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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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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카르타의 2011년 메이데이,  인도네시아 노동운동가 Fransiskus X Supiarso가 촬영


올해도 5월 1일에 인도네시아에서 메이데이(May Day)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자카르타시경은 비상경계령을 발동하고 1만 5천여 명의 경찰을 배치하여 ‘수도방위’에 나섰다. 그렇지만 국제노동절 행사는 전국각지에서 큰 충돌 없이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자카르타에서는 수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시내 중심에 집결하여 대통령궁까지 행진하였는데, 일부 노동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제2의 도시 수라바야에서도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동부 자바 주청사와 주의회 의사당까지 20킬로의 거리를 오토바이와 트럭을 타고 행진하였다고 한다. 그 밖의 주요 도시에서도 수천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국제노동절을 기념하는 행진을 전개하였다. 세계 최대의 군도국가인지라 교통사정과 비용을 고려하여 메이데이 행사가 지역별로 분산 개최되고 있다.

수카르노 대통령 집권기 인도네시아에서는 메이데이 행사에 대통령이 참가하여 기념연설을 하곤 했지만, 수하르토 장군이 집권한 1966년 이후에는 메이데이를 기념하는 행위를 공산주의자들의 국가전복적 행위로 간주하여 금지하고, 어용노총의 창립기념일을 근로자의 날로 따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수하르토가 물러난 다음 해인 1999년에 메이데이가 ‘국제노동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33년 만에 조심스럽게 부활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용노조연맹이 각 지부에 국제노동절행사 참여를 불허한다는 공문을 내려 보내거나, 회사 측에서 참가를 막는 일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진전 덕분에 메이데이 행사는 해마다 개최될 수 있었고 연중 가장 큰 규모의 노동자 행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올해 메이데이에서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그랬듯이 아웃소싱(outsourcing) 및 계약노동의 만연 문제를 시정해 줄 것과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엄격히 감독할 것을 정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하였다. 이번에 특별히 부각된 이슈는 사회보장 문제였다. 67개의 노동자, 농민, 어민과 대학생 조직이 참가하는 ‘사회보장을 위한 행동위원회’(KAJS: Komite Aksi Jaminan Sosial)는 2004년 40호법으로 제정된 ‘전국사회보장제도’(SJSN)를 조속히 가동시킬 것을 요구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사회보장청’(BPJS)에 관한 법안이 의회에서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개발도상국이라 하여 복지정책이 부차적일 수는 없다. 최근 수년간 인도네시아에서는 복지제도 개선에 관한 논쟁이 정치사회적으로 뜨겁게 전개되어 왔으며, 7년 전에 제정된 사회보장제도의 실현은 노동자들에게도 건강, 재해, 사망, 퇴직, 노후에 관한 5대 사회보장이 한 데 결부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카르타의 시위대는 대통령궁까지 행진하여 요구사항을 외쳤지만, ‘집주인’은 자리에 없었다. 지난 5년간 그랬듯이 유도요노 대통령은 장관들을 대동하고 수도의 남쪽 외곽 보고르의 공장 두 곳을 방문하여 국제노동절을 나름대로 기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영부인, 인력이주부 장관, 보건부 장관, 산업부 장관, 국가비서부 장관, 서부자바 주지사 등을 대동하고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닭 꼬치구이로 점심을 먹으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대통령은 노조-기업-정부간 3자대화의 활성화를 통하여 노동자의 복지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무하이민(Muhaimin Iskandar) 인력이주부 장관은 아웃소싱을 엄격히 제한할 것, 사업주의 노동조합 탄압여부에 관한 관찰강화를 검찰과 경찰에게 요청할 것, 노동자의 복지와 안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고, 대신에 노동자들에게 평화로운 노동절 시위를 당부하였다. 무하이민 장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날아가서 인도네시아이주노동자들의 메이데이 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공장방문 일정이 길어져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천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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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카르타의 2011년 메이데이,  인도네시아 노동운동가 Fransiskus X Supiarso가 촬영



필자도 10년 전에 동부 자바 수라바야에서 강연회, 영화상영, 노래경연, 대행진으로 구성된 3일간의 국제노동절 기념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누린 적이 있다. 대행진 거리가 짧았지만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참가자가 발생할까봐 응급차가 뒤따르고, 집회장에서는 참가자들이 저마다 그늘을 찾아드는 바람에 가운데 자리가 텅 비고, 주의회 의원들을 불러내 노동절을 공휴일로 정하는 입법을 청원하는 점이 흥미로웠었다. 당시 필자는 메이데이 강연을 부탁받고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들려준 바 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높이 평가하고 따라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한국보다 앞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복수노조 시스템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퇴진하고 오래지 않아 전국 단위는 물론이고 작업장 단위까지 복수노동조합을 인정하는 새 노동조합법 제정되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11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결사의 자유와 산업 평화가 비교적 잘 병존해 왔다. 물론 초반에는 기업가들의 과민반응이 있었고, 전투적인 노조를 차별하다가 분규도 더러 겪었고, 같은 회사에서 노조 간의 갈등도 발생했다. 그러나 복수노조제도는 단체협상의 규칙제정, 기업가의 차별완화, 노조원의 의사를 존중하는 조합운영을 통하여 잘 정착될 수 있었다. 결사의 자유가 심화된 지반 위에서 비교적 평화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는 정치의 역할도 컸다.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연맹 위원장들이 인력부장관으로 두 번이나 기용되었고, 수십 개의 노조연맹을 모두 초청하는 노사정회의가 간단없이 개최되었다. 국회는 노사 양측의 협의에 바탕을 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지방의회도 노동자의 청원이 있을 때 기업가를 불러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곤 했다. 정부와 의회는 합의창출의 장을 마련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인내심을 갖고 협의를 계속함으로써 합의에 도달하는 인도네시아 노사정 관계의 지혜를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전주에서는 ‘버스 파업’이 140일간이나 계속되다가 메이데이를 며칠 앞두고서야 간신히 타결되었다. 전주 버스 파업의 장기화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주역들이 복수노조 시스템에 대하여 준비가 심히 부족하고 쓸데없는 공포심만 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인도네시아의 선례를 참조하여, 노동, 자본, 정부 측이 모두 ‘더 많은 결사의 자유’를 두려움 없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2011.5.1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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