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9-05-13   1592

원조, 한국식으로 주면 된다? ‘관계’부터 고민하라


원조, 한국식으로 주면 된다? ‘관계’부터 고민하라
권력 관계를 넘어 발전 담론의 장으로


얼마 전 학과에서 국제개발 분야 전문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리차드 마닝(Richard Manning) 전 경제협력기구 개발원조위원회 (OECD/DAC)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마닝 전 위원장은 유엔 새천년개발목표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의 기초를 형성한 논의의 중심에 있었으며, 한국의 OECD/DAC 가입 등 소위 ‘신흥 원조국 (emerging donors)’의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1965년 영국 국제개발부(당시 국제개발청) 직원으로 시작해 2003년 DAC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직접 담당했던 개발 사업과 정책을 중심으로 지난 활동 경험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여러 사례들을 관통하는 핵심 교훈은 현지의 자원과 지식을 존중하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지 사정과 역사를 충분히 인지하고 반영하지 못한 원조 사업과 정책은 높은 비용과 적은 효과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현지’ 중심으로의 사고 전환의 중요성을 실감한 것은 지난 2007년 여름, 필리핀에서 석사 논문 현장 연구를 할 때였다. 한국 정부가 차관을 지원한 마닐라 철도 사업으로 인해 발생한 강제 이주 문제를 연구하면서 필리핀 사회 구성원들을 다양하게 만나 개발원조 사업과 정책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던 것이다.


철로변 주민들은 한국 정부가 주민들과 직접 연계하여 이주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필리핀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개발원조 사업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책임있게 대응하기를 촉구했다. 필리핀 정부 관료들은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여러 개발 사업에 필수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재원 부족과 외채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필리핀의 입장에서는 원조 관계에서 실질적인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원조 관계에 대한 여러 목소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개발원조 전문가인 마닐라 대학 교수의 이야기였다. 필리핀 개발원조의 향방을 묻는 질문에 그는 “우리는 외부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것이 맞는 발전 방향이다, 아니다라고 제시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필리핀 발전 방향은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가 무능하고 문제가 있다면 필리핀 국민들이 정부를 바로 잡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한국 정부의 개발원조 정책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늘 ‘우리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기에, 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국가 중 하나로 한국보다 경제 발전 정도가 훨씬 앞서 있었다. 이후 독재 등 정치적 혼란과 경기 침체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지만, 경제 규모 면에서 높아진 우리의 위상이 그들의 발전 문제에 대해서까지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우리의 발전 경험에서 배우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우리도 그들의 발전 경험과 문제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훈들은 국제개발 분야의 ‘지식과 권력 관계’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와 맥을 같이 한다. 비판적인 개발 논의, 소위 후기 개발 (post-development) 논의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발전 방식이 서구식 근대화를 바람직한 지향점으로 상정한 하나의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이에 따르면, 발전이란, ‘무엇을 발전으로 볼 것인가’라는 담론에 대한 지배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에 좌우된다. 즉, 발전이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정의된, 그리고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담론을 둘러싼 권력 관계는 발전 문제의 핵심 사안이다.


권력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개발원조 분야는 다자·양자 개발원조기구 (이후 국제원조기구)의 이해 및 조직적 생존 문제를 축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산업’에 비유된다. 이 속에서 개발 사업 및 정책 집행자들은 현장에서 사람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과 그들이 그 필요를 충족하는 데 가장 적합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다고 (혹은 더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기술·관료주의는 국제원조기구와 개발도상국 정부 간 관계에도 만연해 있었다. 국제원조기구들은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를 원조의 조건(conditionality)으로 제시하여 개발도상국 정부가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거시 발전 틀을 정하는 데 강력하게 개입해왔다. 1980년대 세계은행 (World Bank) 및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이 추진한 구조조정 (structural adjustment) 프로그램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주의가 한 국가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기구들의 이익을 직·간접적으로 충족시키는 소위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점차 제기되기 시작했다. 또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큰 발전 효과 없이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에 따라 원조 효과성(aid effectiveness) 제고 논의가 부각되면서, 그 일환으로 새로운 원조 관계도 함께 모색되기 시작했다. 이에, 개발도상국 정부가 바람직한 국가 발전 계획을 제시하면 국제원조기구가 이를 지원해 주는 방식이 새롭게 제안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최근 양자간 개발원조의 기조 담론을 형성한 파리선언(Paris Declaration)에서 개발도상국의 오너십(ownership), 양자간 파트너십 (partnership) 등의 핵심 안건으로 반영된 것이다.


