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3-12-10   4135

[아시아생각] 아세안, 경제공동체 넘은 지역 거버넌스 주체가 거듭나야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 넘은 지역 거버넌스 주체가 거듭나야

아세안 인권선언 이후 1년: 아세안의 한계와 가능성

김형종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조교수

 

지난 해 11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아세안 회원국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인권수준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 아세안의 인권상황을 말해주는 다수의 사례는 아세안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아세안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인권선언의 채택은 또한 인권 침해와 함께 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제21차 아세안정상회의 개최 과정에서 8명의 시민이 구속된바 있다. 경호와 미관상의 이유를 들어 정상들의 예상 동선에 위치한 지역의 거주민의 강제 이주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화적으로 저항한 시민들을 구속한 것이다. 당시 구속된 이들은 건물지붕에 올라 “SOS” 문구를 적어 항의의사를 전했다.

 

인권선언 채택 이후에도 역내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여전히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아세안 역내 이민자는 그 규모와 형태에서 다양하다. 건설업, 제조업, 가정부 등의 취업을 목적으로 말레이시아에 약 200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약 30만 명에 달하는 가정부의 인권침해 사례는 현지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고용주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스무 살 인도네시아 가정부 윌프리다가 사형선고 위기에 직면하자 인도네시아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구명 서명운동이 벌어진 바 있다. 이 밖에도 말레이시아 국내법에 의해 사형선고에 처한 인도네시아인이 3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2년 11월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인권선언 조인식

▲ 2012년 11월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인권선언 조인식. ⓒEPA

 

인권의 ‘상대주의’ 수용한 인권선언의 한계

 

이주노동자 문제는 양국 간 중요한 외교 사안으로 부상했으며 2009년 한시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말레이시아로의 가정부 송출을 금지했다가 2011년 양국 간 노동자 보호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금지조치를 철회했다. 이주과정에서 불법적 네트워크에 연관되어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정치, 종교적 이유로 미얀마를 떠난 로히냐, 챤 종족 등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대규모로 유입되는 과정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가스 파이프 프로젝트 관련 반대 활동을 벌이던 활동가들에 대한 유죄판결 이 내려져 인권 침해사례로 비난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재판 없는 구속이 가능했던 악명 높은 보안법이 철폐되었으나 최근 범죄방지법의 개정을 통해 재판 없이 최초 2년 동안 구금하고 이를 무기한 연장 가능하도록 했다.

 

무엇보다 지난해 12월 라오스에서 활동가 솜바트 씨 실종사건은 사건 당시와 전후 정황을 고려할 때 단순 사고로 인한 실종이기보다 정치적 보복에 의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어 아세안 내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이 라오스 당국에 조속하고 투명한 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일련의 인권침해 사례들 특히 라오스 활동가의 실종 사태 등에 대한 아세안의 침묵은 아세안 인권선언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결국 아세안이 지역 내 인권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아세안 인권선언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이 정치와 인권분야에서의 협력을 제한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내정불간섭원칙에 기반한 이른바 ‘아세안 방식’이 지목되어 왔다.

 

인권침해 또는 인권유린의 경우에도 국내문제로 간주하고 무조건적인 내정불간섭원칙을 고수함에 따라 대내외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세안은 적어도 장기적 관점에서 역내 인권문제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가질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1988년 여성인권 선언 이후 1993년 비엔나 국제인권회의를 계기로 역내 인권 메카니즘의 창설 필요성에 인식을 함께 했다.

 

아세안인권기구의 창설에 본격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2007년 아세안 헌장이다. 헌장에는 인권관련 주요 원칙뿐만 아니라 아세안 역내 인권 기구의 창설을 명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아세안정부간인권위원회(AICHR)가 설립되었다. 설립당시에도 아세안회원국에 대한 인권보호와 촉진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 제한되어 ‘이 없는 기구’로 비난을 받았다.

