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LG카드 추가지원과 매몰비용

금융계에는 반년에 한 번 꼴로 치르는 정기행사(?)가 있다. 바로 신용카드사 지원문제다. 작년 3월에 카드사 문제가 불거진 후 거의 반년에 한 번씩 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금융기관들은 관치의 검은 손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곤 한다.

이번 가을에도 서서히 그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산업은행의 국감 보고서에 나타났듯이 11월부터 채권금융기관간에 약 1조 내지 2조 사이의 금액을 LG 카드에 추가출자할지의 여부를 놓고 힘겨루기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약간 달라진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금감위와 재경부가 교대로 전면에 나섰음에 비해 이번에는 산업은행이라는 꼭두각시를 앞에 내세웠다는 점,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민간 채권금융기관쪽의 선봉을 맡았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현재 중도 낙마한 상태라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 봄에 자금지원을 하면서 “더 이상의 추가 자금지원은 없다”고 약속한 내용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지원을 종용하는 산은측(혹은 정부측)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현재 LG카드는 자본잠식 상태이기 때문에 이대로 두면 조만간 적기시정조치를 얻어 맞고 상장폐지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이제까지 어렵게 자금지원을 해 왔는데 여기서 조금만(1조 내지 1조 2천억) 돈을 더 넣으면 자본잠식 상태를 면하고 상장요건을 지킬 수 있는데도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소탐대실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그 골자로 보인다. 한편 지난 봄에 철석같이 약속했던 “추가출자 없음”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이다.

그러나 이런 산은의 논리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먼저 이런 논리는 경제원론의 제일장에 나오는 매몰비용(sunk cost)의 개념과 잘 부합되지 않는다. 매몰비용의 함의란 이미 집행된 비용은 그 크기가 얼마이든지간에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지나간 것은 그대로 흘려 보내라(Let bygones be bygones.)”는 것이 경제학의 원리이다. 이런 원리에서 보면 이제까지 채권단이 얼마를 지원했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추가지원 여부는 오로지 지금 지원하는 금액이 앞으로 그 지원액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한다. 만일 이득이 충분히 크다면 지원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

결국 추가지원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투입 금액 대비 최종 수입이 충분히 짭짤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누구도 사전에 양자의 크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점에 관해 어설프게나마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산은이 추가지원과 관련하여 계속 다른 민간 금융기관들을 압박하고 있고 민간 금융기관은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필자는 이런 현상은 현재 상황에서 추가지원이 “짭잘한 수입”을 보장하는 돈장사가 안된다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왜냐 하면 만일 이것이 장사가 되는 문제라면 민간 기관이 돈을 아낄 이유가 별로 없고, 또 설사 민간 금융기관이 무슨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다고 해도 산은이 단독으로라도 이런 좋은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기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추가지원이 실제로 손실을 초래할 개연성이 매우 큰 행동이라면 문제는 제법 복잡해진다. 지난 봄에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명시적으로 발표했던 “추가출자 없음”이라는 약속 때문이다. 이런 약속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기고 손실을 초래할 개연성이 매우 큰 자금지원을 감행하는 것은 금융기관에 자금을 맡긴 투자자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중에서 이런 사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결국은 관치금융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책당국이 팔을 비틀면 비트는대로 따라하고, 고객에 대한 의무 위반 가능성 역시 정부가 어떻게 해결해 주겠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정책당국은 과거의 실수를 얼버무리기 위해 무리수에 이어 더 큰 무리수를 두는 등 끝없는 수렁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다.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그것이 금융업이 발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 이 글은 한경비즈니스 466호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전성인(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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