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4-06-01   2861

[기록이 없는 나라 ②] 곰팡이 슬고… 찢어지고…쓰레기 취급

<현장르포>누더기 된 국가기록

<참여연대-세계일보 공동기획> 국가 행정기관의 기록물 관리실태를 추적하기 위해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이 공동 현장조사에 나섰다. 지난달 21일과 25일 두 차례 실시한 이번 현장조사 대상 기관은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의 교육인적자원부·행정자치부와 정부과천청사의 보건복지부·환경부·법무부·노동부 등 6개 기관이었다. 중앙 행정부처가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문서고를 외부에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편집자주

“솔직히 기록물 문서고는 그냥 ‘창고’라고 알면 됩니다.”(정부과천청사 모 행정부처의 기록물담당 공무원 K씨)

취재팀과 참여연대가 확인한 기록물 보관현장은 우리나라 기록물 관리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을 단적으로 대변했다. 국가기록물 곳곳에 곰팡이가 슬어 부스럭거렸고, 누렇게 탈색된 기록물들은 아예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돼버렸다. 국가 대계(大計)가 고스란히 적혀 있을 기록물들은 창고 기능으로 전락한 문서고 한귀퉁이에서 이처럼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기록이 없는 나라②-1] 폐지공장 방불…소중한자료 썩어가

#1. 곰팡이 핀 행정자치부 기록물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의 행정자치부. 행정자치부 문서고를 찾기 위해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마자 습기 가득한 음지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20평 넓이의 문서보존실을 열어보니 빨간 노끈으로 묶어놓은 각종 서류뭉치들이 쌓여져 있었다.

▲ 행정자치부 지하 1층 문서고. 각종 기록물더미가 노끈으로 묶인 채 벽면 한쪽에 쌓여져 있다.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기록물 상당수는 기록물 가장자리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어지거나 너덜너덜해졌다. “지하 문서고에 환풍기조차 없다는 건 기록물을 죽이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는 참여연대 전진한 간사의 지적에, 담당 공무원은 “다른 행정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행자부 문서고엔 보존기간이 ‘영구’나 ‘준영구’로 분류된 기록물이 상당수였다. 사료적 가치가 높은 이들 기록물이 해당 기관에 보관돼 있다는 것 자체가 기록물관리법 위반이다. 67년 자연공원과에서 생산된 기록물엔 보존기간이 ‘영구’라고 적힌 글씨가 뚜렷했다. 이런 기록물이 어림잡아도 100권은 넘어보였다. 국가기록물 관리의 모범이어야 할 행자부부터 기록물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2. 도서실 구석의 교육부 문서고

전 간사와 함께 교육부 문서고를 찾았다. 교육부는 아직 정식 ‘자료관’을 갖추지 못했다.

자료관은 기록물만 단순 보관하는 ‘문서고’보다 한차원 높은 혁신적 시스템으로, 해당 기관에서 생산된 기록물을 수집·보존·분류하는, 기록물 관리의 ‘종합 터미널’이다. 교육부는 정식 자료관이 아닌, 일반 ‘자료실’(간행물 등을 보관하는 일종의 도서관)에 불과한데도 ‘자료관’이란 문패를 버젓이 달고 있었다.

▲ 정식 자료관이 아닌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자료관'이란 팻말을 붙여놓았다

자료실 한구석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문서고는 모빌렉(이동식 보관시설) 시설 16개가 전부였다. 모빌렉에 꽂힌 노란색 파일의 기록물은 대부분 ‘보존기간’이 적시되지 않은 상태였다.

#3. 쓰레기자루 쌓인 복지부 문서고

지난 25일 정부과천청사에 위치한 복지부의 기록물담당 직원을 찾았다. 그는 처음부터 “지난해 말 배치됐지만 기록물관리법 내용도 잘 모른다”고 시인했다.

다른 부처와 마찬가지로 복지부 문서고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하 1층에 있었다. 문서만 따로 보관한 15.5평의 제2문서고. 오른쪽 구석에 노란 자루 6∼7개가 우선 눈에 띄었다. 폐기처분된 기록물들이 자루에 담겨진 채 문서고 한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황당한 모습이었다.종이 기록물의 최대 적은 ‘습기’다. 전 간사가 “문서고엔 항온·항습기를 갖추도록 돼있는데 왜 없느냐”고 묻자 “2000만원 정도 든다고 해서 그냥 포기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복지부 문서고에도 영구 기록물과 준영구 기록물이 수두룩했다.

▲ 복지부의 제2 문서고. 영구및 준영구 기록물이 녹이 슨 철제 앵글에 꽂혀 있다

#4. 잡무에 시달리는 기록물 직원

노동부의 1명뿐인 기록물관리 담당 직원은 “서무로서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 기록물 관리는 신경도 못 쓴다”고 말했다. “말이 좋아 서무지, 식목일 행사며 국정감사 자료정리며, 월례회의때 책걸상 나르는 일까지 온갖 잡무는 다 제가 합니다. 담당직원이라고 저 하나인데, 기록물 관리업무는 아예 손댈 수가 없죠.”

지하 1층에 자리잡은 29평짜리 노동부 문서고 역시 ‘창고’였다. ‘제한구역’(공무자외 출입금지)이라는 빨간색 푯말이 내걸린 서고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일부 서류뭉치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 노동부 문서고 구석에 각종 서류상자.철제 의자,쌀자루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특히 70년대 근로기준법 관련 ‘준영구 보존’ 문서들은 위 아래가 뒤집힌 채 꽂혀 있었다.

#5. “결국 의지문제죠.”

환경부 문서고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최근 3000만원 정도 들여 서고내 철제 앵글을 현대식 이동서고(모빌렉)로 교체하고 환풍 시설도 보수했다. 담당 공무원은 “결국 책임자들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90년대 생산된 기록물의 분류번호와 보존기간이 명시되지 않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점은 환경부 역시 여느 부처와 다를 바 없었다.

▲ 환경부 문서고의 1990~2000년 기록물.'분류번호'와'보존기간'이 적시되지 않았다.

보존기간이 적혀 있지 않다는 건 그 기록물의 ‘중요도’가 제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는 곧 의미있는 기록물이 무단 파기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법무부 문서고는 엉뚱하게도 농림부 건물 지하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무실 공간 부족에 따른 ‘궁여지책’이었다는 게 담당 사무관의 설명이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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