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칼럼(ts) 2004-02-16   1234

<안국동 窓> 2004년 검찰의 선택

상종가 친 검찰

2003년은 ‘검찰의 해’ 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선자금수사를 비롯한 각종 부정부패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제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벗어버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평소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도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해가 바뀌었지만, 검찰은 여전히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편파수사’라는 야당의 공격이 계속되고, ‘특별검사’ 문제로 홍역을 치루기도 했지만, 인사권자인 대통령조차 ‘검찰이 너무 한다’는 볼멘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대과없이 맡은 임무를 다하고 있는 듯 하다.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에게 국민들이 선물을 보내고, 팬카페까지 생기는 등 한마디로 검찰은 건국이래 최고 ‘상종가’를 치고 있다.

권력에 의해 주어진 자율성

그런데, 검찰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한 구석 밀려드는 불안감이 있다. 아마도 현재 검찰이 누리고 있는 평판이 일종의 ‘반사이익’에 불과하다는 점에 생각이 미쳐서일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이 워낙 상식밖의 행동을 해왔고, 불법행위와 부정부패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주도하는 사정작업은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의회권력의 최고책임자들이나 대통령의 측근들까지 검찰의 칼날에 하나하나 잘려나가는 걸 보면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것은 검찰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독립성’이라는 것이 검찰 스스로 권력과 싸워 쟁취한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주어진 수동적 ‘자유’라는 점에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부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검찰은 간혹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있다. 며칠전 대통령 측근인 Y씨에 대한 법원의 무죄선고에 대해 ‘송광수검찰’의 과잉수사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 있었다. 검찰출신의 민주당 P의원 역시 관련혐의를 벗으면서 “정치검찰의 폭력에 희생양이 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누구라도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명제는 정치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관련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하거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언론플레이를 일삼는 것도 검찰의 공명정대함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행태이다.

검찰권의 남용 여전하다

정치권을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작년 한해 검찰이 체포영장 없이 긴급체포한 피의자중 45% 정도가 수사단계에서 풀려났다.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할 긴급체포가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 중 검사의 과실에 의한 것이 17.0%(1천425건중 242건, 2003년 상반기)에 달한다고 한다.

무죄 사건에서 검사의 과실이 인정되는 사건의 비율은 99년 18.4%, 2000년 18.2%, 2001년 12.6%, 2002년 12.7%로 점차 감소세를 보였으나 2003년 들어 증가세로 반전되었다. 2003년 10월, 소위 ‘3인조연쇄살해범’에 대한 무죄선고는 ‘범행수법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장기미제사건을 억지로 끼워맞춰 기소한 강압수사의 결과’였다. 8개월간의 억울한 옥살이와 2년 6개월간의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무죄가 확정된 전 충북 옥천경찰서장은 “당시 수사과정에서 검찰 간부 이름이 적힌 ‘오락실 뇌물 명단’이 나오자 검찰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경찰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자중자애해야

검찰이 그동안 얻은 성과와 노력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제 아무리 검찰이 정치권을 상대로 선전(善戰)한다고 해도 무리한 강압수사가 계속되고 국민의 기본권보호에 소홀한다면,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검찰은 ‘자중자애’하여 적정한 검찰권 행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자중자애’만을 기대해서도 안된다. 권력은 적절한 견제균형장치 없이는 부패하고 편향되기 쉬운 속성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상설적 특별검사제’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검찰권의 집중에 의해 나타나는 폐해를 없애고 견제균형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물론 부패방지위원회나 감사원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재 그 권한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예를 들어 부패방지위원회는 부패에 관련된 검사를 고발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조사권도 갖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 대한 견제균형장치 필요

검찰이 잘하면 잘할수록 검찰에 대한 견제균형장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물론, 과거와 같이 최고권력자가 검찰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환원해서는 곤란하다. 우선 부패방지위원회나 감사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국민이 직접 검찰권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검찰항고심사회’ 구성등의 개혁조치가 시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상설특별검사제도 등도 좀더 현실적인 수준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검찰은 ‘훈련된 사냥개’라고 할 수도 있다. 주인을 위해서 충성하고 끝까지 먹이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 주인은 물론 국민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독재권력이나 정치권이 주인임을 자처하고 검찰도 이에 순응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검찰은 오로지 권력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충성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검찰은 스스로 권력화되어서는 안되며 주인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검찰에 대한 견제균형장치의 중요성과 필요성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2004년 검찰의 올바른 선택이다.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처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