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6-09-07   1013

<안국동窓> 그래도 도박은 계속된다

승부는 항상 가슴을 불타오르게 한다. 축구가 그렇고 게임이 그렇다. 소싯적에 오락실에서 “라이덴”이나 “1945”를 하며 동전깨나 쏟아 부었고, “삼국지시리즈”와 “킹덤언더파이어”를 하며 밤을 새워도 보았고, “스타크래프트”가 나왔을 때는 하루라도 게임을 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요새도 주말이면 “워크래프트3”를 즐긴다. 컴퓨터 혹은 네트워크상의 상대와 기량을 겨루는 게임의 즐거움은 스포츠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즈음 하나의 게임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이렇게 인기(?)있는 게임이 나도 모르게 확산되어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니 “게임마니아”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이야기”가 파문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이야기”는 게임이 아니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게임 자체의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바다이야기”는 게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려는 것이 목적이다.

“연타”와 “예시” 기능을 통해 대박을 꿈꾸게 하지만 결국 쪽박이다. 금전(경품용상품권 등 환전이 가능한 모든 경품 역시 금전이다)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은 게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이고 도박이다. 그런데 이 도박을 도박이라 부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문화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국회 문광위 위원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도박을 도박이라 부르지 않고 게임이라 부르고 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이유처럼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들은 도박을 도박이라 부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사행성게임의 제작과 유통도 산업이므로 이를 적극 진흥하고 육성하고는 싶은데 도박이라 부르면 이 산업을 지원하고 진흥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짐작해본다.

국회 박모의원의 주장처럼 사행성 게임도 게임이다. 하지만 사행성게임은 도박게임이고 도박이라는 것 역시 명백하다. 그런데 사행성게임은 게임이므로 도박이 아니라는 이 웃기지도 않는 논리가 고위관료와 국회의원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었나보다.

사행성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하여 ‘사행행위등규제및처벌에관한특례법’’로 규제하지 않고 게임으로 분류하여 심의를 내주고 ‘게임산업진흥법’으로 진흥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다이야기’ 파문은 이제 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겠다고 하고 검찰과 경찰은 게임기 압수 등을 통해 ‘바다이야기’를 퇴출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4일부터 특별감사를 실시해 도박게임장 확산에 대한 문화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관련기관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있다. 검찰은 상품권 업체 지정과정에서의 로비의혹과 권력실세의 개입 여부를 수사하고 있고 이미 일부를 구속하거나 출국금지하고 있다. 조만간 ‘바다이야기’의 책임 소재가 가려지고 금품로비 등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처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문화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그리고 국무조정실과 청와대, 감사원과 국세청, 경찰과 검찰 모두 책임의 경중은 다르지만 ‘도박공화국’의 확산에 책임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품용 상품권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여 도박게임장 확산의 결정적 역할을 제공한 문화관광부와 규정을 탓하며 도박게임에 대해 심의를 내준 영등위,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국무조정실과 청와대, 시민단체의 감사청구까지 묵살하고 사태의 확산을 방관한 감사원, 도박게임 제조업체와 성인오락실의 탈세를 수수방관한 국세청, 불법도박행위를 단속해야함에 관할이 아니란 이유로 책임을 회피한 경찰과 검찰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바다이야기 관련자들이 책임을 지고 불법행위를 한 자들이 처벌 받으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바다이야기’가 퇴출되어도 또 다른 별별 이름의 도박게임이 나올 것이다. 10월 시행을 앞둔 “게임산업진흥법”은 사행성게임(도박이다 !) 역시 진흥하고 보호해야할 게임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법”을 개정하여 사행성게임(아니 도박)을 건전게임에서 분리하여 ‘사행행위등규제및처벌에관한특례법’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바다이야기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사행성게임을 사특법으로 규제하여 제한적으로 허가하면 문제는 해결될까?

도박게임장 문제가 해결되도 카지노(강원랜드)와 경마(한국마사회), 경륜ㆍ경정(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국가가 공인하고 보호하고 육성하고 있는 도박산업이 버티고 있다. 민간인이 하면 도박이고 국가가 하면 도박이 아닌가?

사행산업의 허가는 공익적 목적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 허가하도록 되어있다. 그렇지만 정부 각 부처는 관광ㆍ레저산업의 육성, 폐광지역산업 육성, 체육기금 마련, 농어촌 지원 등의 각종 명목을 대가며 국가가 앞장서 시민들에게 도박을 권하고 있다.

국가재정규모가 200조원에 육박하는 시대에 얼마 안되는 공익기금 조성을 이유로 도박산업 확산을 정부가 앞장서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도박산업이 공공연하게 성장한 근저에는 경제성장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이 도박산업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성장제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도박이든 무엇이든 어떻게 돈을 벌어도 돈 만 많으면 상관없다는 물신주의에 물든 많은 사람들이 도박장으로 향했고, 정부가 앞장서서 도박장을 개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박산업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제시할 때이다. 정부가 앞장서 도박산업을 진흥하고 성장시켜온 정책을 성찰하고 도박산업 진흥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년 15조원을 상회하는 도박산업을 총량적으로 5년내 50%로 줄이겠다는 정책이나 혹은 경마와 경륜 그리고 로또, 강원랜드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 사행산업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공익기금은 세금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경품용상품권을 폐지하고 ‘바다이야기’를 단속하고 사태의 책임이 있는 관료와 불법로비 당사자를 처벌해도 근본적 대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래도 도박은 계속된다.

이재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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