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8-11-13   2157

[아시아 인권옹호자-2] 무니르, 인도네시아의 양심이자 인권 영웅

아시아 국가의 인권과  민주화의 자취를 찾아서
아시아 인권옹호자 전기 중심으로

 

올해는 유엔이 인권옹호자선언 (UN Declaration on Human Rights Defenders)을 채택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국제연대위원회는 버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삶을 조명해 보는 기획 연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일대기를 통해 살펴보는 각 국의 인권 상황과 민주화의 자취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롭게 아시아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인도네시아의 양심이자 인권 영웅, 무니르

이름:  무니르(Munir Said Thalib, 1965 ~ 2004)
국가 : 인도네시아(Indonesia)
분야 : 인권 운동, 반부패운동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시작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통치 시대 이전에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각 종족들이 자치로 통치하는 여러 나라들이었으나 네덜란드 통치 후, 독립을 하는 과정 속에서 한 국가가 되었다. 350년이 넘는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군정 하에 있다가, 1945년 8월 17일 민족운동 지도자 수카르노와 하타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독립이 선언되었다.

인도네시아 지도_ 붉은색 표시 지역은 아체

1963년 수카르노가 군부의 지지하에 종신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군부와 공산당의 대립은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에 1965년 ‘930 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를 수하르토가 평정하고 수카르노 지지 세력과 인도네시아 공산당세력을 괴멸시켜 수하르토 독재체제를 수립한다. 한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930 사태’ 이후 1966년까지 공산주의자로 몰려 살해된 숫자는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300여 종족이 600여 종류에 가까운 지역언어를 구사하며 독자적이고 독립적 문화를 발전시켜온 1만7508개 도서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대국 인도네시아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종족들과 자바섬을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중앙정부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갈등 지역이 바로 아체지역이다.

1999년 동티모르 독립 이후 아체의 인권상황은 매우 악화되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아 동티모르의 독립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치를 외치는 아체인들을 무자비 하게 탄압했다. 아체에서 인도네시아 군인과 경찰이 자행한 불법연행, 납치, 고문, 사살 등과 같은 인권유린은 쉬이 일어났다.

식민 지배와 내전으로 얼룩진 ‘불행한 땅’_아체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옹호자이자 웅변가

무니르(Munir Said Thalib)는 인도네시아의 군부 및 정보기관의 인권침해와 아체 관련 정부정책을 비판했던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운동가였다. 그는 1992~1996년에 동부자바에서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해 투쟁했고, 1996~2003년에는 자카르타에서 수하르토 체제가 자행한 활동가 납치실종사건과 동티모르 인권침해 사건들을 다뤘으며, 비극적 죽음을 맞기까지 2003~2004년에 걸쳐 임파르살 소장으로서 활동했다.

무니르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인권옹호단체로서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 변호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법률구조재단(이하 YLBHI: Yayasan Lembaga Bantuan Hukum Indonesia) 수라바야 지부의 노동분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수하르토 체제는 국내자본가와 외국인 투자자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하였기에 노동문제는 아주 중요한 이슈였다. 그는 노동분쟁 사건들을 다루는 전문적 능력과 기자들에게 흥미를 끌만한 뉴스를 제공하는 기민한 능력을 지녀 노동자들과 기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는 법정, 노동부, 지방 및 중앙 노동분쟁조정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을 직접 변호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완성하는 일을 수행했다.

YLBHI에 접수되는 사건들의 대다수는 노동법이 보장한 정규적 권리 위반과 해고 관련 사례들이었다. 대표적인 활약으로는, 시도방운사의 일방적인 해고 사건이 있다. 무니르는 해고자들이 위법행위에 관한 법률조항에 근거하여 회사 측을 지방법원에 제소하도록 제안하고 후원했다. 그 결과 1995년 대법원 판결로 위법행위에 관한 조항으로 노동자들이 승소한 첫 사례이자 노동자들이 법정에서 회사 측을 해소시킨 최초의 사례를 만들어 냈다. 또한 그는 군부의 노동문제 개입과 자본과의 협력이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위법행위를 자행한 죄목으로 시도아르조 지역주둔군사령관 등을 지방법원에 고발하도록 해고자들을 고무시켰다. 또한 생산성과 생산품의 질에 비해 지나치게 적게 지급되는 임금실태를 보고, 정부가 최저임금권장선을 발표하면 인도네시아의 4대산업지대의 임금사정을 조사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사회에 고발하였다. 그의 이러한 역동적인 활동은 YLBHI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고 1996년 YLBHI의 운영국 차장으로 승진했다.

