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19-04-09   1856

[아시아생각] 두테르테의 실토? "초법적 살인 말고는 죄 없다"

두테르테의 실토? “초법적 살인 말고는 죄 없다”

[아시아생각]’마약과의 전쟁’ 이름으로 빈민 학살과 정적. 반정부 언론 탄압

 

박성현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

 

 

지난 4월 2일 필리핀 대법원은 경찰의 ‘토캉(Tokhang)작전'(마약전쟁) 희생자들과 관련된 모든 문서(2016년 7월~2017년 11월 기간)를 청원자인 두 인권단체에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청원인은 마닐라시 산안드레아스 부키드 지구의 26개 바랑가이(행정단위) 거주민들을 대신한 ‘국제법센터(CenterLaw)’와 ‘무료법률지원단체(FLAG)’로, 이들은 2017년 말 고등법원에 탄원서들을 제출한 이래 힘겨운 줄다리기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다. 2018년에 이미 문서 사본을 제출하도록 고등법원·대법원의 판결을 받았지만 호세 칼리다 법무차관이―실질적으로는 필리핀 정부가―국가 안보를 핑계로 이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법무부는 2018년 5월 마지못해 문서 사본의 일부만 제출했다.  

 

인권단체들 “마약과의 전쟁 2년에 2만 명 살해 추정” 

 

대통령 취임일 다음날인 2016년 7월 1일 필리핀경찰청(PNP) 전국본부를 방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의무를 이행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당신이 의무를 수행하느라 1000명을 죽인다면 나는 당신을 보호할 것입니다.” 이른바 ‘토캉’이라 불리는 ‘마약과의 전쟁’ 혹은 ‘마약소탕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두테르테 행정부의 마약전쟁이 시작된 2016년 7월부터 인권단체들이 청원서를 제출할 당시인 2017년 11월까지 경찰은 마약전쟁 과정에서 사살된 수가 505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인권단체들은 초법적 살인의 희생자를 1만2000명이 넘고, 현재는 2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2018년 9월 27일 대통령궁 연설에서 “내 잘못이 뭔가? 내가 1페소라도 훔친 적이 있는가? 나의 유일한 죄는 초법적 살인(extrajudicial killings)이다.”라고 자신의 초법적 살인 행위를 고백했다. 그의 혐의는 이미 2018년 2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예비조사에 올라와 있던 터라,  스스로 범죄 사실을 인정해 버린 셈이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2018년 ICC 탈퇴를 선언했고 2019년 3월 17일 공식적으로 탈퇴 처리됐다. 

 

한편, 지난 3월 14일 밤 두테르테 대통령은 경찰(PNP)과 군(AFP)의 합동지휘회의에서 ‘마약 정치인’ 46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들은 모두 다가오는 5월 상·하원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중간선거에 출마한 이들이다. 이들 중 몇 명이 실제로 마약에 연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필리핀 자유당 상원의원 레일라 데 리마가 법무부 장관 시절 마약거래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혐의로 2017년 2월 이래 수감되어 있는 사실을 상기할 때, 마약전쟁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는 리마 상원의원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과 초법적 살인을 끊임없이 비판해 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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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7년 8월 26일 17살 소년 키안 델로스 산토스가 마약전쟁 작전 중 살해돼 시민들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거행됐다. 많은 시민들은 두테르테 정부가 무고한 시민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살해하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빈민 학살과 언론 탄압의 수단, ‘마약과의 전쟁’ 

 

두테르테는 다바오 시장 시절에도 강력한 마약퇴치작전을 펼쳐왔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전개된 ‘마약과의 전쟁’은 빈민 학살의 무기이자 언론인 탄압의 유용한 방법이 되어 왔다. 필리핀 경찰의 ‘토캉작전'(Oplan Tokhang)에서 ‘토캉tokhang’은 비사야어의 ‘tuktok'(노크하다)와 ‘hangyo'(설득하다)의 조합으로, 다바오시에서 마약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경찰과 지역공무원이 마약중독이나 밀매로 의심받는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노크하고 항복을 설득, 경고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대법원이 경찰작전 중 희생된 사람들에 관한 수사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 경찰은 대통령이 명령할 때만 제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은 없고 명령만 있다.” 필리핀 최대의 민영방송사 ABS-CBN의 뉴스데스크 편집인인 인다이 에스피나-바로나의 말이다. 메트로마닐라의 빈민가에서 희생자 가족들을 취재해 온 그녀는 토캉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경찰은 증거도 없이 쑥덕거려서 만든 명단을 가지고 와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가 당신을 친절하게 초대하니 항복 명령에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이라고 말한다.” 에스피나-바로나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강제로 ‘항복’했고 항복한 이들은 바랑가이 센터로 가 종이 한 장을 받는데, 그 종이에는 마약밀매자인지 마약중독자인지를 표시하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찰이 만든 ‘죽음의 명단’에 올라간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거나 더위를 피해 골목길에 나온 빈민가 주민들은 토캉작전의 표적이 된다. 마약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메트로마닐라 외곽의 빈민가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 “그들이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사가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충분한 증거 없이 살해당했다.” 케손시 산로케 바랑가이에서 파작(삼륜자전거) 운전사로 일하는 미아 그라시아의 말이다. “우리는 파작 운전사이기 때문에 때때로 경찰에 잡힌다. 하지만 우리는 도덕적으로 산다.” 16세 된 그녀의 친척 소년도 무고하게 살해된 희생자들 중 한 명이다.  