‘지식과 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복잡한 원조 관계에 대한 성찰은 최근 OECD/DAC 가입을 앞두고 정부, 학계 및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논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OECD/DAC 중심으로 형성된 선진 체제와 담론에 맞춰 한국 ODA 정책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OECD/DAC 가입이 소위 ‘선진 원조국 클럽’에 가입하는 상징으로서 더욱 조명된다면, 이는 자칫 파리선언의 핵심 안건인 ‘수요자 중심’으로의 원조관계 변화를 놓치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논의가 우리의 원조 철학, 우리의 원조 제도와 정책뿐 아니라 상호 간의 ‘원조 관계 만들기’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궁극적으로 원조 관계가 지향해야 할 바는 ‘발전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여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ODA가 이처럼 동등하고 이상적인 관계 형성을 모색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면, 특히 시민사회의 논의는 다소 과감하게 ODA 논의의 틀을 벗어나 발전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데 집중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럼으로써, 그들과 우리가 함께 생각하는 발전의 방향은 무엇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폭넓은 성찰과 깊이 있는 모색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최나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개발학 박사 과정)


 





2009년 광주국제평화포럼
한국 ODA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시민사회의 도전:
모니터링, 시민교육 그리고 입법 활동

행사 일정
○ 일시: 2009년 5월 16일(토) ~ 17일(일)
○ 장소: 518기념문화관 민주홀
○ 주최: 국제연대위원회

세부 프로그램

2009년 5월 16일(토)


10:30∼12:00 세션 1 국제사회의 ODA동향과 시민사회의 참여
발제 ① 국제 ODA 메카니즘과 시민사회의 역할: Antonio Tujan Jr. (Reality of Aid 위원장)
발제 ② 아시아 시민사회 ODA 감시활동 -인도네시아 CGI 중심으로: Donatus Klaudius Marut (International NGO Forum on Indonesian Development 사무처장)

13:30∼17:00 세션 II 국가 별 시민사회의 모니터링 주요 사례
발제 ① 일본-인도네시아 ODA 감시활동 사례: Koshida Kiyokazu (Network for Indonesian Democracy, Japan 멤버)
발제 ② 메콩-WATCH 감시 활동 사례: Premrudee Daoroung (Towards Ecological recovery and Regional Alliance 공동대표)
발제 ③ 한국의 ODA 정책 감시 활동 사례: 한재광 (ODA Watch 실행위원)

2009년 5월 17일(일)

10:00∼12:00 세션 III ODA 시민교육 현황과 과제
사회: 이태주 (ODA Watch 대표)

발제 ① 한국의 ODA 시민교육 현황과 과제: 이상백 (한국국제협력단 민간협력팀)
발제 ② 영국의 세계시민교육 정책과 프로그램: DFID 와 OXFAM를 중심으로: 박선영 (동서대학교 교수)
발제 ③ 외국 ODA 시민교육 사례를 통해 본 한국의 시민교육의 방향: 송진호 (한국YMCA전국연맹 기획실장)

13:00∼17:00 세션 IV 한국 대외원조기본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과제
시민사회단체연대회, 서울환경운동연합, 에너지정치센터, 해외원조단체협의회,
ODA Watch, 한국YMCA전국연맹, 참여연대 외 ODA 관련 분야 연구자, 활동가과 함께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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