무니르 활동사진

 1997~1998년 수하르토 체제의 말기에 활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납치가 자행되자 YLBHI와 자카르타의 몇몇 인권운동단체들이 연대하여 실종및폭력피해자대책위원회(Kontras: Komisi untuk Orang Hilang dan Korban Tindak Kekerasan)를 1998년 3월 20일에 결성하였다. 무니르는 이 위원회의 총무국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특전단(Kopassus)의 비밀작전팀(Mawar)에 의해 자행된 활동가 납치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가는데 성공하였고 특전단의 몇몇 장교들은 법정 처벌을 받았다. 또한 1989~1998년에 아체에서 수행된 군사작전 중에 인권침해를 자행한 자들이 법정에 세워져야 하고 군부의 각종 면책특권이 중단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인도네시아의 군부를 비판하는 웅변가로 유명했다. 거는 군부에 의해 자행된 동티모르, 파푸아, 아체 지역에서의 인권탄압행위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동티모르 지역 인권침해 조사위원회 위원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인권침해 혐의를 받는 장군들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서슴없이 조사를 추진하였다. 당시 막강한 귄력을 지녔던 위란토 장군은 와히드 대통령에 의해 장관직을 박탈당했다.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은 무니르를 용감한 인권운동가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했다. 1998년에 무니르는 콘트라스 총무국장 자격으로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상 얍 띠암 힌 상(Yap Thiam Hien Award)을 수상하였다. 이어 2000년에는 인권운동가를 위한 대안적 노벨상(Rights Livelihood Award)과 유네스코의 만다젯 싱 상(Mandajeet Singh Award)를 수상하였다.


2002년 초에는 콘트라스의 소장역할을 수행하면서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인도네시아대학교, 가자마다대학교에 소속된 안보문제 전문가들과 함께 군부와 경찰에 대한 조사연구를 시작했다. 이어 그는 아체와 파푸아 지역의 인권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권감시단체를 결성하고자 하였다. 2002년 11월에 18명의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임파르샬(Imparsial)을 설립, 만장일치로 소장으로 선출되었다. 임파르샬은 ‘시민사회의 자유 대 반테러 전쟁’ 캠페인을 통해 테러리즘을 저지하려는 정부 정책이 시민사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실상을 고발하였다. 또한 태국에서 개최된 납치실종에 반대하는 아시아연맹(AFAD) 회의에 참석하여 의장활동을 하였다.

그 후 군법 초안을 비판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해악을 초래할 수 있는 군법의 일부 조항들이 국회심의과정에서 수정될 수 있도록 하였고, 해군참모장과 국방부에 대한 항의행동을 전개하여 해군이 불법 선박거래를 중단토록 하였다.

이처럼 인권투사로 활동하는 동안 무니르는 다양한 협박과 테러에 직면했다. 동부자바주 주둔군사령관인 하르또노 육군소장은 노동자들을 계속 선동하고 다니면 “소시지를 만들어버리겠다”고 직접 협박하였고, 정보기관원들과 폭력배들도 전화나 편지로 종종 위협을 가했다. 이러한 협박에 대해 무니르는 대수롭지 않게, “모든 일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피할 수 있다면 당연히 피해야지만,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 만약 우리가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이 이미 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2000년에는 콘트라스 사무소 문 앞에서 두 개의 폭발물이 터졌고, 같은 해에 말랑의 바투 지역에 있는 친가로 고성능폭발물이 보내졌다. 2002년 3월에는 유혈짜왕지역민회라는 이름을 내건 5백명의 해결사들이 콘트라스로 들이닥쳐 사무실을 파손시키고 무니르를 위협했다.  2003년 9월에는 무니르 집 안마당으로 폭발물이 담긴 봉지가 투척되기도 하였다 

폴리카퍼스(Pollycarpus Priyanto) 재판 사진

2004년 9월 7일 석사학위 과정을 위해 네덜란드로 향하던 중 무니르는 인도네시아 비행기 안에서 비소에 중독되어 살해당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전직 조종사였던 폴리카퍼스(Pollycarpus Priyanto)가 지목되었고 그는 가루다 항공의 고위층이었던 인드라(Indra Setiawan)의 명령을 받고 무니르의 오렌지 주스에 비소를 넣었다고 자백했다. 무니르의 지지자들은 그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사주한 세력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정부에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인도네시아, 민주화로의 나아가려는 노력 
2001년 7월 23일 국민협의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와히드(Abdurrahman Wahid)가 무능력과 부패 의혹 등으로 집권한 지 21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스카르노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 부통령이 신임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았다. 그후 2004년 인도네시아의 첫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군 장성 출신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안보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현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현재 수하르토 시기와 달리 군의 정치•사회적 기능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한편 1998년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인도네시아의 인권단체 및 NGO들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등 인도네시아 민주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한다.
 

정리: 김연재, 최유미 국제연대위원회 자원 활동가

참고 정보 사이트
https://www.kdemo.or.kr/
http://en.wikipedia.org/wiki/Munir_Said_Thalib
http://www.kontras.org/eng/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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