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인사 2008-03-06   1083

허구적인 실용인사를 비판한다

이 글은 참여연대가 주최한 ‘이명박정부 고위공직자 인사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토론문입니다.



1. 들어가는 말


민주화이후 역대 모든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인사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영삼 정부 이래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고위공직자 임명과정에서 많은 후보자들이 도덕성과 자질 논란 등으로 낙마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고부동산투기, 병역, 탈세, 논문표절 등과 같은 고위공직자의 검증기준이 무형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립되어왔으며, 제도의 측면에서도 여러 한계를 노출하고 있지만, 인사청문회 제도가 마련됨으로써 국회가 장관급 고위공직자들을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맞들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파동은 과거의 시행착오가 무색할 만큼, 역대 정부 인사의 모든 오류와 문제점을 모두 합한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번 인사파동의 원인은 비단 ‘검증시스템의 제한’에서 비롯된 문제만이 아니라  인사권자의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 국정운영에 대한 안이한 태도와 판단이 종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2. 이명박 정부 인사의 문제점


□ 인사권자의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 


이명박 정부는 선거 후, ‘실용’이라는 국정운영의 철학 혹은 가치를 표방한 바 있다. ‘실용’이 그 자체로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 또는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의 의미가 탈이념, 속도, 효율성, 결과 등을 중시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투명성, 민주성, 정당성, 형평성 등에 대해 소극적으로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면에서 일정한 가치를 대변 혹은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준은 고위공직자 인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이번 인사를 두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실용’의 정신에 맞게 ‘능력’ 위주로 했다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국보위 입법위원 출신인 이경숙씨를 인수위원장에 앉힌 것이나, 국보위 재무위원 출신인 한승수 씨를 총리후보자로 지명한 단계부터 ‘과거를 묻지 않겠다’라는 이른바 이명박식 ‘실용’인사의 조짐이 드러난 바 있다.  


 평균재산이 ‘40’억에 가까운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강부자 내각’, ‘1%’내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대통령과 청와대는 “부자라고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산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정당성을 강변한 바 있다. 그러나 “부자라고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부터가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강부자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강한 비판 여론은 단순히 이들이 ‘돈이 많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이기 보다는 ‘국민의 평균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장관후보자들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인가?’에 대한 불신과 회의라고 볼 수 있으며, ‘대변자’로서의 정부를 기대하는 국민들로써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불안감이다.


‘장관 후보자들의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대통령의 인식이나, 낙마한 이춘호, 박은경, 남주홍 후보자 등을 두고 ‘능력이 있는 분들인데, 안타깝다’는 식의 발언은 결코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위법, 편법이 발견되었다 하지 않더라도 연고가 없는 농지 등을 포함해 부동산을 과다 보유함으로써 투기의혹을 받는 사람들의 재산형성 과정은 결코  정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대통령은 낙마한 후보들에 대해 ‘안타깝다’는 발언이전에 잘못된 인사임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인식이나 발언이 나오는 것은 대통령 스스로가 아직도 이번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제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의 반증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인사파동에 대해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다시 말하자면 ‘남들-언론, 야당, 국민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탓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자녀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탈세 그리고 비록 특검수사를 통해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주가조작의 문제 등 크고 작은 도덕성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기 때문에 공직자 인사에 있어 도덕적 기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를 알면서도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은 ‘정치적 기회’를 준 것일 뿐, ‘경제살리기’와 ‘실용’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덮어도 된다는 면허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자만, 무소불위의 권한은 아니다.


□ 원칙 없는 코드인사


대통령제 하에서 코드인사는 불가피하며, 또한 바람직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느 정도의 원칙과 기준위에서 이루어 질 때, 순기능을 할 수 있으며, 국민적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식 코드인사의 무원칙하다고 비판하는 이유는 비단 ‘고소영’내각이라는 외형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관례적인 출신지역 등에 대한 안배 없이 대통령과 특정 지역, 학교 등으로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주요한 자리에 기용한 것은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지역이나 출신학교 안배 등 정치적 고려를 하다보면 정작 능력 있는 적임자를 발탁하지 못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일 수 있으나 그 자체를 잘못된 인사라고 비판만 하긴 어렵다.    
오히려 이명박식 코드인사가 무원칙한 더 큰 이유는 자격이나 능력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측근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기용하는 것이다.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 김성이 보건복지부가족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의 임명 등의 경우 전문성, 경력, 연구성과 어떤 면에서도 해당업무를 담당할만한 능력이나 전문성이 확인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측근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기용된 대표적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원칙 없는 측실인사는 ‘권력의 사유화’, ‘국정운영의 불안정성’, ‘관료조직에 의한 국정장악’ 등 여러 부작용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코드인사’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 ‘능력’ 기준 인사의 허구성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인사에서 유독 강조한 점이 ‘능력’과 ‘경험’, ‘경륜’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에 대해 ‘설익은 운동권 386들이 국정을 망쳤다’는 비판을 제기해왔던 터라 그 반작용이 인사과정에서 참작되었겠지만, 정작 드러난 바는 ‘능력’기준의 인사는 것이 한낱 ‘레토릭’ 이었을뿐, 전혀 능력을 확인할 수 없는 ‘측근’들이 요직에 대거 진출했다는 점이다.  


