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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원회  l  국경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합니다

  • 칼럼
  • 2013.12.11
  • 3188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태국, 끝나지 않은 위기의 정치드라마

전면적 사면법안과 헌법개정안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

 

지난 10월 31일부터 한달여 지속된 태국의 정치위기는 12월 5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생일을 맞아 일시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12월 9일 대규모 시위가 재개되면서 다시 고조되었으나 잉락 친나왓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한 고비를 넘기는 양상이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과 쑤텝 트억쑤반이 이끌고 있는 민주개혁위원회(꺼꺼뻐써, People's Democratic Reform Committee)는 의회해산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위기정국은 제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위기의 발단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포함된 전면적 사면법안 하원 통과에서 시작되었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부결되었으며 정부는 이송된 법안을 재발의 하지 않겠다고 수차 다짐했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반정부 연합세력들은 이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면법안의 원안이 하원에 처음 상정되었을 때만 해도 정부는 탁신의 사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원안 심의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수정안이 만들어져 탁신 사면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수정안은 탁신의 사면은 물론이고 해석여하에 따라 몰수재산의 환원도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쿠데타 후 탁신 전 총리의 부정부패를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산조사위원회는 탁신 부부의 460억 바트(약 1조 6000억 원)상당 금융자산에 대해 동결 조치를 내렸으며 이후 대법원은 이를 몰수하기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탁신은 2006년 쿠데타로 물러난 후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되었지만 형 집행을 피해 해외에 망명 중이다.

 

반정부세력은 사면법안문제를 호기로 삼아 그 동안 잉락 총리 집권 2년여 동안의 몇 가지 실정-쌀수매가 정책 실패와 메가프로젝트 추진의 불투명성, 부정부패 등-을 이유로 들면서 정권퇴진을 주장하게 됐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은 "탁신체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사태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야권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실패한 정책이나 법안들은 이른바 "탁신 킷 프어타이 탐"(탁신이 생각하면 프어타이당은 해낸다) 정책기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야권은 마치 의회 내 소수파로 그 동안 겪은 설움을 씻어내려고 단단히 벼르는 듯했다. 반정부세력의 리더인 쑤텝은 사면법안을 지지한 하원의원 310명의 탄핵안을 상원에 제출하였으며, 태국정치의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는 "탁신체제" 제거를 위해 시위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탄핵안은 상원을 거쳐 반부패위원회(NACC)에서 검토 중이다.

 

전면적 사면법안의 상원 통과 실패의 와중에 잉락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시킨 또 한가지의 사건이 발생했다. 잉락 정부는 사면법안을 통과시키기 직전 쿠데타 후 만들어진 2007년 헌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지난 해 7월 태국 헌법재판소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위헌은 아니지만, 2007년 헌법이 국민투표를 거쳤기 때문에 헌법 전면 개정을 위해서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었다. 당시 여당은 헌법 291조를 개정해 헌법전면개정을 추진하려 했으나 헌법재판소 판결 후 전면 개정을 피하고 일부 중요 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추진해 왔다.

 

2006년 쿠데타 후 태국에서 만성적인 정치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탁신의 귀국문제에 있었다. 잉락정부 집권 후 지금까지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어왔다. 그 중 한가지는 전면적 사면법안의 추진이고 또 한가지가 헌법개정이었다. 헌법개정의 궁극적 목적은 탁신의 사면복권을 겨냥하고 있었지만 야권의 거센 반발로 일단 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몇 개 조항의 개정만을 추진했다.

 

그 중 한가지가 상원선출 방식의 변경이다. 현행 헌법상 상원 의원은 76 개 주에서 각 1명씩 총 76명을 선출하고, 74명은 직능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선임위원회에서 임명하고 있지만 개정안은 상원 전원 선출 방식을 직선으로 하고 하원의원의 직계 가족도 상원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헌법재판소, 군, 국왕의 역할

 

이 개정안이 상하양원을 통과하자 민주당에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 68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제소했다. 헌법 68조는 "어떤 누구도 헌법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해서 입헌군주제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조항으로 이를 위반하는 정당은 해산되고 그 정당 집행부는 5년 동안 정치 활동이 금지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개정안이 헌법 68조를 위반하기는 했으나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해산을 초래할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임명제와 직선제로 선출되는 상원의원 모두를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면 의회 내 견제와 균형을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했지만 동 법안을 지지한 정당의 해산 및 상·하원 자격 박탈 요청에 대해서는 판결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기각한 것이다.

