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9-06-25   1266

[통인동窓] 체온계 빼앗는다고 열이 내리나

무너지고 있다. 수십 년간 피로 쌓아올린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부스러져 내리고 있다. 집권세력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권력기구는 의회정치와 시민사회를 압도하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국민들은 인터넷에 글 한 줄을 쓸 때조차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교수와 방송피디, 노동자와 회사원, 공무원, 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구속과 해직의 고통을 겪고 있다. 서울 중심부는 거의 매일 전경버스들로 가득히 메워져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엄밀한 의미에서 독재나 파시즘 체제는 아니되, 권위주의적 행정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음은 틀림없다.

지금 권위주의 통치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대표적인 민주적 기본권이 바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다. 집회와 시위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보수 언론 일각은 기본권의 자의적 제한을 법치주의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자 왜곡이며, 그런 점에서 그 자체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다.

첫째, 이들은 집회나 시위 자체를 불법·폭력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근간을 부정하는 관점이다. 이들은 “시민들이 모이면 불법·폭력 시위로 번지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확산시키려 한다. 이는 집회와 시위를 은연중에 불법성과 폭력성에 연계시키게 만들 뿐 아니라 국가기구에 의해 행사된 불법과 폭력을 은폐한다. ‘불법·폭력’이라는 단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억압하기 위해 즐겨 쓰던 말이다. 그 언어가 지금 이 나라의 정치언어로 부활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둘째, 특정 성격의 집회와 시위를 불법으로 몰아 비난하고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경찰이 집회와 시위의 합법성 여부를 자의적으로 심판하고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경찰은 2천 개에 이르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학술·예술단체와 풀뿌리 커뮤니티들을 ‘불법폭력시위 단체’로 규정했고, 이 목록은 각종 정부지원을 차단하고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집회·시위의 불법성을 논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논리가 아니라 벌거벗은 권력의 논리일 뿐이다.

셋째, 집회와 시위에서 폭력 행사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집회 금지와 원천봉쇄가 이뤄지고 있다. 모든 집회와 시위는 시민과 경찰이 마주치는 쌍방적 상황으로서 물리적 충돌의 잠재성을 갖고 있다. 민주국가의 헌법은 그런 잠재성을 전제로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한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시민-경찰 간에 협력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관계의 기초는 바로 쌍방적 인정과 신뢰다. 국가가 국민을 폭력배 취급하면, 국민 역시 국가를 폭력조직으로 여긴다.

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장 근본적 문제는 ‘정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정당성은 단지 ‘국민이 뽑아줬다’는 앙상한 논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일상적 정치 과정 속에서 정치 권력과 국민 여론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고 그것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집회와 시위, 기타의 정치적 표현들은 시민사회의 반응을 감지할 수 있는 정치적 체온계다. 체온계를 빼앗는다고 열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고열은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엔 치명적인 상태로 된다. 국민의 의사표현을 억압하면서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계속한다면 정당성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정치를 통치로 환원하고, 통치를 엄치(嚴治)로 착각하는 곳에 정치는 없다. 현대 정치에서 ‘불통’(不通)은 ‘통치 불가능’을 뜻하기 때문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 이 글은 <한겨레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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