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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금융센터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제질서를 위해 활동합니다

  • 기타
  • 2000.07.25
  • 455
(편집자주)지난 7월 5일, 참여연대 2층 느티나무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있었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와 아주레미콘 운송기사협의회가 회사를 상대로 부당한 지입차주제도의 개선을 위해 지난한 싸움 끝에 얻은 소중한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파티에서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인 김칠준 변호사는 '이 싸움은 단순히 아주레미콘 운송기사와 회사간의 싸움이 아니라 노동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처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한 싸움이었으며, 고질적인 건축비리의 모순을 깨나가기 위한 싸움'이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아주레미콘의 운송기사들은 이제 암암리에 수많은 건설현장에 조달되고 있는 불량레미콘에 대한 감시자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이 소중한 싸움과 승리의 기록을 운송기사 중 한 분의 수기를 통해 살펴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영현이라는 전 아주레미콘 운송기사이며, 올해 46세입니다.

1999년 4월 우리가 회사에서 당하는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다 당시 방송을 통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단체로 알려진 참여연대를 찾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주산업이라는 골리앗 같은 회사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가 그동안의 싸움의 과정에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의 단결투쟁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깨지고 또 깨지다가 정말로 힘에 부쳐서, 도움을 요청할 단체들을 찾다가 결국 참여연대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알면 큰일나기 때문에 은밀하게 진행 시켰습니다. 참여연대가 좋은 단체인줄은 알고있었지만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입하는 것인지도 몰라 며칠이 걸려 안국동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단체회원에 가입하고 그곳을 나와 종각까지 걸으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 문제는 한마디도 참여연대 분들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바쁜 참여연대 분들께, 마치 우리들의 문제로 누를 끼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우리 다시 한번 가볼까?" "너 혼자 가면 안되냐?" 누구도 앞서서 참여연대 사람들에게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총대를 메려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이게 내 개인일 이야? 나 혼자 가게?" "그럼 말은 네가 해"

"그래, 알았어". 그래서 우리는 다시 어려운 걸음으로 참여연대를 방문하여, 나이 많으신 상담원에게 '우리는 불공정한 계약서(노비문서) 때문에 억울하니 법적인 문제를 검토해 주십시오'하며 말문을 열어 약5분간 면담 후 '검토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면담을 마치자 "휴~우", 우린 마치 큰일이나 해낸 것처럼 기뻤습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반드시 노비문서를 철폐하고 말겠다는 굳은 각오를 새롭게 하며 헤어졌습니다.

날은 자꾸 가는데 참여연대에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자, 우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지만 재촉하는 것 같아 미안하여 전화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상담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우리는 좋은 소식이 올까 기다리던 중 드디어 참여연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참여연대 느티나무, 첫 만남에서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인 김칠준 변호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우리의 사정을 자세히 들은 후 위로의 말도 잊지 않으며, "계약서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지요. 힘을 내셔요." 우리는 감격했습니다 시민단체와 변호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 이였습니다. 참여연대가 도와준다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희망과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여연대 등산소모임 산사랑에 나가 우리를 이해해주시는 기우봉회장님, 정병일 총무, 안철택 교수, 이판도 선생을 만난 것은 행운 이였습니다. 일을 서서히 진행시키면서 아주레미콘 운송기사들로 이루어진 상조회 회원들에게, 참여연대 회원에 가입한 사실을 공식 발표하자, 회사는 예상대로 우리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참여연대 탈퇴를 종용하는 등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단호히 거부하며, 8월28일 회사가 약속한대로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자, 회사측은 경영질서 파괴행위라며 계약 해지시키겠다고 협박하며 참여연대를 탈퇴하면 운반비를 인상해 준다고 회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참여연대가 무섭긴 무서운가 봐" 비록 회사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참여연대의 위력을 실감하며 우리는 오랜만에 웃으며, 계약서를 공정거래 위원회에 제소하였습니다.

그러던 9월, 첫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김대희 총무의 해고.

이일을 기화로 분노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회사와 싸우기 시작했으며 회사는 시간 끌기 작전과 김빼기 수법을 병행하면서, 일부 상조회원 들을 부추기고 와해공작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시간끌기작전을 하면서 협상을 거부하였습니다. 투쟁시기를 놓치고 비수기인 겨울이 시작되자 힘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집행부 4명 해고, 급여압류, 보증보험 집행, 약속어음 집행과 고소, 고발을 병행하여 우리를 궁지로 몰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힘을 잃기 시작했고, 이탈자가 발생하기시작하면서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죽을 맛이다,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우리가 필사 즉생의 각오로 다부지게 마음먹고 달려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아무 성과 없이 변화 없이 겨울을 보내기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앞장서서 회사를 상대로 동료를 부추겼으니, 결과가 나쁘면 어쩐다? 잠은 오지 않고 마시지 못하는 술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고통 속에 겨울이 지나자, 새 상조회 회장 강의원 선배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인천, 수원공장 동지들에게 단합 할 것을 설득하고 힘을 내어 다시 싸우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물고늘어질 작정으로, 강의원선배와 의논했습니다. 강선배와 나는 뜻이 잘 맞습니다. 기운이 새로 솟고 희망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김칠준 변호사는 우리가 또 주저앉을까봐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올 3월,4월 인천, 수원 여성회관을 빌려 김변호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회원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참여연대회원들이 점점 알게되었습니다. 회원광장에 우리의 이야기가 자꾸 알려지면서 사무실에서 만나는 회원들이 따듯한 위로를 해주시며, 박원순 사무처장님도 "잘될꺼예요." 하며 만날 때마다 힘을 주셨습니다. 이옥숙님이 지어주신 우리의 별명 '낙타아저씨'는 우리의 사정을 이리도 잘 아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그러던 차에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레미콘기사 상조회원 전원 120명에게 정식으로 계약해지통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거리로 나아가 필사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도 동참하였습니다. 70일동안 돈을 못 벌어가고 앞날이 불안했지만, 한 명도 흔들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가도 한 명도 낙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우리마음에 가득하였고, 피말리는 협상과정 중 웃고 울리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모두가 추억이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결사적인 싸움과 참여연대의 지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다시 복직하게 되었고, 많은 정당한 요구안들이 관철되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일만 생각납니다. 여러 회원들의 격려, 아낌없이 들어오는 투쟁기금, 우리기사를 다루어주는 한겨레신문과 추적 60분, 열성회원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이 빚을 어떻게 갚을지.... 13년만의 승리, 감격, 이 영광을 참여연대와 참여연대 모든 회원여러분께 돌립니다.

우리 일이라면 최우선이고 투쟁기금과 시간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상에 이런 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 안철택 교수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과감한 작전, 정병일 총무의 헌신적인 노력, 이옥숙 여사의 끝없는 사랑과 열정, 안진걸 간사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동자에 대한 사랑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정말 신이 납니다. 동료들은 그때를 되돌아보고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아우성들입니다. 깨달음의 아우성, 기쁨의 아우성, 봉사의 아우성....
김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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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을 읽으니 그때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 일이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근데 정병일 선생님을 어디 계신지, 아시는 분 안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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