 

프어타이당을 비롯한 탁신계 정당들의 헌법재판소와의 악연은 이번 만이 아니다. 2006년 5월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치뤄져 타이락타이당이 압승한 총선무효 판결, 2007년 5월 타이락타이당의 해산, 2008년 9월 팔랑쁘라차촌당 출신 싸막 쑨터라웻 총리의 총리직 박탈, 2008년 12월 총선부정혐의로 팔랑쁘라차촌당을 해산 시킨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사법부를 통해서 편파적으로 탁신 계열의 정치세력을 견제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뚤라깐피왓)주장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정부여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 등 반정부세력은 정부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은 비헌법적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찌 되었든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사태악화를 증폭시키게 되었다. 야권은 정부가 계속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홍보전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어 반정부세력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정부 불복종 운동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을 이끌기 위해서 야당인 민주당 국회의원 9명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국왕에게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은 정통성을 상실한 현 정권을 대신하기 위한 국민회의 설치 허가를 요청한 것이다.

 

반정부세력은 노골적으로 정권퇴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정부 청사를 점거하는 무력시위에 나섰다. 정부는 이미 사면법안을 철회하기로 약속했음을 강조하고 시위의 불법성을 홍보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정부 세력에 대항해 친 정부 레드셔츠 총동원령을 내렸다. 2008년 반정부 옐로셔츠가 정부청사와 쑤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한 후 비합법적인 위기 상황이 조성된 가운데 정권을 빼앗긴 뼈아픈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맞불작전인 셈이다.

 

양 세력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전개하던 중 반정부, 친정부 시위대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5명의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이번에는 군이 나섰다. 그 동안 시위진압은 주로 경찰이 담당했다. 경찰의 진압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려고도 했으나 군이 선뜻 동의해 줄 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런 차에 군은 양측의 중재역을 자임해 잉락총리, 쑤텝과 3군 사령관의 모임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쑤텝은 난국 타개방법으로 현 정부와 의회는 믿을 수 없으니 새롭게 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중립적 인사를 총리로 임명해 "탁신체제"를 제거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주장을 했으며 잉락 총리는 이런 초헌법적 발상에 대해서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악화되고 있는 정국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느껴 자신의 퇴진과 의회해산은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은 더 이상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으며 양측은 한 발씩 양보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군은 어느 편도 아닌 국가와 국민편에 설 것임을 강조했다. 모임 후 쑤텝은 중재역을 담당한 군의 미지근한 태도를 아쉬워하면서도 군은 자신의 편이라고 주장했으며 잉락은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태국에서 발생한 수 많은 정치변동 속에서 군이 민간정치세력 사이에서 중재적 역할을 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중재자의 역할을 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학습효과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그 후 치러진 2007년과 2011년 선거에서 탁신계열 정당인 팔랑쁘라차촌당과 프어타이당이 의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서 두 차례씩이나 재집권했다. 2001년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탁신계 정당은 승리한 셈이 된다. 고도로 정치화된 집단인 군이 이런 현실을 무시 할 리가 없다. 2010년 5월 친탁신 레드셔츠의 대규모 시위 진압과정에서 1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발생하게 해 지금까지 그 책임소재를 두고 시달리고 있는 군의 입장도 쿠데타 대신 중재자의 역할을 자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군부쿠데타 원인 중 한가지는 군부의 집단적, 개인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잉락 정부 집권 후 군의 자율성은 과도하게 보장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2006년 쿠데타 전 탁신 전 총리는 자신과 동기생인 군사예비사관학교 10기 생들을 각별히 챙김으로써 군내 파벌 조장으로 크게 비난 받았으며 쿠데타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잉락총리는 군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 국방부 장관직을 겸직하고 있다. 군 예산배정이나 장성급 인사 진급에서 군의 의사는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군은 적어도 군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은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 전 군을 대표해 해군사령관은 군은 다시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변화에 따라 태국에서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설은 항상 유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군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중재역을 담당했다 해도 군의 정치개입은 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군의 중재역할을 무언의 쿠데타(silent coup)라고도 부른다. 태국군은 지금까지 2006년 쿠데타, 2007년 헌법개정, 2008년 12월 민주당 연립정권 구성 등에 개입했을 뿐 아니라 2010년 5월 사태 무력진압 등 정국의 중요한 고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의 중재 직후 푸미폰 국왕은 86회 생일을 맞았다. 국왕 생일 축하식은 후어힌에 위치한 국왕의 이궁인 끌라이깡원 왕궁에서 치러졌다. 그 자리에는 이미 94세가 된 그의 복심으로 불리는 왕실자문기구 추밀원의장 쁘렘 띤쑬라논, 잉락 총리, 3군 사령관을 비롯해 전현직 정군관계 인사들이 모두 기립자세로 서 있었다. 앞쪽 노란색 장막이 거치면서 앉은 채로 나타난 국왕은 다음과 같은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국가이익과 안정을 위해서 각자가 담당해야 할 임무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는 것이었다.

