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감시센터 기록개혁 2001-06-21   1488

국가 회의록 작성, “조선시대보다도 못하다”

225개 주요국가회의 중 속기록 작성 7개 뿐

정부기관들이 차관급 이상이 주재하는 주요회의의 속기록을 작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녹음기록은 아예 남기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 정보공개 사업단은 21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작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있었던 22개 중앙부처의 차관급 이상이 주재하는 주요 회의의 회의록 작성 및 공개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22개 중앙행정기관별로 차관급 이상이 주재한 225개 주요회의 중 속기록이 작성된 회의는 단 7개뿐이고 녹음기록을 남긴 회의는 전무했다.

참여연대는 특히 최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새만금 사업도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았으며, 지난 한해 동안 실시한 국무회의와 차관회의도 전체 회의의 속기록과 녹음기록이 일체 작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는 명백히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한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현재 국가 회의록 작성은 조선왕조실록을 남겼던 조선시대보다도 못하다”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는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밀실과 성역의 사회는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회의록 작성과 공개는 투명행정의 핵심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아울러 “행정조직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행정 편의주의적 타성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주요 문제기관장에 대한 고발운동, 국무회의 등 주요정책 결정 회의록 작성 촉구 시민항의 방문 및 항의 집회, 국가주요회의록 공개 등 정보공개 청구운동, 기록물관리법 등 관련법령 제·개정 운동 등 다양한 ‘회의록 공개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새만금 회의 녹취록, 발언자 성명과 주요 발언 삭제

사회 : 오늘 우리가 새만금과…흐름을 먼저…해야 되지 않느냐, 그런데 이런 결정을 하려면 당연히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가 있고, 거기에 대해 평가를 한 다음에 그런 과학적인 기초적인 데이터에 …한 결과를 갖고 이 큰…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그걸 결정을 해야되지 않습니까?

ㄷ :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하는 결정을 하는데 그 묘안이 중요한데,

여자 1: 국제적으로 볼 때 무슨 쌀이 부족하다라고만 얘기할 뿐이지, 도대체 우리가 지금 인구가 2025년도에 얼만큼이 되는데 쌀이 얼만큼이 필요한데 (중략) 과학적인 말씀을 하셨으니까 과학적으로 그럼 우리가 한번 따져보자. 지금 언제부터 생산이 됩니까?

ㄱ : 2012년부터, 3페이지에 언급해 놨습니다. 2012년.

위의 내용은 지난 5월 25일 오전에 있었던 새만금 사업 관련 ‘물관리 정책 조정위원회 민간위원회’ 회의록이다. 이날 민간위원들이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회의를 녹음하고 녹취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위원들의 지적으로 회의는 녹음되었으나 공개된 녹취록에는 발언자가 여자 1, ㄱ, ㄷ 등으로 표기됐다. 참여연대 측은 이 자료를 공개하며 “발언자 성명 뿐 아니라 주요 발언 내용도 삭제하였다”며 “이는 녹취록으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당일 오후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물관리 정책 조정위원회’ 회의는 앞서 열린 민간위원회의 반대의견을 뒤집고 새만금 사업 강행을 결정했으나 이에 대한 회의록은 작성조차 되지 않았다.

2시간 국무회의 회의록 5장, 미국은 117장

참여연대는 “지난 한해 동안 실시한 국무회의의 전체 회의 속기록과 녹음 기록도 일체 작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2001년 개각 이후 첫 국무회의였던 3월 27일 회의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부처를 넘너다는 정치인 장관들의 발언이 봇물을 이루면서 2시간이 넘도록 토론이 이뤄졌다’고 보도했으나 정작 국무회의록에는 발언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낮 12시를 넘기는 바람에 이한동 총리는 미리 준비했던 인사말도 하지 못할 정도'(한겨레 3월 28일자 보도)로 장관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국무회의의 회의록에는 각 안건에 대해 ‘원안대로 의결하다’, ‘대체안대로 접수하다’ 등 결정 사항만 기록해 놓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이태호 투명사회국장은 “이날 회의록은 5장에 불과하지만 똑같이 2시간 동안 진행됐던 미국 플로리다주 국무회의의 회의록은 무려 117장에 이른다”며 “심지어 플로리다주와 같이 일부 주는 국무회의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회의록 공개법(Open Meeting Law)에 따라 연방 국무회의 녹취록을 상세히 작성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국가안전과 관련된 1급기밀 회의록은 상세한 녹취록을 작성해 일정 기간(25년) 후 공개하고 있다.

참고자료

1975년 연방 안전보장회의록 전문

플로리다주 국무회의회의록

플로리다주 국무회의 생중계 페이지

참여연대 조은숙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를 위한 회의록 공개운동의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조변호사는 “국무회의 등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는 회의가 제대로 기록·보존되지 않는 한 정보공개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회의록 공개운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조변호사는 또한 “재정경제부 경제장관 간담회는 공적자금 투여, 삼성자동차부실채권 처리, 대우 자금 지원 등 국민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굵직굵직한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인데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며 “책임소지를 회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기관장에 대해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명,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발언내용과 결정사항 및 표결내용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 공공기록물관리법은 개정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행정부처들의 안일한 태도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동법 시행령 8조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거나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 중 정보기록보존소장이 지적하는 주요회의에 대해 속기록이나 녹음 기록을 반드시 남기도록 하고 있다. 관할 부서인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2월 ‘발언내용 기록’을 ‘발언 요지 기록’으로 개악해 물의를 빚었다. 또한 행정자치부 정보기록소장은 현재까지 한번도 주요회의에 속기록이나 녹음기록을 남기도록 지시한 적이 없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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