 

메트로마닐라의 케손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된 곳은 칼로오칸시로, 골목길 한쪽에 쓰레기 카트 두 개를 붙여 개조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 제랄드(18세)는 십대로서 현 상황이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진실을 말하기 위해 용감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나도 경찰에게 신원 오류로 붙잡힐 수 있다. 한번은 나는 학교에 있었고 마약중독자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와서 내 옆에 있던 그를 총으로 쏘았다. 나는 이 동네에 살다가 살해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 동네에서만 약 100명이 죽었고 그들 중 50%는 아는 사람들이다.”

 

제랄드가 사는 칼로오칸시에서 무고하게 살해된 많은 청소년들 중 키안 로이드 델로스 산토스(당시 17세)의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2017년 8월 16일 경찰이 마약 단속 중 이 소년을 사살한 뒤 그가 필로폰과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총격을 가했다는 거짓말로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마약과 전혀 관련이 없었던 소년을 살해하고 누명까지 씌워 시민들의 공분과 항의시위를 야기한 이 사건은 처음으로 법적 처벌을 실현시켜, 2018년 11월 29일 산토스를 살해한 경찰관 세 명이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마약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두테르테의 지옥>(Duterte’s Hell, 2017)을 공동 감독한 루이스 리와낙은 “희생자의 50% 이상이 미성년자들”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통계를 보면 살해된 이들 거의 모두가 빈민이다. 부자들은 대문이 있는 동네에 살아서 도피할 수 있다. 경찰이 그냥 들어가 집을 수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거리나 빈민구역에 가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대공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후 리와낙은 두테르테의 추종자들인 ‘트롤 아미'(troll army, 온라인 공격부대)’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다. 마약전쟁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은 온라인상에서의 협박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취재해야 한다. 두테르테가 다바오 시장이던 1998년에 만들어진 자경단 ‘다바오 죽음의 분대'(DDS)는 살인을 자행해 온 대표적인 두테르테 지지자 그룹이다. “마약전쟁을 취재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책임이 있는 이상, 언론인은 내일의 취재를 위해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리와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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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오 시 곳곳에 있는 군 차량 ⓒ박성현

 

필리핀의 언론 탄압 상황 

 

필리핀전국언론인노조(NUJP)의 자료에 따르면, 1986년부터 현재까지 비판적 언론활동(직무관련)으로 인해 살해된 언론인 수는 총 185명이고 두테르테 행정부 하에서만 12명이다. 대부분 지방의 언론인인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수도권보다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부패를 폭로하고 비판한 언론인이 살해되어도 살해 이유를 마약 연루로 몰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토캉작전을 가장해 언론인을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다. 지역신문 <카탄두아네스 뉴스 나우>의 발행인이자 칼럼니스트인 라리 케는 2016년 12월 19일 오전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 오토바이를 탄 킬러들에게 암살당했는데, 그는 죽기 얼마 전, 마약 제조 시설이 발견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지역공무원들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었다. 케를 살해하도록 지시한 것은 카탄두아네스 주지사 조세프 쿠아로, 그는 자신의 보좌관 수비온을 시켜 경찰관 타코르다에게 토캉작전을 가장해 케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두테르테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포, 온라인 군대 트롤아미의 활용 외에도, 언론사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 정책을 펼치고 있다. 비판적인 온라인 뉴스매체 <래플러>(Rappler)에 대한 폐쇄 시도와 ABS-CBN 방송국의 사업권 박탈 위협, 주요 일간지인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의 소유권 이전 강요가 그 예이다. 또한, 두테르테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 온 이 언론사들은 모두 세금 체납 혐의로 탄압을 받았다.  

 

특히 대표적인 탄압 대상은 래플러로, 이 뉴스웹사이트는 마약전쟁의 인권 유린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2018년 1월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래플러가 외국인의 언론사 지분 소유와 현지 언론 통제를 금지하는 법률(반더미법, Anti-Dummy Law)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법인 등록 취소를 결정했다. 2018년 7월 항소법원은 이 결정에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고, 그해 8월 래플러는 등록 취소 명령을 부분적으로 재고하도록 항소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9년 3월 11일 법원이 이전 판결을 지지한다고 발표함으로써 3월 28일 래플러의 대표이자 편집국장인 마리아 레사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된다. 동료들은 당일 보석으로 풀려났고,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레사는 다음날인 29일 아침 귀국길 공항에서 체포되어 역시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그녀는 이보다 한 달반 전인 2월 14일에도 사이버 명예 훼손으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적이 있다.

 

필리핀의 여론조사기관인 사회기상관측소(SWS)의 2018년 4분기 조사(2018년 12월 16일~19일)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78%가 자신이나 자신의 지인들이 초법적 살인의 희생자가 될까봐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러나 두테르테는 마약전쟁과 언론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그는 현행법상 마약조직이 청소년들을 교역에 이용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형사책임의 최저연령을 현 15세에서 9세로 낮추도록 2016년 이래 꾸준히 추진해 왔고, 올 1월에도 이 문제가 부각된 바 있다. 한편, 고등학생 산토스가 무고하게 살해되었던 칼로오칸의 교구장 파블로 비르길리오 데이비드 주교는 지난 2월 그와 다른 주교·사제들이 살해 위협을 받았음을 밝혔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 추기경은 이에 대해 두테르테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와 마르코스 지지자들의 대표적인 공격 표적인 신문 기자 출신 언론인 에드 링가오(TV5와 원뉴스 앵커)의 다음 말은 인상적이다. “비판적이어야 할 우리의 일을 멈추고 침묵을 지킨다면 우리는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취재와 보도를 계속하는 언론인들이 있는 이상, 마약전쟁에 희생되는 필리핀 민중과 탄압받는 필리핀 언론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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