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아무나 하나?

‘증권관련집단소송제법’으로 소송 못하는 이유



‘증권관련집단소송제법’은 입법취지대로 소액다수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 구제수단이 될 것인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입법이 확실시되고 있는 ‘증권관련집단소송제법’을 둘러싼 논란이 심상치 않다. 시행시기를 비롯해 대상기업, 소송비용, 소송대리인 요건 등 여러 부분에서 정부가 낸 입법안에 대해 양당은 물론 시민단체들도 이견을 내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남소우려, 즉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남발해 기업경영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에 남소는 커녕 소송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상정된 정부안을 놓고 따져보자.

K씨는 투자했던 A기업주가 폭락해 투자액 대부분을 잃었다. A기업의 ‘허위 유가증권신고서 및 사업설명서’에 속아 투자했던 것. K씨와 같은 피해자가 수백명이다. 손실액이 가장 큰 K씨가 대표당사자가 되어 ‘증권관련집단소송’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송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법에 의하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만이 소송대상’이 되므로 이에 다소 못 미치는 A기업은 소송대상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감리결과에 따르면 분식회계의 경우만 보더라도 적발건수의 90% 이상이 자산 2조 원 미만의 중견기업의 경우다. K씨는 이러한 현실에서 법이 규정하는 대상기업의 규모제한은 불합리한 것 아닌가라고 항변하고 있다.

L씨는 자산2조원 이상인 B기업에 투자했으나 분식회계사실이 밝혀져 투자액의 상당부분을 손해봤다. 그러나 L씨 역시 증권관련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소송비용이 문제였다. 동일한 피해자 200여 명을 기준으로 하면 손해배상액이 200억 원이 넘는다. 그에 따라 대표소송자인 L씨가 지불해야할 인지대는 3천5백만 원이 넘는다.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을 일간신문에 게재해야하기 때문에 광고비와 우편을 사용한 고지비만 해도 최소 2천만 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손해액 산정을 위한 감정비와 변호사비까지 더하면 수천만 원이 더 필요하다. 소송제기를 하는데 L씨를 비롯한 소송인들이 투입해야할 돈은 6-7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P씨는 투자했던 C기업의 주가조작으로 투자액을 대부분을 손해봤다. 동일한 피해자인 수백여명의 소송인단을 모아 소송에 제기하기로 했으나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다. 복잡한 사안이기때문에 정상주가 산정을 통한 손해액 산정을 위해서는 전문가 감정이 필요하다. 그에 따른 비용이 수천만 원이나 들었다. 그 다음에는 수천만 원의 소송비용을 마련해야한다. 인지대와 고지비용을 비롯한 소송비용을 예납해야 법원은 소송허가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변호사 선임이 문제였다. 이 분야의 전문변호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을 모두 찾아다녔으나 거절만 당했다. 이미 수임 한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소송대리인은 “최근 3년간 3건”을 넘어설 수 없다. 수소문 끝에 1건이 남아있는 변호사를 찾아냈다. 그러나 P씨의 고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담보에 해당하는 공탁금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무고와 악의에 의한 소송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공탁금제도에 의해 P씨는 손해배상액수에 비례하는 공탁금을 내야 소송이 가능하다. 악의가 아니라 ‘C기업의 불법행위’가 소송제기의 원인이라하더라도 일단 소송제기를 위해서는 공탁금을 내야하는 것이다. 감정비용과 소송비용으로 이미 억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P씨는 몇 억이 될지도 모를 공탁금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P씨는 소송을 포기했다.

분명히 하자. ‘증권관련집단소송제법’은 소액다수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해줄 법이다. 그런데 법대로 하면 소송이 불가능하다면 이 법을 왜 제정해야 할까.

특히 ‘공탁금제도’에 대해서는 남소방지를 넘어서 제소금지 장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주주의 피해구제를 위한 소송제도로 비교할 수 있는 ‘주주대표소송’을 보면 남소우려가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제기한 4건(제일은행, 삼성전자, LGCI, (주)대우)의 주주대표소송말고는 단 1건도 없었던 것. ‘증권관련집단소송제법’의 입법이 임박한 현 시점에서, ‘입법취지’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따져볼 일이다.
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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