 

고승의 법어와도 같은 이 말에 대한 해석은 분분할 수 있지만 양 정치세력간의 팽팽한 대결로 어느 한편을 들 수 없는 입장표현으로 해석된다. 항상 정치 개입에 대세순응적 성향을 보이며, 왕실보존과 강화를 제1의 조건에 두고 있는 국왕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정치위기 속에서 치러진 음향효과가 수반된 엄숙한 축하식 장면과 상황을 본 느낌을 전하자면 입헌군주 푸미폰 국왕의 위상은 가히 살아있는 부처면서 동시에 고대 브라만-힌두사상에서 나타나는 아윳타야 왕조의 신왕적 존재(Devaraja)를 방불하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존재는 태국사회에서 천근과도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음은 확실하다. 국왕은 고령의 나이로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자제할 것이다. 그럴수록 앞으로 위기상황의 전개과정에서 사법부와 군이 더욱 국왕의 의중을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끝나지 않은 위기

 

국왕의 생일이 끝나자 마자 쑤텝과 민주개혁위원회는 12월 9일을 "마지막 전투의 날"로 정하고 수 백만 명의 시민들로 하여금 정부청사로 모여줄 것을 호소했다. 그 전 날에는 민주당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시위에 힘을 실어 주었다. 9일에는 쑤텝이 장담한 정도의 숫자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시위대가 몰려 오기 전 잉락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했다. 또 비상시국을 타개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국민투표 실시와 헌법개정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행 헌법은 의회 해산 후 45-60일 내에 총선을 치러야 하며 다음 선거까지 현 내각이 과도내각으로 국정을 책임지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이에 따라 총선일은 2014년 2월 2일로 정해지고 몇 시간 만에 국왕의 승인까지 받아 두었다.

 

하지만 의회해산 후 민주당과 민주개혁위원회는 의회해산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과도내각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부터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기 위해서 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임명총리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말하자면 타협 없이 원래 주장대로 자신들의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주장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는 상태이다.

 

쑤텝이 주장하는 국민회의 구성과 국왕이 임명하는 임명총리제에 대해서는 잉락 정부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그 위법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실 정상적으로 내각책임제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내각이 불신임을 받으면 의회해산 후 총선을 다시 치르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긴 하나 선거를 치러보아야 현 정치구도상 또 다시 집권여당인 프어타이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쑤텝 측은 조기총선을 일축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계속 끌고 가면서 "선거 없이 의회를 대신할 국민의회와 중도파 인사를 임명총리로 세우는 국민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최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잉락 과도정부를 무시하고 이런 주장을 실현시키려 한다면 합법성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국왕으로부터 의회해산과 총선일 확정, 잉락 총리의 과도내각 총리 임명을 인준 받은 상황에 대한 대처는 큰 관심사가 된다.

 

며칠 전 태국 내 한 유력 언론 조사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태국의 정치는 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것이라는 응답은 30%가 안됐으며 부정적인 응답이 70%를 차지했다. 태국 사람들 고유의 특성 중 한가지가 '름 응아이"(쉽게 잊어버린다)다. 정치개혁, 임명총리, 국민회의, 헌법개정, 국민투표 등은 정치 위기마다 출현했던 단골메뉴였지만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항상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소수 야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의회 내 다수세력에 자만하면서 실정을 행한 잉락 정부에 대한 방콕 중산층의 반란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은인자중하고 있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과 대다수 농민들을 대변하는 레드셔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정상적인 선거에 의해 당선된 정부가 외면 당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아직까지 적극적인 판단과 행동을 유보해 두고 있는 것이다. 쑤텝과 민주개혁위원회가 주장하는 것 같이 현재 태국의 모든 문제들이 "탁신체제"때문인가? 그들은 반문하고 있을 것이다.

 

태국 위기의 정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기를 진정으로 끝낼 마음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주요 정치세력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정한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개혁은 "탁신체제" 만을 일소하고 또 다시 권력구조만을 바꾼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태국사회에 켜켜이 쌓여 있는 구조적인 경제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계층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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