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국가정보원 2013-07-26   1875

[칼럼] ‘국정조사 공개’는 국정원 개혁 출발점

‘국정조사 공개’는 국정원 개혁 출발점

김정인 /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 춘천교대 교수(사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청와대를 도청했다? 이 불법 행위의 주체로 도마에 오른 것은 미국 정보기관인 CIA였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대통령에 이어 CIA가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연일 그들이 저지른 불법 행위가 폭로됐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불법사찰은 통상적인 관행에 불과했다. 냉전시대 CIA는 미국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권력이었다. 칠레 아옌데 정부의 전복을 꾀했으며 쿠바의 카스트로 등 정치지도자의 암살을 기도했다. 이렇듯 CIA의 불법 행위가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한국 관련 스캔들도 함께 터져 나왔던 것이다.

CIA의 불법행위는 1975년부터 미의회 청문회 자리에 서기 시작했다. 워낙 위중한 사안이다 보니, 미 상원과 하원은 수년에 걸쳐 각기 별도의 위원회를 운영하며 사안별로 진상 규명에 나섰다. 그건 음지에서 암약하던 CIA가 만천하에 민낯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 정보를 다루는 기관이라 해도 그 활동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에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CIA가 청문회 자리에 선 것은 스스로 그런 원칙을 어기는 위법행위를 저질러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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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회는 워터게이트형 청문회 방식으로 CIA 청문회를 진행했다. 워터게이트형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TV중계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TV로 전국에 중계됐다. 이 공개의 원칙은 CIA 관련 청문회에도 적용됐다. 청문회 공개를 반대하는 행정부와 CIA의 논리는 한결같았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간결한 논리로 미의회의 공개 원칙에 손을 들어 주었다. 어떤 국가기관도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불법 행위 여부는 국민이 함께 보고 듣고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도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 공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의 공개 원칙에 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국정원의 기관보고부터 아예 비공개로 하자고 한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정원의 통상적 기밀 업무를 다루는 상설 기구다.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국정원의 통상업무가 아니라 검찰에 의해 밝혀진 불법 행위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을 목적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수행한다. 두 기구의 위상과 역할이 명백히 다른 것이다. 또한 국가 기밀은 보호해야 하지만 불법 행위는 공론화해야 마땅하다. 국정원의 적법한 비밀 활동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보호받듯이 불법행위 역시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이치에 맞는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에 관한 국정조사는 공개돼야 한다. 국민이 알고자 하고 또 알아야만 하는 것은 국정원의 기밀 활동이 아니라, 불법 행위다. 그것이 국정조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국정원 조직과 운영에 관련된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고, 국민은 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국정원 개혁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국정조사 공개가 국정원 개혁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의회는 외교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CIA의 불법 행위를 공개 규명했고, 이어 CIA에 대한 민주적 감시 체제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국민은 국익과 안보를 위해 국가기밀은 보호할 필요가 있으나 불법행위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민주주의 상식을 갖고 살아간다. 국회여, 국민의 상식에, 눈높이에 응답하라. 


* [경향신문] 2013년 7월 26일자로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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