한승수 총리의 경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장관에 두차례나 기용되었으나 두 번 다 경질에 가까운 사임으로 단명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재경원 장관이었으나,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한보 부도사태의 책임을 물어 경질 된 바 있다. 또한 김대중 정부 당시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었으나, 이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적절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경질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승수 후보자가 오랜 관직경력이 있지만 총리로써 능력이 검증된 인물인지 의문이다. 


사회정책라인에 대한 인사는 무능력 인사의 전형이다. 청와대 박미석 수석의 경우 가정관리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연구 성과나 경력에서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에게 요구되는 노동, 환경, 여성, 가족, 복지, 방재 등 방대하면서도 까다로운 사회정책들을 수행하고 조율할 전문성이나 능력을 전혀 찾아보기 어렵다. 논문표절 등 도덕성 하자와 능력과 전문성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박 수석이 임명된 것은 소망교회를 매개로한 대통령과의 연고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김성이 복건복지가족부 장관의 경우도 비록 사회복지사협회장을 지냈고, 사회복지분야의 오랜 연구 활동 경력이 있지만, 주로는 임상분야에 집중되어 있을 뿐, 사회복지정책의 전문성이 있는 분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복지 현안에 대한 질문들을 대부분 이해조차 못하고 ‘잘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으로 한나라당 청문위원들의 질타를 받았던 점도 김 후보자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저출산․고령화와 양극화라는 이중의 사회적 위험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정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이 같은 장관 후보자가 정책을 무리 없이 이끌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의 경우도 노동법을 연구한 학자이며,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노동정책에 대한 비전도 현안에 대한 인식이나 해결능력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능력’이라는 기준과는 동떨어진 인사다.


‘능력’인사의 허구성이 더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 방송통신위원장에 최측근인 최시중씨를 임명한 것이다. 최시중씨가 비록 언론사 기자와 여론조사회사 경영자를 거쳤다하나 이 정도의 경력으로 방송, 통신 융합시대의 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을 적임자로 보이지 않는다. 최시중씨 임명을 두고 최측근을 기용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언론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특정 언론사 출신으로 매우 논쟁적인 주제인 신문의 방송겸업 문제에 공정성을 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화여대 백용호 교수의 공정거래위원장 임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원칙 없는 측실인사이다. 백용호 교수는 금융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경제학자이나, 경쟁정책분야에서는 단 한편의 논문도 없고, 경험도 전무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 교수가 기용된 것은 대통령과의 친분이 두텁고, 서울시장 당시 시정개발연구원장을 지냈으며, 대통령의 씽크탱크인 바른정책구원장을 지낸 측근경력이 더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사전검증의 무시 또는 허술함  


이상과 같은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 청와대 인사의 문제점은 사전검증에 대한 무시 또는 허술함으로 나타났다. 인수위원회는 5천명의 대상을 놓고 그중에 15명의 장관 후보자를 발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철저히 인수위원회의 자체 검증으로 진행되었을 뿐이며, 공적인 자료나 정보에 의한 검증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등기부 등본 등 기초적인 자료만 확인 해봐도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인사들이 후보로 낙점되었으며, 이는 인수위의 사전 검증이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은 공적 기관의 검증자료를 활용할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사전검증의 한계를 변명하고 있으나, 오히려 청와대의 자료제공 제의를 마다한 것은 인수위원회라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이 도덕성 논란 등으로 불필요하게 시간을 많이 사용한 것도 이 같은 사전검증의 허술함 때문이라는 점에서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할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고위공직자 검증 시스템의 보완과제


□ 고위공직자인사검증법률안의 조속한 제정


이번 인사 파동을 볼 때, 고위공직후보자의 도덕성, 자질 등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시급히 보완될 필요가 있으며,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어 국회에 계류중인 「고위공직자인사검증에관한법률안」을 조속히 제정할 필요가 있다. 법제정을 통해 인사검증 대상을 명확히 하고, 자료제출 요구 및 사실 조사에 대한 법률적 규정을 명확히 하고, 경찰 등을 조사대행기관으로 지정하도록 함으로써 현재와 같이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임의적 검증을 법률에 의해 공적으로 제도화하고, 인사 검증 사항과 기준도 법률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 청문회 제도의 보완


사전검증을 통해 도덕성과 기본 자질에 결격사유가 없는 후보자만 인사청문을 요청하도록 사전검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즉 인사청문회에서는 정책에 대한 입장과 비전을 검증이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국회 청문회는 몇몇 공직을 제외하고는 인준권이 없는 검증청문회로 단지 의견만을 최종 표명할 뿐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식의 포괄적 인준권처럼 현재의 인사청문회를 보완해 장관직의 경우 국회가 청문회 뒤에 포괄적으로 인준을 하는 형태로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고위공직자 인사에 대한 사전검증 시스템이 보완될 시 현재의 청문회 제도는 도덕성이나 자질에 대한 검증이 아닌 정책과 비전에 대한 검증에 보다 초점이 맞춰지도록 운영관행의 개선도 필요하다. 


□ 기타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정부출범까지의 기간에 발생하는 정권인수 작업 및 인사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책임정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총리후보를 비롯한 예비내각’을 선거일 직전 또는 직후 미리 발표하고 예비 내각이 중심이 되어 정권인수 작업과 정부출범을 준비하는 형태로 큰틀의 시스템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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