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5-04-30   1180

[아시아생각] IS의 광기는 美 지배전략의 산물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5 아시아생각] ① 아웅산 수치, 미얀마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이유는?

IS의 광기는 美 지배전략의 산물

서구 이익의 폭력적 관철, 중동뿐 아냐

정재원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슬람국가(IS) 사태는 단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난 1월, IS에 충성을 맹세한 파키스탄의 수니파 무장단체 ‘준둘라'(신의 아들이라는 뜻)가 파키스탄 남부 신드 주 시카르푸르에 있는 이슬람 시아파 사원에 폭탄공격을 가해 56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지난 4월 18일에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잘랄라바드시에서 자살 폭탄공격이 발생하여 최소 33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역시 약화된 탈레반으로부터 이탈한 세력을 모아 규합한 IS의 소행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최초로 일어난 IS의 무장공격 행각이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전사들이 무려 4000명 이상에 달하며,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은 작년에 이미 IS와 연대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주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 국적의 위구르인 참가자들도 300명 이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국가들 뿐 아니라, 호주 등 IS에 결합하려는 조직, 혹은 IS에 가담하기 위해 중동으로 향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IS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는 IS와 관련한 수많은 사건들과 국제사회의 대응들에 관해서는 많은 소개와 분석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의 지배전략과 이에 대한 저항, 그리고 변질이라는 조금 더 근본적인 역사적 상황들에 주목하여, 민족․종교 간, 수니․시아 종파 간의 갈등에 집중하다 놓칠 수 있는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통합 칼리파국가가 아닌 수많은 공화국들을 만들어 놓은 영국과 프랑스의 뒤를 이어 이제 미국이 레반트와 석유와 가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확보를 위해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광의의 중동’ 지역 전체를 통제하는 주요 행위자로 등장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목표는 중동지역의 외교적, 군사적 수단을 통해 중동지역의 불안정과 무질서를 지속시키거나 ‘새로운 중동의 무질서’를 형성하는 데에 있다. 범이슬람주의나 범아랍주의에 입각하여 자원을 바탕으로 한 이 지역의 통합과 발전은 미국 등 서구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적절한 범위와 수준 하에서의 지역 국가들 간의 분열과 갈등이 조장되어 왔으며, 이러한 무질서와 역내 빈부의 격차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미국이 지배하는 금융기구들에게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아직 현실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수급과 특정 국가의 패권 약화를 목적으로 하는 민족과 종파에 따른 국가 분할과 신생 국가 건설 등 새로운 ‘중동 지도 그리기’ 계획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 따라서는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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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주민들이 IS 지도자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얼굴에 X표시를 한 채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러한 맥락에서 동유럽과 구소련 국가들에서의 소위 ‘색깔 혁명’들에 이은 중동에서의 ‘아랍의 봄’ 등 소위 ‘민주화 혁명’은 분명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몸부림인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러한 과정은 미국과 서구의 해당 지역 지배 전략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실제로 붕괴된 것, 여전히 부당하게 남아 있는 것, 극단적인 형태로 성장한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인 인민 민주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는 이슬람권에서는 초유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은 급진적 개혁을 시행하여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적인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강한 반감을 초래했는데, 1979년 인민 민주당 내 분열로 인한 정권 붕괴를 우려한 소련군의 개입이 이뤄지자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친미 독재 국가인 파키스탄과 사우디 등과 함께 이슬람 무자헤딘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감행했다. 바로 이러한 미국의 반소 운동 지원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연대가 시작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 경험은 이후 수니파 근본주의 조직 알 카에다가 출현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란에서도 미국은 또 다른 이슬람 급진주의(시아파) 탄생에 큰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비록 팔레비 왕이 지배하는 입헌군주제하에서였지만, 총리 모사데그를 중심으로 석유 국유화 등 강력한 반외세 개혁이 추진되었는데, 1953년 미국 CIA와 영국 정보부는 자헤디 장군으로 하여금 친 팔레비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여 모사데그를 체포, 추방하는 공작에 성공하였다. 이로 인해 공화주의나 사회주의 세력은 약화되고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어 1979년 이슬람 혁명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 지역에서의 좌파적 대안의 흐름의 왜곡과 종말이라는 요인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와는 차별화된 민족적 사회주의를 주장한 아랍사회주의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요소를 인정하고, 사적 소유도 인정하면서도 범아랍주의와 같은 아랍 특유의 민족주의, 반제국주의적 아랍 민족 해방 관점에 세속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이념이다. 


