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3-09-25   4204

“기록 없는 정부, 책임감도 없다” –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김익한 교수 인터뷰

<참여연대 /미디어다음 공동기획> 사라지는 국가기록 ④

공동기획

국가 기록물이 무차별 폐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부터 정부 각 부처의 기록물 관리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국가 기록물이 무단으로 폐기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법령이 정하고 있는 폐기절차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지난 9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록물 폐기의 문제점을 폭로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참여연대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으로 기록물폐기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구체적 사례를 좀 더 꼼꼼이 살펴보고 그 원인과 개선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media_smlee@hanmail.net

“기록이 남아야 책임감도 따른다”

▲ “사소한 기록이라도 폐기는 신중하게” ⓒ미디어다음 김준진
“기록을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는 책임감도 떨어집니다.”

김익한 교수(명지대 기록관리학)는 정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동료 학자들과 함께 국가기록관리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

“수십년 동안 지속됐던 정통성 없는 정권이 집권을 하고, 비정상적인 공적 행위를 하다 보니 관련 기록을 남기기는커녕, 기록을 없애는 데 급급했습니다. 공적 업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담당자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되는데, 기록을 통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관료들이 “국가 기록물을 불법적으로 파기하거나 처음부터 아예 기록을 만들지 않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기록을 기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5공 정권을 세운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활동과 관련한 자료는 국보위 현판이 유일하다는 것. 모든 것을 구두로만 지시하고 아무런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위정자들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길이 막혀 버렸다.

이러한 현실은 흔히 조선시대 기록물과 비교된다. 김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기록 자체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관리하는 방법까지 체계적이었다”며 “지금은 자료량 자체로는 조선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냥 쌓아놓을 뿐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않고 있어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록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기록은 후세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매개물이기 때문에 사소한 기록이라 할 지라도 폐기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국장급이 책임자인 산하 조직의 말을 누가 듣느냐”

▲ “지금은 과도기. 점차 나아질 것” ⓒ미디어다음 김준진
김 교수는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기록보존소의 위상 제고 ▲기록의 생산, 유통, 관리, 공개를 통일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전문성 있는 인력 채용 등을 제시했다.

“행정자치부 산하 2급 소속기관장(국장급)이 책임자인 정부기록보존소의 권고를 누가 듣겠습니까. 소장은 적어도 차관급은 되어야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각 부처로 나뉘어 있는 기록 관리 업무를 일원화하여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김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거시적 관점에서 기록을 생산하려는 의지와 이를 기피하려는 인습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는 과도기적 상황”이라며 “미약하지만 정부기록보존소도 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있고 관련 전문가의 수도 늘고 있어 상황이 훨씬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폐기된 기록물 어디로 가나?

미디어다음 / 신동민 기자 media_dongmin@hanmail.net

정부 각 부처에서 폐기되는 기록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될까. 취재 결과 폐기 기록물들은 대부분 재향군인회가 수거해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향군인회는 산하업체인 향우실업을 통해 kg당 수십원 정도를 각 부처에 지불하고 폐기록물을 수거해 재활용한다.

재향군인회가 정부로부터 수거해 오는 폐지 비용은 한국물가협회가 발표하는 폐지 가격을 참고해 정해진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는 “폐기 기록물에 여러 종류의 종이가 섞여 있어 순도가 떨어지고, 운반도 우리가 하기 때문에 물가협회가 발표하는 가격 보다는 조금 더 싸게 폐기 기록물을 수거한다”고 밝혔다.

물가협회 기준으로 갱지 폐지의 kg당 기준가는 90원 정도로, 재향군인회는 이보다 조금 싸게 국가 기록물 폐지를 매입해 처리하고 있다는 게 재향군인회측의 설명이다. 1톤 기준으로 볼 때 9만원이 채 안되는 꼴인 셈이다. 정부부처에서 나오는 폐기록물의 양이 폐지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라 수익은 극히 미미한 편이다.

폐기과정에 대해 정부의 기록물 관리 전문가는 “각 부처 문서 관리자들도 폐지가 파쇄되는 지, 소각되는 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을 지 모를 국가 기록물이 폐품과 섞여 처리되는 것이 국가 기록관리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과거에는 폐기되어야 할 기록물이 헌책방에서 거래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 기록 보존 전문가는 “폐기록물이 부처내에서 소각되거나 파쇄되는 줄 알고 있었다”며 “중요한 국가기록물이 법에 규정된 심의절차 없이 폐기되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 기록물들이 한낱 종이폐지로 취급돼 최후의 운명을 맞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그는 이어 “폐기된 국가기록물의 마지막 운명을 보면 왜 국가 기록물이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고 보존되어야 하는 지를 명백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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