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각을 상실한 법무부 장관의 업무보고, 전면 재검토되어야

경영권 방어제도는 경영자에 대한 의무강화와 보조 맞추어야
법무부의 역할은‘어설픈 경제살리기’아닌
‘불편부당한 경기규칙의 확립’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어제(1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2008년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법질서 확립과 경제살리기』라는 기본방향 속에는 민주국가의 기본 법질서를 훼손하고 경제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법무부가 어설프게 “경제살리기”의 첨병 역할을 자임하면서 발표한 소위 “기업하기 좋은 법제정비”에는 기업형사책임의 완화, 대안없는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 등이 포함되어 있어 불편부당한 경기규칙의 확립과는 거리가 먼 일방적인 기업부정 감싸기를 도모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위원장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주, 경영자, 근로자, 채권자, 소비자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경제주체의 권한과 책임을 치우침 없이 규정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김경한 장관은 이런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방적인 기업 총수 편들기에 앞장선 이번 법무부의 경제 분야 업무계획을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법무부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회사의 형사책임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명분으로 직원의 위법행위 시 회사도 함께 형사책임을 부담하게 되어 있는 양벌규정의 개선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방향은 언어적 수사의 화려함에도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한 규제의 유효성을 현저하게 감소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법치국가에서 모든 경제주체는 법규범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회사는 스스로 법을 준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소속 직원에게도 마땅히 법 준수의 필요성을 철저하게 교육하고, 준법감시인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준수 여부를 감독해야 한다.

실제로도 많은 회사가 각종 사내 연수를 통해 관련 법규범을 소개하고 그 준수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회사의 형사책임을 축소한다는 것은 직원의 위법행위를 개인 차원의 일탈로 간주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법무부는 항상 “법질서의 확립”을 주요 정책방향의 하나로 강조하면서, 이 같은 책임축소 정책이 회사나 그 소속직원의 위법행위를 줄이고 법질서를 확립하는데 부합할 것이라고 믿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의 어설픈 경제 살리기 몸짓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독약증권(Poison Pill)이나 차등의결권 제도와 같은 소위 경영권 방어제도의 도입 재추진 정책이다. 경영권 방어 제도의 도입 문제는 이사의 의무에 대한 법적 통제장치의 완비 여부, 시장 규율의 유효성 정도, 현존하는 회사 비리의 유형과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해야 할 문제이지 단순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편향된 문제의식으로 성급히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정부의 상법개정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여러 차례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바 있고 그 논의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2006년에 입법예고 된 상법개정안에서 독약증권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법무부는 특히 그동안 적대적 인수합병 사례가 얼마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존재 또는 부존재가 경제적 효율성을 얼마나 증가 또는 감소시켰는지에 대한 아무런 실증 연구 결과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부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주식인수를 제도 도입의 논거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연구결과에 근거하지 않은 채 섣부르게 외국자본 대 국내자본의 대결구도 속에서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법무부가 또 다른 시책으로 추진하려고 하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외국인정책의 추진”이라는 정책방향과도 양립하기 어려운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법무부가 “인권 수호의 보루”라는 본연의 역할을 뒤로 한 채 “경제 살리기의 첨병”을 자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설사 법무부가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것이 일부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방식이 법무부에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기업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한 경영진의 입장만을 고려하는 것으로 경제 살리기가 성취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도래하지는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기업에 투자한 주주와 채권자의 권리, 근로자의 권리, 소비자의 주권이 서로 적절하고 균형 있게 보호될 때 비로소 도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균형 잡힌 경기규칙을 제정하고 유지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를 자임하는 법무부가 진정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는 법무부가 설익은 경제 살리기 정책의 문제점을 진정으로 자각하고 이번 업무보고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참여연대논평원문.hwp[법무부보도자료] 2008년 업무계획.zip

※ 포이즌 필(Poison Pill, 독약조항, 독약증권) : 적대적 M&A 위기에 놓인 기업이 택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전략 중의 하나다.  대규모 유상증자나 임금 인상, 제품 손해배상 확대, 기존 경영진 신분보장이나 거액 퇴직금 지급(황금낙하산, Golden Parachute) 등의 방법을 통해 의도적으로 비용지출을 늘려 매수자에게 손해를 볼 것이라는 판단이 들게 함으로써 매수 포기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독약을 삼킨다는 의미에서 ‘포이즌 필’이란 이름이 붙었다. 최근에는 기존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대규모 신주를 발행하여 M&A 기업이 확보한 지분을 희석시킴으로써 인수를 막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 차등의결권 : 보통주 1주당 1의결권을 원칙으로 하는데, 1주당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말한다. 이 차등의결권 주식은 보통주와 같이 발행되는데, 대주주가 차등의결권을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적대적 M&A 등에 기존 대주주의 방어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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