냉전 기간 아랍사회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사이에서 독자적인 사상으로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좌파적’개혁가들의 정권 연장용 이념에 불과한 것이었고, 기존 목표를 망각하고 197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독재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한 편으로 아랍 사회주의 세력들은 제국주의와 이들과 결탁한 부패한 정부에 대한 투쟁 과정 속에서 이슬람주의자들과 연대하기도 했지만,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사회 개혁 영역에서 그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의 개혁적인 세속주의 정권들은 미국에게 위협적인 정권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정권 붕괴와 더불어 이슬람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1953년 나세르 주도 하에 반제국주의를 지향하는 아랍사회주의 세속정권이 세워져 비동맹주의를 주도하는 등 위세를 떨쳤으나, 시리아, 이라크 등과의 통일 아랍국가 건설이 좌절된 이후 사다트, 무바라크 등으로 이어지는 세속 군부 정권의 통치가 이어졌다.  


바트당으로 상징되는 또 다른 아랍사회주의 정당 운동이 발전한 이라크에서는 1958년에 쿠데타로 군주제가 붕괴되고, 당내 좌․우파 간의 갈등과 일련의 쿠데타가 계속된 끝에 1968년 공산당과 연결된 좌파가 숙청되어 우파가 주도하는 바트당이 정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1979년부터 후세인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시리아에서도 19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으나 당 내부에 대립이 생겨 1966년 좌파가 실력으로 정권을 잡았고, 1970년에는 우파인 하피즈 알 아사드가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대를 이어 바트당 통치가 이어져 왔다.  


예멘에서도 1962년 살랄에 의한 군사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예멘아랍공화국, 즉 북예멘이 건립되고,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남예멘지역에서는 소련의 지원 아래 1967년에 예멘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갈등을 해결하고 통일국가를 세운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 중 유일하게 공화제를 채택한 국가로서 살레 대통령이 1990년에 집권한 이래 2006년 9월, 3선에 성공하여 계속 집권하였다. 이 당시 예멘에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성립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였는데, 이에 이집트도 군대를 파견하여 예멘 공화국을 지지하였다. 양대 아랍 국가의 대결은 결국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한 공화국, 즉 아랍 세속주의 진보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을 비롯한 왕정 국가, 즉 아랍 보수 국가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별도로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아랍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했다. 1969년 9월 집권한 카다피 정부는 석유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분배 정책을 확대하는 등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면서 반미, 친소적 경향을 보여 왔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는 대서방 유화 정책을 표명해 왔다. 또한 전형적인 아랍 사회주의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지만, 1962년 독립 이후 이슬람 사회주의를 내건 폐쇄적 독재 정권이 이어지고 있는 인근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정권, 그리고 1957년 이후 마찬가지로 비동맹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창하다가 친서방적 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하던 튀니지에서도 1987년 이후 아랍의 봄 시기까지 벤 알리 정권 모두 세속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렇듯 이슬람주의의 발흥의 반대편에는 아랍사회주의에서 변질된 세속주의 장기 독재 권력이 존재했다.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랍의 봄’ 이후 거의 모든 반미 세속주의 독재 정권, 혹은 친미적으로 돌아섰으나 여러 이유로 서구 입맛에 맞는 정권으로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정권들만 붕괴되었고, 친미 왕정이나 친미 독재 국가들은 건재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좌파적 대안이 사라지거나 그러한 이름으로 장기독재를 구가하던 이들 국가에서 온건한 저항세력들은 항쟁 과정에서 소수파로 전락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범죄적 요소와 결합하며 주도 세력이 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IS로 집결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대표적인 친미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마저 온건 이슬람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이집트의 친미 세속주의 군부의 이슬람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타도를 위해서는 사우디와 터키 등의 IS와 같은 수니 이슬람 전사들에 대한 지원을 눈감아 주는 등 필요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지원도 마다하지 않아 왔다. 비록 터키나 아랍 에미리트 등 자유주의적 경향의 세속국가들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아랍사회주의 정권에서 시작된 세속주의 정권 하에서는 민족, 종교, 성별, 종파 간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추구되어 왔다. 세속주의적이고 개혁적 정책의 실행과정 속에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작금의 국가 간, 민족 간, 종교 간, 그리고 수니와 시아 간의 폭력적이고 격렬한 대립은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이후 일어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우리는 IS 사태가 있기 얼마 전인 2014년 7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폭격으로 1000 여 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을 기억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10년이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사망자만 21만 여 명에 이르고, 시리아 내전 이후 단 45개월 동안 사망자만 20만 명이라는 이 끔찍한 현실 속에서 복수와 증오의 감정만 남은 빈곤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아랍인들의 분노와 좌절은 광신적 폭력으로 폭발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미국 등 서구의 이익 확보를 위한 세계자본주의 질서 재편 기도로 비정상적이고 범죄적인 요소들이 급격하게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이 만연한 불안정한 사회로 변화해가는 현실은 중동에서만이 아님을 깨닫고 시민사회가 대처해야 할 시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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