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7-10-07   901

[아시아포럼 참관기] 한국만이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할까요?

우리도 중심의 하나, 모두가 아시아의 중심이 되어야

몇 해 전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등 나라별 작가 모임부터 이들을 아우르는 ‘아시아문화네트워크’,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문화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아시아 전문 문예지 [ASIA]의 창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문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개별 나라들의 관심에서 출발해서 점차 아시아로 사고를 확장하고 다시 한층 폭넓고 깊게 한국의 문제를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 문인들에게 있어, 아시아는 무엇일까요?

지난 9월 18일, 소설가이자 중앙대 교수, 그리고 문예계간지’ASIA’ 편집주간인 방현석 선생을 모시고 ‘아시아 연대와 문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비 내리는 화요일 저녁, 참여연대의 새 보금자리 통인동에 모여 앉은 우리는 곧장 오늘의 안내자, 작가 방현석님의 천천하고 친절한 안내에 따라 “썰물과 같았던 90년대 초반”으로 향했다.

그는 천천히 80년대의 학생선거와 학생운동, 그리고 대망하던 민주화, 공산권의 붕괴 등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흔적이 진하게 남겨진 곳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아마 우리 중 누군가는 그 흔적을 찬찬히 훑고, 만지는 이도 있었으리라. 우리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대한 시대의 조류 앞에 느꼈던 분노와 슬픔, 상실의 자리, 그 곳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베트남 이야기… 그가 우리에게 마주하게 한 베트남은 1940년대 독립을 앞둔 베트남이었다. 독립 이후 분단과 베트남 전쟁의 발발에 이르면서 우리는 낯익은 이들을 발견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 ‘민주주의의 수호자’요, ‘애국’ 청년의 이름을 달고 베트남으로 간 젊은이들, 그러나 금세 뒤돌아 보니 그들의 이름은 ‘학살자’로 바뀌어 있었다. 누가 그들에게 이름을 붙였는가, 누가 그들을 베트남으로 보냈는가. 타인을 향해 이름을 붙이는 그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2007년 오늘, 우리와 베트남과의 만남에는 과거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은 우리에게 ‘한류’ 열풍이 이는 곳이며, 중요한 ‘투자국’ 중 하나이다. 최근엔 ‘국제결혼’이 베트남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그의 찬찬한 안내의 종착지에서 마주한 질문은 우리가 만나는 아시아, 우리가 기대하는 아시아는 어떤 모습인지이다.

정부가 찾은 대답은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이 아니라 그 누구든 ‘중심’이라 자처하기 시작하면, 각각의 고유한 가치와 아름다움은 상실하기 마련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자꾸만 타자를 가르치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훈련하려는 의지와 자세를 선명하게 해야 할 때라는 보탬과 함께.

모두가 중심이 되는 아시아를 기대하는 그는 문예계간지 [ASIA]를 통해 더 넓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아시아 각 국의 시, 소설, 수필에 담겨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아시아적 상상력의 자유로운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중심’과 ‘중심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익숙한 내게는 다소 낯선 여행이었다. 아시아에 대해 그가 가진 무언가 ‘중심’이라 할 만한 것을 가르쳐 줄 거란 기대와는 달리 그의 안내는 자꾸 나, 우리네 삶을 향해 있었다. 이처럼 나, 우리를 향해 있는 안내와 짧은 여정은누군가에 의해 늘 타자화되고, 평가되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그의 말대로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눈으로 보는 훈련’의 낯선 경험이자, 진지한 첫 걸음이었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그의 삶의 흔적 일부를 말하는 모임의 이름을 곱씹어 보며, ‘이해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소중함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아름다운 결과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경숙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간사)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