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8-08-19   2282

<아시아 생각> 베트남인은 베트남전을 ‘성전’으로 여긴다?


변해가는 전쟁의 의미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하는 베트남은 꽤 작고 평범한 나라다. 베트남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전세계인들은 베트남이란 나라의 이름도 잘 몰랐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베트남전은 베트남의 정체성과도 일치하는 의미로 받아 들여진다.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전은 어떤 의미일까? 자랑스러운 전쟁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전쟁에서 이어지는 평화의 의미를 생각할까?
 
“모든 것이 한순간 엉망…그런 것이 전쟁이었어요”
 
필자는 베트남전 당시 군인이었던 베트남 작가 반 레이가 베트남전에 대해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필자도 참석한 한 좌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냥 폭탄이 거리에 떨어지고 끔찍하게 터지면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거리로 도망치고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논으로 뛰어 내려갔어요.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엉망이 되었지요. 그런 것이 전쟁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전쟁이 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기억에 베트남전은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베트남의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베트남전은 ‘베트남인들이 나라를 위해 미군에 대항하고 결국 이들을 쫓아낸 전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또 베트남이 미군을 이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독립을 유지하고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베트남인들은 작은 베트남이 ‘골리엇’ 미국을 이겼다고 자랑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생들도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베트남전을 아주 성스럽게 본다.
 
베트남인들은 교과 과정을 통해 베트남 군인들의 공헌과 베트남전의 승리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호치민을 통한 군인들의 모습을 미화해 갔다. 베트남전이 끝난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전에 대해 승리만을 이야기 하고 전쟁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언급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1986년 도이모이(Doi Moi·개혁개방정책) 후에 ‘글라스노스트'(경제개방)이라는 개념이 베트남에 들어오게 된다. 외부 세계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문물을 접한 베트남인들의 생각이 자유롭고 다양해졌다. 이때부터 전쟁의 다른 면에 대한 언급이 시작됐고, 그 중에서 작가, 소설가, 화가등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 슬픔, 비판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곡가 찐공션(Trinh Cong Son)의 반전 노래선집
  


▲ 작곡가 찐공션(Trinh Cong Son) 

베트남전쟁의 어두운 이면을 반영하는 노래는 일찍이 찐공션 작품에서 나왔다. 찐공션은 베트남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작곡가이다. 사람들은 이 작곡가의 인간애와 철학을 칭찬하고 존경한다.
 
찐공션이 부른 사랑 노래, 반전 노래 등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접 아시아 국가에서도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찐공션의 노래 중 반전 노래는 전쟁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작가 찐공션이 전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름과 괴로움을 관찰하고 묘사만 한 것이 아니라 그는 직접 민간인들이 당한 수난을 이해하는 내용의 감동적인 노래들을 많이 창작했다는 점이다. 베트남전 동안에 찐공션의 반전곡은 남베트남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고 평화를 위한 투쟁의지를 높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남베트남의 정권은 찐공션의 곡들을 부르는 것을 금지시켰고 심지어 북베트남의 정권도 찐을 싫어했다. 그의 노래에서는 베트남전을 내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독립 후에도 오랜시간 찐공션의 곡을 국내에서 유통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외국으로 이민간 베트남 사람들도 계속해서 찐공션의 곡들을 비판하고 경멸했다.
 
하지만 1980년부터 찐공션은 작곡을 다시 시작했고 베트남의 새로운 제도들을 칭찬하는 노래를 지었다. 그때부터 베트남 정부는 찐공션을 감시하는 일을 그만두었고 찐공션의 노래를 사람들이 다시 부를 수 있게 허락했다. 배트남 사람들은 찐공션의 반전곡을 통해 전쟁의 끔찍한 이면을 떠올리고 평화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소설가 바오닌(Bao Ninh)의 <전쟁의 슬픔>
   


▲ <전쟁의 슬픔> 

바오닌(Bao Ninh)은 베트남의 작가이면서 베트남전 당시 군인이었다. 그는 참전 중 전쟁의 끔찍하고 야만스러운 상황을 목격했고, 이를 모아 <전쟁의 슬픔>이라는 소설을 써냈다.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끼엔’이라는 인물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이다. 끼엔은 종전이 된 후에도 전쟁의 슬픈 단면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군인, 총, 탱크-이는 베트남인에게 아주 평범한 것들이다. 전쟁은 별일이 아니다. 전쟁은 평범한 것이다. 그런데 평화는? 평화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게다가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는 편을 보는 것은 (…) 정의가 이겼다고 하지만 잔인하게도 죽음과 폭력도 이긴 것”이라는 나레이션을 하게 된다.
 
1989년에 이 소설은 처음으로 베트남 작가협회의 ‘신작품지’에 나왔다. 나중에 소설의 이름은 <사랑의 운명>으로 바뀌었고, 이는 베트남 문학계에서 가장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991년에 몇명의 작가들이 경멸적으로 이 책을 비판했고, <사랑의 운명>은 사회적으로 핫이슈가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책은 외국에서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3년 무렵 이 소설에 대한 외국의 평가와 국내 평가의 차이가 커지자 베트남인들은 다시 이 책을 찾아 보게 되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은 베트남의 한 시대를 공고히 차지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바람이 베트남 전체를 사로 잡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쟁에 대한 인식도 변해가고 있다. 많은 베트남인들은 더 이상 베트남전을 성스러운 전쟁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베트남인들은 전쟁이 주었던 아픔, 고통, 시름, 괴로움 등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고 더 이상 전쟁이 아름다운 승리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 그들은 베트남전 후에 남아있는 많은 희생자, 피해자,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땅 등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인들은 여전히 ‘전쟁은 평범한 것이고 평화는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전의 영향은 오랜 세월 계속될 듯 하다.  
   



투엔 응웬 응옥뗀 / 대학원생·성공회대 MAINS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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