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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1.04.22
  • 1670


베트남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고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시에 하교를 하는 모습은 불그스레한 노을을 배경으로 학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착각을 일으키는 매혹이었다. 불과 십 오년 전 호치민 시내에서 매일 같이 연출되던 이 장면은 사라졌다. 형형색색의 유니폼과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바닷물을 가르는 새우 떼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이리저리 얽혀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호치민의 외양은 매일매일 변신하고 있다. 개방초기 길거리를 수놓던 씨클로(xich lo)는 시에서 발급한 번호판을 달고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꽃이나 껌을 팔기위하여 끈질기게 진로를 방해하던 소년, 소녀들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하여 어디론가 증발되었다. 식민시대, 전쟁, 그리고 사회주의 강성개혁(hard reform)시대를 상징하던 수많은 건물은 근대화를 상징하는 고층건물에 밀려 매일 역사의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백화점에 넘쳐나는 명품 진열대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불과 십여 년 전 안경, 모자, 신발까지 절도의 표적이 되던 빈곤의 땅이었음을 망각한다.

이러한 변화를 보고 성장주의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도이머이(Doi Moi)라고 통칭되는 개혁개방정책 이후 매년 평균 7-10%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정부의 정책방향 그리고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근면함에 경의를 표한다. 역사학자들도 베트남의 저력을 새삼 강조한다. 베트남이 캄보디아 내전을 포함해서 중국과의 큰 전쟁에서 자주 승리했을 뿐 아니라 전쟁에는 져본 적이 없는 천하강적 미국에게 1패의 전적을 안긴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숫자와 외양만 보면 베트남에 관한 이들의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은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베트남의 외형적 성장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이다. 베트남의 현재는 미래에 대한 예견을 유보하게 하는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해결되거나 해소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요구를 폭발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베트남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미래를 가장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은 나날이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이라고 부를 자랑하거나 현지인을 업신여기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웬만한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고 거들먹거리다가는 벤츠와 BMW에서 내리는 베트남인을 보고 머쓱해진다. 일부 공산당 간부와 관료들 그리고 신흥기업가들은 서울의 강북에 맞먹는 가격의 집을 수십 채 가지고 자녀를 비싼 국제학교에 보내거나 아예 미국유학을 보낸다. 나이트클럽에는 수백 달러하는 위스키를 여러 병 시켜 놓고 매일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반면 베트남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호치민의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50달러 정도이다. 더욱이 미숙련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을 한다. 이들이 아이 둘을 낳고 가족을 이루고 살려면 한 달에 400-500 달러는 필요한데, 현재의 임금으로는 부부가 모두 공장노동을 해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숙련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더 받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나날이 치솟으며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가 호소할 곳은 파업 밖에 없다. 베트남의 주요 공단에서 매년 여러 차례 파업이 불길처럼 번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외자기업의 경영자들도 노동자의 파업이 “떼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파업이 일어나면 주동자와 요구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협상이 쉽지 않다는 점을 불만스러워 한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와일드 캣(wildcat)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조합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파업을 감행하면서도 일자리를 잃거나 경찰의 주목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의 생활이 힘들어지는 만큼 베트남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편으로 현재와 같은 산업구조로는 조만간 안정적 경제성장이 흔들릴 것이다. 물가가 오르고, 노동자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늘어나면 자연히 노동집약적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임금수준을 넘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노동집약적 외국공장들이 앞을 다투어 떠나고 산업 공동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 없이 베트남의 미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의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가 거세질 것임에 분명하다. 베트남은 노동자의 나라이며 사회주의 국가이다. 현재는 성장을 볼모로 설득하고 강한 공안(公安)의 힘을 동원하여 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지만 앞으로도 노동자들이 국가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용인할지는 불투명하다. 빈부의 격차가 큰 사회주의국가 그리고 노동자가 가장 못사는 노동자국가에서 어떤 정치가 일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베트남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단기적인 수치와 사건에 의해 예단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몇몇 국영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주식시장이 요동친다고 비관에 빠지고, 역으로 베트남에 쏟아지는 외자나 높은 성장률을 보면서 낙관하는 것은 단견이다. 베트남은 향후 5-10년 안에 산업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베트남의 저력을 믿으면서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베트남의 지도자들과 외국자본이 모두 이런 정치경제적 현실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채수홍(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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