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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원회  l  국경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합니다

  • 칼럼
  • 2012.05.21
  • 1665

*한국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해있는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 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각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뿐만 아니라 유엔과 인권, 개발과 인권, 기업과 인권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국제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부정선거,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떤 결과 낳았나

[아시아생각]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선거 개혁 투쟁 '버르시 3.0'

황인원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대리투표, 유령당원, 당비대납, 불투명한 선거인명부... 우리에게 최근 너무도 익숙한 용어들이다. 바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충격적인 내용들이다. 사실 이러한 총체적 선거부정은 말레이시아 정치를 연구하는 필자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한국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 단계에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흔하게 목격되었던 치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말레이시아에서 선거를 둘러싼 이러한 각종 부정부패를 개혁하기 위한 정치 및 시민사회의 요구가 격렬해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내홍을 겪고 있는 한국 정계에 오히려 경각심을 줄 정도이다.

 

특히 지난 4월 28일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말레이어로 "깨끗함"을 뜻하는 "버르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선거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위원회'에서 주도한 이번 집회는 말레이시아는 물론 서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30여 곳이 넘는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었다. 버르시 3.0 이라고 명명된 이번 집회는 작년 7월 선거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던 대규모 군중집회인 버르시 2.0의 연장선에서 개최되었다. 버르시 3.0 집회의 배경은 버르시 2.0 집회 이후 정부여당이 약속한 일련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조치들이 기대에 미흡하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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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버르시 2.0 집회가 열렸던 시기는 말레이시아 정가는 조기총선의 소문으로 무성하던 때였다. 당시 여론의 향배에 민감했던 정부여당은 버르시 2.0 집회에서 분출되었던 8개의 요구안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국회에 "선거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Parliamentary Select Committee)를 결성하였다. 선거개혁 특별위원회에는 여당의원 5인, 야당의원 3인, 무소속의원 1인 등 총 9인이 참여하였다. 2011년 10월 특별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나즈리 압둘 아지즈(Nazri Abdul Aziz) 법무장관은 특별위원회를 통해 버르시 2.0에서 표출된 8개의 요구사항 이상을 충족시키는 선거제도 개혁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였었다.

 

하지만 2012년 1월에 발표된 선거개혁 특별위원회의 1차 활동보고서에 버르시 2.0의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60여개 이상의 시민단체가 연합한 버르시 2.0 집행위원회가 강력히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4월로 예정된 선거개혁 특별위원회의 최종보고서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군중집회를 다시 개최할 것이라고 경고했었고, 결국 4월 28일 버르시 3.0 집회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버르시 3.0 집회에서는 2013년 초반까지는 실시되어야 하는 13대 총선 이전에 버르시 2.0에서 요구되었던 일련의 선거제도 개혁 조치를 완결하고, 총선 과정을 모니터할 국제선거감시단의 활동을 허가하라는 요구안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그리고 집회장소로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메르데카광장(독립광장)을 선택하였다. 더욱이 버르시 3.0 집회에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 인민공정당(PKR), 민주행동당(DAP)으로 구성된 야당연합(PR)이 조직적으로 당원을 동원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정국은 더욱 긴장되었다.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인도인들의 차별적 대우에 반대하는 힌드라프(Hindraf)를 비롯해 각종 환경단체와 대학생 단체들이 버르시 3.0 집회에 참여하면서 집회의 규모나 선거개혁 조치의 요구는 오히려 지난 버르시 2.0을 능가하였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버르시 3.0 집회는 시기상으로도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는 2008년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열렸던 최초의 버르시 집회의 여파가 고스란히 사상 유례가 없었던 정부여당의 부진한 선거결과로 연결되었던 악몽 때문이었다. 버르시 3.0 집회가 계획되던 시기는 정부여당이 13대 총선을 2012년 6월 중순 경에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던 때였다. 2008년 총선의 악몽이 13대 총선을 앞두고 재현될 조짐이 농후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2008년 총선 이후 정부여당은 나름대로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영역에서 일련의 개혁정책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버르시 3.0 집회는 집권여당으로서 무척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여기에 야당연합이 집회에 조직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정부여당의 부담감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야당의 입장에서도 임박한 총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혁은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버르시 3.0 집회의 강행은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고, 경찰 추산으로 388명이 연행되었다. 그러나 집회가 끝나고 몇 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의 물리력 사용과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 정가의 공방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여당과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찍힌 집회 참가자들의 사진을 대중매체를 통해 공개하면서까지 정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야당은 정부의 폭력적 대응방식이 과거에 비해 더욱 악화되었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양한 종족, 종교는 물론 정치이념과 문화적으로도 말레이시아는 매우 이질적인 갈등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런 분열적인 갈등구조 때문에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 폭넓은 정치참여와 자유로운 경쟁을 축으로 하는 정치발전이 저해되어 왔다. 이질적이고 분열적인 갈등구조에 기생하는 권위주의적이고 패권적인 기존 정치엘리트들의 득세로 인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정치공간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총선 이후 일련의 정치적 변화는 머지않은 시기에 말레이시아도 의미 있는 정치변동을 경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러한 긍정적 전망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주화의 진전을 염원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세력의 정치참여의 공간이 점차 확대되고 활성화되어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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