 

아세안 헌장 조항을 되짚어 본다면 애초부터 감시 기능을 갖는 독립적인 기구가 아닌 아세안 산하의 정부간기구로 결성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후 아세안인권선언 작성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2012년 10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표되었다. 내년에는 AICHR가 운영세칙(Terms of Reference)을 재검토 할 예정이다. 아세안 인권선언은 국제인권선언의 원칙을 수용하고자 했다. 어린이 노동 착취 금지에 대한 조항이 삽입되었고 서문에서는 아세안헌장에서 언급되었던 기본 원칙들 중 “불간섭 원칙”이 제외되었다. 이는 불간섭원칙이 아세안 회원국내 인권 유린에 대해 침묵하게 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던 점과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세안 인권선언이 채택 당시 이의 한계에 대해 역내 인권단체와 서구의 회의적 시각과 비판이 쏟아졌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된 행방불명으로부터의 보호 등이 포함되지 않았고 개념과 절차상의 문제점도 드러냈다. 아세안과 아세안 회원국이 갖는 제약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아세안 회원국은 다양한 정치체제,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 진척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인식과 차이가 있다. 민주적 선거 절차를 확보한 국가들도 의사민주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세안 모든 회원국이 비준한 국제인권 협약은 여성차별금지협약과 아동권리협약 등 두 개에 불과하다. 인권선언 작성 과정 또한 한계가 분명했다. 인권선언 작성을 위한 위원회 구성에 있어 운영세칙에서 정한대로 각 회원국 정부가 임명하고 교체 권한을 갖는다.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초안 작성과정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시민단체와 국제인권 기구에 대해서도 정보 공개를 꺼렸다. 단 두 차례의 형식적인 컨설팅 과정도 이미 초안 마무리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초안 협상과정에서는 이른바 회원국 정부 입장 차가 있을 경우 가장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 헌법은 공중도덕을 이유로 한 인권제약을 허용하는 바 이를 아세안 인권선언에 반영할 것을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아세안 국가들의 정치발전 단계와 아세안 인권헌장 작성 과정에 있어서의 제약은 결과물에도 문제를 낳았다. 우선 역내 국가들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인권의 ‘상대주의’를 반영한 인권선언임을 지적할 수 있다. 난민의 권리 등은 국내법이 허용함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나 결사의 자유는 누락되었다. 가족결성의 자유 또한 ‘각 국가별 법이 정한 바에 의한’ 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또한 종교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개종의 자유’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인권선언이 나왔을 때 시민단체는 이의 한계를 지목하며 결국은 정부의 인권침해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여 이의 거부를 밝힌 바 있다.

 

아세안인권선언, 인권 논의와 감시의 기반으로서 의미

 

이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세안 인권선언을 폐기처분하기에는 이르다. 그보다는 아세안 인권선언은 향우 아세안 역내 인권 보호와 신장에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 아세안 방식이라고 하는 상대주의에 기반한 인권의 개념과 원칙을 주장할 수 있었던 주요 근거는 인권의 개념이 타자 즉 서구의 기준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세안 인권선언은 아세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원칙상 국제인권선언을 수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큰 틀에서의 역내 인권 논의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권선언의 채택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상대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되고 인권 관련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국가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국 차원의 인권의식 향상과 제도적 개선과 병행하여 제약적이나마 지역적 차원에서의 인권논의는 회원국 간 인권 상황의 격차를 좁히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다수의 국제인권협약들이 이전에 선언형태에서 발전한 것을 고려할 때 아세안 인권선언 또한 최종 결과물이기보다 발전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아세안 방식에 대한 도전도 지속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중단기적으로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문으로 초국가현상에 대한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불법이민과 인신매매 등은 초국경적 이슈로서 내정간섭이라는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아세안 공동체 건설이 아세안 인권에 가져올 영향에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공동체 건설로 치중되는 아세안의 현실은 경제공동체가 아닌 지배계급과 결탁한 자본 특히 다국적 자본 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제통합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통합에 수반되는 재분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통합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인권상황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아세안이 정치안보, 사회문화 공동체를 병행 추진하도록 하여 공동체 의식의 확대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식을 확대하도록 감시를 강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공동체건설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을 담아내는 지역 거버넌스의 주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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