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5-05-12   1126

[아시아생각] 중국 편승? 중국 견제?… 둘 다 틀렸다!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5 아시아생각] ① 아웅산 수치, 미얀마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이유는?

[2015 아시아생각] ② IS의 광기는 美 지배전략의 산물 

중국 편승? 중국 견제?… 둘 다 틀렸다! 

아세안공동체 건설의 시금석이 된 남중국해분쟁

김형중 연세대학교 교수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지역협력체인 아세안(ASEAN)은 지난 4월 26일과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정상회의를 가졌다. 이번 정상회의를 지배했던 의제는 스프래틀리군도 일대에서 벌이는 중국의 간척공사로 촉발된 남중국해 문제였다. 

 

아세안 정상들은 의장 성명서를 통해 “남중국해에서 진행되는 간척공사가 역내 국가들 간 신뢰와 확신을 저하시켰고 나아가 평화, 안보,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일부 정상들의 깊은 우려표명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고 구체적 해결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성명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우려 표명이다. 주요 당사국 중 하나인 필리핀의 아키노 대통령은 이를 ‘중대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반면 중국정부는 아세안의 입장에 대해 불만과 우려를 나타내면서 관련 공사가 합법적이며 외부 간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과학조사, 재난 구조 활동 등의 비군사적 활동을 위한 기반시설 공사로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하며 다른 국가들도 조건이 일치되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과 필리핀도 분쟁지역내의 일부 도서에 항공기 이착륙 시설공사를 이미 갖추고 최근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번 정상회의가 아세안이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견제입장을 취했으나 그 배경과 과정에는 다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언론에 노출된 의장 성명서 초안에는 남중국해와 관련된 우려 표명이 없었다. 통상적으로 정상회의가 사전 조율된 성명 초안을 승인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키노 대통령은 중국 측 행위의 부당함과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을 의장 성명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필리핀 외무장관 또한 정상회담 첫날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 강화를 위해 아세안의 단결을 주장했다. 이에 의장국인 말레이시아는 특정 국가를 적대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결국 ‘일부 정상’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표현으로 타협안이 도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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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7일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아세안정상회의 총회에서 함께 했다.ⓒAP=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번 회의에서 높은 수준의 우려를 표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번 합의는 2015년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 마련을 위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간 남중국해를 둘러싼 경쟁이 또다시 재현될 경우 아세안공동체 건설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남중국해 문제는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4개 당사국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아세안차원의 정치안보공동체 실현에 있어서도 중대한 도전이다. 역내 갈등의 평화적 해결, 주권 존중, 역내 평화와 안정을 달성하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발전과 협력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회원국간 협의를 통한 합의를 중시하는 아세안에 있어 남중국해분쟁을 둘러싼 이견은 지역공동체의 단결력과 정체성을 저해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캄보디아가 의장국이었던 2012년 외무장관회의에서는 남중국해 사안에 대한 갈등과 이견이 격화되어 아세안 역사상 처음으로 성명서 도출에 실패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의 직후에도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아세안차원이 아닌 분쟁 당사국들이 직접 중국과 사태해결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은 한 발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정상회의 역시 남중국해 갈등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개최되었고 중국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말레이시아가 의장국인 관계로 합의도출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2년 전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이 남중국해 갈등상황과 관련하여 “당신의 적이 곧 나의 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는 등 남중국해 갈등의 당사국이지만 필리핀, 베트남과는 중국과의 갈등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오히려 우호적이다. 협의와 설득작업을 통한 의장 성명서 채택 과정은 의장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역대 아세안정상회의에서 말레이시아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해왔다. 1997년 실질적인 아세안 회원국 확대를 통해 현재 아세안 회원국 체제를 완성했으며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개최되었던 2005년도 의장국이 말레이시아였다. 이번 회의에서 의장국의 역할은 아세안공동체 건설 원년을 맞는 상징적인 성과 도출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입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아세안공동체 건설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타협점을 모색했을 것이다. 정상회의 직후 아키노 대통령은 다른 국가가 의장국을 맡을 경우 보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의장국 말레이시아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둘째, 이번 정상회의 결과는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 심화에 따른 아세안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다. 분쟁당사국과의 양자주의를 선호하는 중국 그리고 아세안회원국 간 상이한 이해관계 등의 이유로 남중국해 갈등 해결책은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아세안남중국해행동선언, 2002년에는 남중국해당사국행동선언(DOC)을 채택하는 등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련국들 간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이 악화된 시점은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를 자국의 이해관계로 선언한 2010년 이후이다. 미국의 개입선언은 중국에 있어 남중국해 문제를 ‘공동이용과 개발을 위한 협력 모색의 대상’에서 ‘양보할 수 없는 영토주권의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2013년 오바마는 아시안순방을 통해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를 도모하는 한편 필리핀의 해군기지 미군 주둔 등 신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합동군사훈련을 도모했다. 중국과 조어도(다오위다오/센카쿠열도)분쟁 당사국인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집단적자위권을 인정받고 해양협력을 구실로 아세안과의 대(對)중국 견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도 보다 공세적인 발언과 행동들로 대응해왔다.

 

군사력과 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 일대의 도서 점유상황은 어느 특정국가의 일방적 우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국가에 편중되지 않았으나 점차 중국과 미국간 갈등으로 발전해 나갔다. 역사적으로 강대국간 패권경쟁으로부터 중립적이고자 했던 아세안 기본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최근 동아시아 패권 경쟁 부활은 아세안의 중립성과 중심성에 있어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세안에 있어 부상하는 중국의 힘에 편승하는 거나 중국을 견제하는 것 어느 선택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은 단결력을 유지하고 각 회원국의 대중국 전략과 정책도 희생시키지 않을 방안으로 ‘중립적’이고 ‘중심적’ 지위 확보를 대안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의 표명된 입장은 공동체건설이라는 지역체의 대의와 자기 주도적 중립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합의 그리고 이를 개별국가들의 이해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전략적 접근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질서 재편 속에 효과적인 외교대응은 정권의 안보를 위한 일부 관계자들의 고심한 결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비전, 일관된 외교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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