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4-06-02   1556

[기록이 없는 나라③-3] 힘있는 부처일수록 문서관리 엉망

청와대, 법무부, 행정자치부, 국무조정실 등 국가정책의 핵심 기관일수록, 그리고 ‘힘 있는’ 부처일수록 국가기록관리는 낙제점 수준이었다.

정부 부처 대부분의 기록관리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들에서는 기록의식마저 극히 희박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15개 중앙부처의 기록물담당공무원이 어처구니없게도 단 한 명이었고 문서고 등 기록 인프라까지 극히 취약했다. 전 부처에 만연된 ‘기록불감증’과 열악한 설비가 기록의 빈곤화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청와대부터 낙제점=최고의 핵심권부인 청와대조차 기록물관리법의 사각지대였다. 청와대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에 대해서도 “2005년 중 배치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늦어도 올해 말까지 최소 1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는 기록물관리법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영구보존문서량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자파일형식이어서 산출이 어렵다’는 군색한 변명으로 응답을 피해갔다. 문서고의 평수도 15평에 불과했다. 청와대 국정기록비서관실 배이철 계장은 “5년 단위로 주인이 바뀌는 청와대의 특수성 탓에 문서고로 들어오는 문서량이 적어 큰 평수가 필요치 않다”고 해명했다.

기록관리정책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 역시 법을 위반하는 파격을 보였다. 행자부는 기록물폐기심의위원회를 ‘서면심의’로 대체, 전문요원의 심사 없이 문서를 버리고 있었던 것. 실제 행자부의 경우 2002년 폐기대상 기록물 6137권이 한 권도 남김없이 모두 폐기됐다.

특히 1996년 김영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신경제장기구상 총괄정책’을 비롯,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관계철(96년 생산) ▲유흥업소 잔존부조리 척결관련 문서(〃) ▲국가재난관리계획수립서(〃) 등이 이때 ‘보존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폐기처분됐다. 참여연대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은 “행자부부터 국가기록물을 ‘휴지 버리듯’ 폐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서면심의만으로도 2002년과 2004년 각각 29만6383권, 12만4049권이나 처분, 폐기물 수위를 차지했다. 감사원 측은 “타부처와 달리 감사대상기관들이 제출한 각종 영수증과 보존연한이 5∼10년인 감사증거자료의 폐기물량이 많은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룡 부처의 ‘초미니 서고’=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도 사정이 비슷했다. 국조실의 경우 문서고의 면적이 8평으로 조사대상기관 중 가장 적었고 기록물담당인력도 1명뿐이었다. 또한 폐기심의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아 기록관리체계가 ‘부재중’임을 입증했다.

교육 100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인적자원부도 문서고 평수가 10평이고 최근 3년간 폐기심의위원회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자료관도 2005년에야 설치한다는 게 교육부의 답변이다.

나머지 메이저 부처들도 ‘기록인프라’가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법무부와 조만간 부총리 격상이 예고된 과학기술부가 각각 14평, 15평에 불과했고 환경부와 노동부는 각각 20평, 29평에 머물렀다. 신생 부처인 여성부도 아예 문서고가 없었다. 반면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295평, 61평으로 비교적 넉넉했고 경찰청과 대검찰청도 60평, 44평에 이르렀다. 명지대 김익한 교수(기록관리학과)는 “부처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제때 이관되지 않고 캐비닛에 쌓여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록물의 이관·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처는 일 안한다?=기획예산처는 2002년 이후 영구보존기록물을 한 건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는 예산당국의 업무 중 국회나 국무회의에서 심의한 안건(기록물관리법 15조)이 하나도 없고 연간업무계획도 없다는 얘기다. 예산처가 영구보존문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기록물관리법을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일 많기로 소문난 재정경제부도 연간 영구보존문서가 고작 37권에 불과했고 ▲공정거래위원회(5권) ▲산업자원부(34권) ▲정보통신부(39권) ▲국세청(22권) 등도 기록문서의 잣대로만 따진다면 ‘일하지 않는 부처’인 셈이다.

경제와 업무효율성에 밝은 부처일수록 기록자산이 경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문화관광부와 농림부는 영구문서가 각각 2503권과 542권에 달한다고 응답해 대조를 보였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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