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1-08-30   6702

필리핀, 민다나오에 평화는 오는가?

필리핀, 민다나오에 평화는 오는가?

 

 

민다나오는 필리핀군도 중에서 두 번째로 크며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하기 이전부터 강력한 이슬람 술탄이 지배하며 주변 왕국들과 활발한 해상교역을 수행하기도 한 지역이다.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태풍의 진행경로에서 벗어나 있으며 기온이 온화하여 각종 열대과일을 생산하기에 적절함은 물론 수산자원도 풍부하여 필리핀에서 수출되는 대부분의 과일과 생선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처럼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빈곤하고, 테러와 납치 사건이 끊이지 않는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이슬람 반군이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반군의 통제 하에 있기도 하다. 반군들은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상실한 조상의 땅을 회복하고 그 곳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일부 무장반군은 외국인에 대한 납치와 살해를 일삼아 국제적으로 테러조직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최근 필리핀 정부는 이슬람 반군과의 평화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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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이슬람해방전선 무라드 에브라임 의장과 아키노 대통령

지난 8월 4일 아키노(Benigno Simeon Aquino III) 대통령은 도쿄에서 이슬람 반군 최대조직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지도자인 무라드(Al Haj Murad Ibrahim)를 비밀리에 만났다. 국가원수가 반군의 지도자를 비밀리에 제3국에서 만난다는 것은 필리핀에서도 최초의 일이었다. 이 비밀회의에서 아키노 대통령은 MILF의 투쟁목표인 이슬람 독립국가 건설을 포기시키는 대신 위성국가(Sub-state)의 지위를 부여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국가는 홍콩의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써 중앙정부는 국방과 외교, 그리고 화폐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고, 나머지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최고지도자들 간의 기본적인 합의에 근거하여 양측의 협상단은 말레이시아에서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은 마르코스 정권 이래 지속되어 온 이슬람 반군과의 분쟁을 자신의 임기 내에 종식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확고하고, 반군의 지도자 역시 타협의 여지를 보여 온 이상 언 듯 보기에는 문제의 해결이 눈앞에 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필리핀이 정치적으로나 치안 상 불안한 국가라는 외부적 인식의 원인을 제공했던 이 문제가 그리 싶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톨릭이 지배적인 필리핀에서 이슬람 반군 문제는 종교분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남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국민들도 타종교에 대한 포용성이 강하며, 특별하게 이슬람에 대해 적대감을 품지는 않는다. 이슬람 반군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필리핀 무슬림들이 느끼는 정치적ㆍ경제적 박탈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이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강력하게 추진한 반이슬람 정책이 민다나오 무슬림들의 저항을 불러 왔고, 스페인 식민지 내내 그리고 이어진 미국의 식민지 기간 동안에도 완전히 정복당하지 않고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오랜 저항의 기간은 배제와 차별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저발전과 빈곤의 결과를 가져왔다. 필리핀 무슬림 반군은 한편으로는 무장투쟁을 지속하면서도 중앙정부와의 끊임없는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마르코스 정권과 라모스 정권하에서는 평화협정에 조인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반군 문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는 평화협정의 후속조치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6년 라모스 정권하에서 체결되었던 평화협정은 민다나오 분쟁의 종식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반군의 요구에 따라 민다나오에 무슬림 자치구(ARMM)가 설치되었고, 반군은 필리핀 군대와 경찰로 편입되었으며, 필리핀 정부와 해외로부터 막대한 개발원조가 지원되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경제발전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필리핀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이권을 둘러싼 이슬람 세력들 간의 분열은 또 다른 무장투쟁을 불러왔다.

 

아로요 정권하에서는 이슬람 반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평화협정에 합의하였으나 필리핀 대법원에서 협정내용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협정문 자체가 폐기되었다. 이에 분개한 이슬람 반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400여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키노 대통령이 약속한 위성국가의 지위도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반군 쪽의 입장 또한 그리 수월하지 않다. 과거 라모스 정권이 당시 최대 반군조직이었던 모로민족해방전선(MNLF)과 평화협정을 맺는 데는 성공했지만 또 다른 반군조직의 부상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무슬림 공동체의 동의 없이 MILF 지도자가 비밀리에 대통령과 만나서 그 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해 오던 이슬람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타협한 것에 대해 MILF에서 이탈하는 하위조직이 나타나고 있다.

 

오랜 무장투쟁의 역사 속에서 깊어진 불신의 골이 싶게 메워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슬람 반군문제는 공산반군 문제와 함께 필리핀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평화협상은 아키노 정부가 어느 정도 진정성과 끈기를 가지고 민다나오 분쟁에 접근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지도력을 가름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김동엽(부산외대 동남아지역원 연구원)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47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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