕과 같은 통제권을 행사하기가 만만치 않게 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승계 과정에서 부당성, 편법성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경제 민주화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개정안 이후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입장을 고수하겠다’고 공언하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계 의견을 청취하였다”고 한 말은 결국 재계의 로비와 새누리당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 지분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로 정하여 규제 대상을 대폭 축소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연간 거래총액이 거래 상대방 매출액의 10% 미만으로서 50억 원 미만인 경우를 규제에서 제외하겠다던 것을 매출액의 12% 미만, 금액으로는 연간 200억 원 미만인 경우로 변경했다. 이렇게 할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208개 계열사 중에서 86개가 제외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설명으로는 12%는 대기업 집단의 평균 내부 거래 비중이고, 연간 200억 원은 공정거래법상 내부 거래 공시 대상 거래 규모 기준이어서 이런 기준을 적용했다고 한다. 부당과 편법을 평균이라는 개념으로 가려버린 절묘한 꼼수다.

부당 내부 거래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정상 가격과 차이가 7% 미만이면서 연간 거래 총액 50억 원 미만이면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이번 입법예고안에서 상품·용역의 경우에는 연간 거래 총액 200억 원 미만이면 적용이 제외되는 것으로 예외를 크게 넓혔다. 이뿐만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의 재량 범위도 스스로 축소하고, 기업들이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다. 이는 원래 개정안에는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효율성, 보완성, 긴급성 등을 이유로 내부 거래를 한 현대글로비스, 에스케이씨앤씨(SKC&C) 등도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두 회사는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지탄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계열사들이다.

누더기가 되어버린 규제에 대해서마저 반발하여 규제 대상 계열사 지분을 50%로 더 늘리자고 하는 재계를 정부는 설득하겠다고 한다. 이미 이 시행령만으로도 빠져나갈 계열사들은 다 빠져나가 이미 실효성 없는 규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말이다. 하기야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국민들에게 직접 나서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판에 일개 정부 부처 수장이 왜 처음처럼 하지 못했냐는 비난을 두려워하랴? 경제 민주화라는 얘기가 있었기나 했는지 이제 의식마저도 없는 이 정부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 본 기고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의 ‘경제민주화워치’ 칼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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