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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원회    국경을 넘어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합니다

  • 칼럼
  • 2010.05.31
  • 1091
아피싯 민주당 정부가 상원의 중재와 국제사회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요구를 모두 일축하고 방콕시내 중앙부를 장악하였던 ‘레드 셔츠’를 유혈진압 하였다. 정부는 레드 셔츠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선전전을 계속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을 포함해 표적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체포와 수색을 하고 있다. 이렇듯 공안정국을 만들면서 아피싯 정부는 평화의 도래를 공언하고 있지만 누구도 타이의 앞날을 낙관하지 않는다.

국가가 대화와 타협이 아닌 폭력을 수단으로 인민의 저항을 압살했을 때 당장 그것이 질서와 안정을 가져올 것처럼 비추어질지 몰라도 ‘패배한’ 인민은 새로운 저항을 준비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이번 이른바 ‘레드 셔츠’의 저항을 두고 많은 얘기가 있을 수 있다. 전통에 대한 근대의 저항, 엘리트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민주주의의 저항, 도시-중산층 동맹에 대한 농촌-빈민층 동맹의 저항 등등.

주지하다시피 레드 셔츠의 주장은 1997년 헌정체제로의 회귀에서부터 조기 총선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스트럼이 폭 넓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민주주의를 선거민주주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전 수상 탁신을 몰아냈던 이른바 ‘옐로우 셔츠’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현 집권세력인 민주당 역시 쿠테타를 용인하고 선거 결과에 불복한 옐로우 셔츠를 후원하고 레드 셔츠의 조기총선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번 유혈진압으로 2006년 9월 쿠테타 이후 ‘반쿠테타’와 ‘반탁신’으로 분열된 타이 시민사회진영의 골은 깊어질대로 깊어졌다. 반탁신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군사 쿠테타를 지지하고 2007년 12월 선거 결과에 따른 친탁신세력의 재집권을 왕실과 군대의 힘에 의존하면서 피플파워당 내각을 ‘직접행동’으로 무너뜨린, 1973년 민주항쟁과 1976년과 1991년 쿠테타에 맞섰던 시민사회운동 지도자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이들 반탁신 시민사회운동 지도자들의 ‘급진민주주의’는 세계화와 부도덕한 ‘자본독재’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존왕주의자들과도 제휴할 수 있다는 다분히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탁신계 피플파워당을 궁지로 몰기 위해 타이-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는 힌두사원 영유권 분쟁을 부추기는데도 앞장섰다. 이들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국수주의를 선동하는 양상으로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타이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단계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재하에서의 정치적 표현이 거리의 투쟁을 불가피하게 했다면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1인 1표의 위력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존왕주의자들과 제휴한 시민사회진영의 ‘급진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표현된 농촌 유권자들의 표를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한때 의회의 70%는 임명제, 나머지 30%는 선출제로 하자는 희한한 발상까지 하였다.

또한 ‘신정치’를 내세우는 이들의 ‘급진민주주의’는 이율배반적이다. 이들은 탁신 집권 시기에 타이 남부 무슬림지역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문제를 비난했지만 2006년 쿠테타 이후 들어선 군정 치하에서, 그리고 아피싯 민주당 치하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타이 남부지역폭력사태와 관련하여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특히 일부 시민사회진영 지도자들은 2006년 9월 쿠테타 직후 민주주의의 파수꾼 역할을 하겠다고 군정에 협력한 변을 늘어놓았지만 타이 남부 무슬림들을 위해 인권변호를 해주던 솜차이 변호사 실종문제조차 제대로 의제화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1997년 헌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군사정변 주모자들의 들러리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현재 왕실모독죄로 해외에 피신해 있는 쭐라롱껀대 짜이 응파껀 교수는 탁신정부의 독선, 인권침해를 비판하면서도 탁신의 타이애국당이 역대 어느 정당도 시도하지 않았던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쿠테타를 지지한 시민사회운동진영을 신랄하게 비난한 그는 탁신의 포퓰리즘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진보정당의 조직화를 역설해왔다. 예컨대 탁신을 총과 탱크가 아닌 투표로 심판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다수정으로서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소수자에게 폭력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패한 소수자가 다음 선거에서 다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최적의 정치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타이 위기는 타이 사회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성장통인지도 모른다. 타이 사회는 탁신의 집권을 계기로 카리스마 있는 정치 지도자의 통치, 즉 막스 베버(Max Weber)의 ‘지도자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경험해보았다. 그러나 이번 레드 셔츠의 저항 과정에서 ‘지도자’ 탁신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이제 레드 셔츠는 탁신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군부와 왕실과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명실상부한 대중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왕실모독죄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짜이 응파껀 교수의 꿈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 이 글은 2010.5.25 서남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박은홍 교수는 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연대 분야 실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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