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3-09-25   2453

“같은 공무원끼리 어떻게 고발하느냐”, 낙서같은 기록물…. 책임자 문책도 안 해

<참여연대 /미디어다음 공동기획> 사라지는 국가기록 ③

공동기획

국가 기록물이 무차별 폐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부터 정부 각 부처의 기록물 관리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국가 기록물이 무단으로 폐기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법령이 정하고 있는 폐기절차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9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록물 폐기의 문제점을 폭로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참여연대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으로 기록물폐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구체적 사례를 좀 더 꼼꼼이 살펴보고 그 원인과 개선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디어다음 / 신동민기자 media_dongmin@hanmail.net

문서 목록 작성에 성의가 없다

▲ 행정자치부의 기록물 폐기 목록. 보존기간 만료일, 심사의견, 심의결과, 폐기처분일 등이 모두 공란으로 되어있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정부 각 부처와 서울시의 기록물 폐기 목록을 입수, 검토한 결과 상당수가 법에 정해진 폐기 지침을 무시한 채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재정경제부의 기록물 폐기 목록 중에는 생산부서가 기록되지 않은 문서가 다수 발견됐고, 심하게 흘려 쓰는 바람에 판독 자체가 힘든 문서도 있었다. 아예 폐기 날짜조차 기록하지 않거나 보존기간 만료일도 기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기록물의 이름을 제대로 기입하지 않아 기록물의 가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교육부 기록물 폐기 목록엔 ‘OECD NETWORK A’ , ‘중도 탈락 대책’, ‘장애일지’처럼 문서 생산부서만 식별할 수 있는 암호 같은 목록명이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은 교육부 외에도 행자부, 건교부, 서울시 폐기목록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록물 폐기 목록을 들여다보면 폐기과정에서 심의 절차가 무시됐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행정자치부 폐기목록에는 반드시 작성되어야 할 ‘폐기 심사 의견’, ‘폐기 사유’, ‘폐기 심의결과’, ‘폐기 처분일’, ‘확인’란 등이 비어있어 폐기 절차가 완전히 무시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문서관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부분의 정부 부처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며 “심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보존기간만 확인하고 일괄 폐기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정부기록보존소 독립 되야”

▲ 행자부는 “보존기간 10년인 문서는 보존 기간이 지나도 폐기하지 말라”는 정부기록보존소의 지침을 어기고, 지난해 5월 보존기간 10년짜리 문서를 251건 폐기했다. 재정경제부의 기록물 폐기 목록. 일부 목록은 문서 제목을 알아보기 힘들 게 기록돼 있다.ⓒ미디어다음 김준진
정부 기록물 관리가 왜 이렇게 허술하게 이뤄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정부 기록물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정부기록보존소가 행자부 소속 조직이라는 점이 기록물 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자부 공무원들은 소속 조직이니까 무시하고, 재경부, 교육부 등 부처들은 ‘타부처 일’이라는 생각에 무시한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기록보존소가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정부 각 부처가 생산하는 기록물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 법적인 조치를 취하려 해도 공무원끼리 고발을 하는 격이어서 처벌 규정이 있어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실제로 정부 내 몇몇 부처에서 “보존 기간 10년, 20년 기록물은 (보존 기간이 초과됐어도) 향후 제정, 고시될 ‘기록물 분류 기준표'(2004년 시행)에 따라 재분류 실시 후 폐기 실행”이라는 정부기록보존소의 ‘기록물정리/이관 지침’을 완전히 무시했지만, 관계자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기록물관리법을 위반했을 경우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지만, 정부기록보존소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각 행정부처의 위법 사실을 고발한 적이 없다. 보존소 측은 “같은 공무원끼리 어떻게 고발하느냐”며 “시민단체나 일반인이 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법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이 때문에 정부 관계자는 “정부기록보존소가 대통령 직속기관 등으로 독립되어야 제대로 관리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 인력 확충 시급

▲ 교육인적자원부 한 사무실 출입문 옆에 쌓여 있는 문서들. ⓒ미디어다음 김준진
정부 각 부처에 기록물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와 인력이 거의 없다는 점도 기록물관리가 허술한 원인 중 하나다. ‘기록물 정리/이관 지침’에는 “기록물을 폐기 권한은 관할 기록물 관리 기관의 장이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기록물을 관리하는 부서를 갖춘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폐기심사는 전문요원 또는 자료관 지정 담당자가 하고, 폐기심의회는 5인 이내로 구성한다”는 규정도 유명무실하다.

참여연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민원과장이 폐기 심의관 업무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고, 폐기심사의견에서는 ‘보류’라고 기재해 놓고 실제로는 폐기된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들의 인식 전환도 시급한 문제다. 정부기록보존소조차도 기록물관리에 미온적인입장이다. 정부기록보존소는 관리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정부 각 부처의 기록물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데도 소극적으로 대처하고있다.

한 기록물 관리 전문가는 “2000년에 기록물관리법이 시행되었지만 유예되었던 기록물 등록분류편철이 2004년 전면적인 전자문서유통의 실시로 인해 온라인을 통한 기록물관리와 문서의 등록분류 등이 시행되지만 공직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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