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3-12-27   4024

[아시아생각] 민주화의 위력 보여준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운동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민주화의 위력 보여준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운동

기업 단위 초월한 노동연대에 적극적인 배경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운동은 지난 2년간 총파업을 세 차례나 성사시켰다. 노동자들은 빈번하고 점차 강화되는 연대시위를 통하여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올 연말에도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연대행동을 각지에서 전개하였다.

지난 달 초에 전개된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라 아웃소싱 철폐와 전국민 의료보장 시행도 요구하였다. 홍콩의 아시아노동정보센터(AMRC) 활동가는 요즘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노동운동이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역동적인 노동조합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활력을 상징한다. 집권 32년간 노동조합의 독립성과 파업권을 제한하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1998년에 물러난 뒤에 복수노조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그 후 15년 남짓한 시간 동안 노동조합연맹들은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해를 대표하며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조직적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경제호황과 정치적 민주화 따라 힘받는 노조활동

물론 노동조합의 활성화와 임금인상은 경제호황의 현상이다.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난 수년간 연평균 6%대의 성장률을 달성하였고 덕분에 GDP 규모 세계 16위 국가로 성장하였다. 지속적인 경상수지흑자와 대외부채 감소로 국제신용도 상승하였고, 외국인직접투자도 해마다 증대하며 기록을 갱신하였다. 정부는 유류와 전기에 대한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삭감함으로써 재정흑자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올라갔다. 경기호황 속에서 물가가 오르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요구가 거세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슷한 경제수준의 이웃나라들에서도 임금이 상승하고, 특히 중국의 제조업 임금은 인도네시아를 크게 앞질렀다. 경영자들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임금을 국제적으로 비교한다. 중국의 제조업 노동자가 300 달러가 넘는 월급을 받고 있으니 자카르타의 노동자들도 200 달러 이상의 월급을 요구할 수 있고 곧 300 달러가 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행동주의의 대두는 정치적 배경도 깔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통령과 국회의원에서부터 시군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까지 모두 직접 선출된다. 총선마다 수십 개의 정당이 경쟁하고 8~9개의 정당이 국회의석을 차지한다. 경쟁이 심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과 출마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다.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은 시군단위 임금위원회에서 정해지고 주지사가 인준하므로 지방선거에서는 임금문제가 중요하며 자치단체장은 노동자의 임금관련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중앙정부의 입장도 노동자들에 대해 온정적이다. 인력이주부 장관은 인도네시아에서 저임금으로 외국투자자들을 유인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기업인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베풀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 예정되어 있으니 정당과 정치인들은 더욱 노동자의 입장을 고려 할 수밖에 없다.

기업가들이 집단적으로 불만을 피력하자 대통령이 최근에 최저 임금 인상률을 제한하려 했으나,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월권 논쟁만 유발했을 뿐이다. 정부가 정말 해볼 만한 일은 계급타협의 패키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노동이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한다면, 정부는 기업과 함께 노동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회의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정부는 복지의 제도적 진전이나 행정 간소화와 부패척결을 통한 경영부담축소 같은 약속으로 임금문제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타협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국단위의 3자 조정을 원활히 이끌 수 없었고 이 역시 노동조합 행동주의의 정치적 배경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실용적 연대’로 주목받는 인도네시아 노조활동

그런데 최근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운동에서 주목 할 만한 현상은 연대성이 놀랍도록 신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와 집단폭력으로 불안정했던 민주화 초창기만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광범한 노동연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결사의 자유가 80여개의 노조연맹이 출현하는 노조 분극화를 초래하였고, 민주화에 따른 다양한 기회와 과제는 독재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중간계급활동가들의 이탈을 낳았었다.

광범한 노동연대의 형성 요인은 우선 임금구조의 문제에서 찾아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최저임금인상을 위한 노동연대가 활발한 이유는 ‘최저임금=최고임금’이기 때문이다. 기업별로 임금편차가 크다면 노동자들이 기업별 임금교섭에 몰두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기업들 대부분은 최저임금에 맞추거나 그보다 약간 적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별 최저임금교섭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최저임금 인상부터 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들이 단체로 인색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기업단위를 초월하는 단체행동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계약직 노동과 아웃소싱이 만연됨으로써 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200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결사의 자유와 파업권을 인정하였지만 외주노동을 법제화하였다. 그런데 기업인들은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 외주노동을 지나치게 남용하였다. 고용불안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민중 일반의 이해관계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이미 의료보험에 가입된 정규직 노동자들이지만 언제라도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전국민 의료보장 같은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는 연대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연맹들이 극단적 분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실천하여 연대의 정신과 관행을 정착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의 노동조합연맹 대다수는 경제적 이익을 ‘거리의 정치’를 통해 관철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거리로 집결시킬 수 있는 어떠한 조직과의 연대도 가능하다는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수준의 사안별 연대와 공동행동이 실험되었다. 조직간 연대를 통하여 거대규모의 시위동원이 가능해졌고 일관된 요구사항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조합연대는 작년에 매우 경쟁적인 3대 노총이 협력사무소 인도네시아노동자의회(MPBI)를 결성하는 수준까지 발전하였고 덕분에 총파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올해는 거대노총들이 군소노련들과 좌파노련까지 포함하는 더 광범한 노동운동전국회의(KNGB)를 결성하여 총파업을 강행할 수 있었다. 이념과 조직을 초월한 실용적 연대가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을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을 새로이 평가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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