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4-06-04   1573

[기록이 없는 나라 ⑥-1] 국정원, 정보 공개 ‘고무줄 잣대’

원칙없이 유리할땐 “가능” 불리할땐 “불가”

국가정보원의 정보와 기록 공개 원칙은 다분히 자의적이다.

지난달 모 방송사가 KAL 858기 피격사건 의혹을 다루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고 하자, 국정원은 강당에 당시 수사 자료를 쌓아 놓고는 취재팀을 불러들여 내용을 공개했다.

방송사 관계자는 “작년 여름부터 국정원측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방송이 나가기 직전에 (자료공개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수사와 관련해 불리한 방송이 나갈 것을 우려해 막판 공개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정원은 기관의 이익에 따라 임의로 자료를 공개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입을 열지 않는다는 의미다.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받다 숨진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사건이 단적인 예다. 2002년 5월, 사건 당시 중정 수사관들이 간부들에게 최 교수를 간첩으로 허위 보고한 다음 자살로 위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뒤 2년이 다되도록 국정원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17일 “중정 발표가 조작된 것이었다”는 당시 수사관의 법정 증언이 나오는 등 수세에 몰리자, 다음날 보도자료를 통해 “유가족을 비롯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며 사과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국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라면 공개하겠다”며 그동안 닫혀 있던 국정원의 각종 정보를 국가기관과 기업, 국민들에게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내부 논란도 있었지만 ‘국민에게 다가간다’는 코드를 내세웠다. 국민들도 “세상 참 많이 변했네”라며 국정원의 변신을 기대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안 된 지금에 와서는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없다”며 다시 원칙론으로 회귀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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