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주가조작 수사관련하여 대통령께 드리는 글

대통령님. “재벌을 개혁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지난 8·15 경축사를 기억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현대측은 “투자목적으로 현대전자의 주식을 매입한 것이며 주가관리를 하였을 뿐이며, 현재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등 실제 현대 계열사나 대주주가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모두 허구입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2134억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2159회의 시세조정주문을 통해 894만주의 현대전자 주식을 매집하여 주가를 조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최대 149회에 걸쳐 일일분할매수를 한 바 있습니다. 정상적인 투자목적의 주식매입이고, 주가관리라면 이런 방식을 동원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는 실명 및 가차명계좌를 이용하여, 가장매매, 통정매매, 장마감직전 고가매수주문, 허위매수주문 등 주가조작에 통상 동원되는 여러수법으로 현대전자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이는 명백한 불법적인 주가조작행위입니다.

또 현대측은 현재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주가조작을 통해 아무런 이득을 얻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현대전자는 수차례에 걸친 막대한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하였고, 현대증권도 현대전자와 관련한 손실을 시장에 전가하는 등 막대한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특히 정주영씨 80만주, 정몽헌씨 351만주, 현대건설 2079만주, 현대자동차 753만주등 정씨일가와 현대계열사는 보유중이던 현대전자의 주식을 매각하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습니다. 현대는 대주주가 매각한 주식대금을 현대전자 증자대금으로 전부 다시 납입한 것 처럼 주장하지만, 대주주 및 현대계열사들의 주식매도는 거의 대부분 보유주식전량을 매각한 것으로 이 역시 명백히 사실과 다름니다. 한마디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주식매집을 통해 주가를 올리고, 정주영일가와 다른계열사는 주식을 매도하여 이익을 챙기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여전히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익을 얻은 것이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도 주가조작으로 인해 막대한 평가차익을 취했다는 점에서 현대의 변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입나다.

재벌체제야말로 IMF 경제위기의 주된원인이며, 재벌을 개혁하지 않고는 경제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내외의 공통된 견해이며, 이는 대통령께서도 여러 차례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이번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이야말로 재벌체제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증권회사가 총수와 계열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주가조작을 주도한 것은 재벌의 제2금융권 소유에 따른 폐해가 어느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또한 주가조작에 여러 계열사가 가담한 것도 재벌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 조차 모를 정도인 재벌총수일가가 IMF 경제위기로 대다수의 국민이 실업과 소득감소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불법적인 주가조작을 통해 이익을 챙겼다는 것은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도덕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고통받는 국민에게 또 다시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번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은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되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경제를 생각하여 사법처리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외국인투자등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조달의 상당부분이 주식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주가조작행위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는 오히려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임으로써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건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갑자기 청와대 비서진이 현대를 옹호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9월 3일 박주선 법무비서관등 청와대 관계자들은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 현대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며 현대를 옹호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검찰은 정주영일가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이익치 회장에게 모든 혐의사실을 덮어씌우는 억지 결론을 언론에 흘리면서 정주영일가는 무혐의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청와대의 압력으로 이익치 회장마저도 구속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보도에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연 청와대 비서진들이 시장경제의 기본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케하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수사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전부터 저희 참여연대에는 현대의 구명로비에 대한 제보가 접수된 바 있습니다. 검찰은 물론 특히 정치권과 청와대에 대한 로비가 집중적으로 전개되고 있고,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서울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것 보다도 집요한 로비공세를 뿌리치는 것이 더 힘들다”고 실토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작년 이맘때 쯤 저희는 ‘개혁통신’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님께 최순영 신동아 그룹회장의 외화도피사건에 대한 로비의혹에 대해 간곡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그 사건의 경우에도 98년 7월 당시 수사를 담당한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혐의사실을 확인하고, 사법처리방침을 결정하였음에도 최순영회장측의 정치권과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과 김규섭 서울지검 3차장등 검찰고위간부에 대한 집요한 로비로 인해 사법처리가 지연되고, 최순영 회장이 사기사건의 피해자로 둔갑할 뻔 하였습니다 .

재벌체제하에서 일개 전문경영인이 자신의 회사도 아니고 다른 계열사의 자금 수천억원을 총수의 재가는 고사하고 해당 계열사의 대표이사도 몰래 개인적 관계로 자금을 동원하여 불법적인 주가조작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제는 국익을 고려하여 이익치 회장을 불구속하겠다는 것은 결국 재벌의 로비에 국민의 정부가 굴복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더구나 옷로비사건등으로 인해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의심받아 특검제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또 다시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여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님. 만일 세간의 의혹대로 사건이 축소, 은폐된다면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국민의 정부의 정당성은 근본적으로 훼손될 것이며, 대통령님의 재벌개혁의지는 국내외적으로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십시오. 법앞에 어떠한 성역도 없다는, 재벌총수일가도 그 예외일 수 없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십시오.

경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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