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7-04-26   524

<아시아 생각> 중국, 그 배반의 이름으로

80년대, 중국은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가슴속을 붉게 물들이는 이데아였다. 흐릿하게 인쇄된 마오의 글과 스노의 두터운 책에 심취하면서, 혁명을 이뤄 낸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것에도 걸러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열정을 담고 있었다. 90년대 초, 처음 중국 땅을 밟게 되었을 때 난 마치 오랜 꿈을 이뤄낸 사람처럼 가슴 떨리고 벅찼다.

그러나 베이징 어느 곳에서도, 날마다 마주치는 중국인 누구에게서도 나의 여진처럼 남아있는 경외를 확인하거나 전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중국은 너무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느라 바빴으며, 나 혼자만이 마치 시간이 정지된 채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느낌이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었다. 그들은 어느 학자의 비아냥처럼 자본주의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가속도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30여년을 패배와 질곡에서 미로를 찾아 헤매던 중국이 그 유혹을 받아들인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인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눈부시다는 성장과 괄목할 변화는 등에 진 그림자도 더 깊게 만들었다.

중국의 도시 곳곳은 마천루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철거의 흔적과 파헤쳐져 벌어진 땅덩어리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강제 철거를 당해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무력한 지친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리어카에 걸터앉아 옷은 입은 둥 마는 둥 누덕누덕한 그릇에 짠지를 담아 찐빵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거리 풍경 중 하나다.

작년에는 한 농민공 부부가 1,859위안(한화 약 24만원)의 약값이 없어 민(閩)강에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주에도 동일한 사건이 장(長)강에서 일어났다. 몇 천만 원이 아니라 19일 동안 입원한 비용 150여만 원이 없어서 부부가 함께 자식도 남겨둔 채 생을 마감했다. 이들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강대국이 되어간다는 중국에 특히 농촌에 제대로 된 의료보장 제도가 없어서다.

서민들을 위해 가장 필요한 사회보장제도나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계약법은 아직 실효를 보지 못한 채, 중국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기업소득세법과 사유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권법이 먼저 올 봄 전국인대를 통과했다. 중국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나 한국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 혹은 외교적인 부분에만 쏠려있다. 사람들은 중국하면… 와! 하는 탄성을 지르거나 그 거대한 부상에 두려움이나 의혹의 눈길만을 보낸다. 그 찬사와 놀라운 반응 속에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지는 민초들의 생생한 삶은 없다. 30%가 성공의 깃발을 휘날릴 때 70%는 그 휘날리는 깃발의 흔들림에 어지러워한다. 중국에서 70%는 단지 100의 70이 아니라 13억의 70%인 9억여 명이다. 중국이 평균의 사회주의가 아닌 경쟁의 자본주의로 가는 것의 위험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와 발전의 역사에도 억울하게 죽은 혼령들의 넋이 무수히 많으며 이들은 아직도 조선 산하의 구천을 떠돌고 있다. 중국도 내전과 혁명으로 덧없이 죽어가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으며, 새로운 중국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의미 없는 명분과 이유로 자기에게 주어진 생을 다 마치지 못한 영혼들이 우리보다 두 배.. 세 배.. 몇 배로 흩어져 있을 것이다.

중국이 거대기업과 권력을 가진 엘리트와 부유층을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사회가 된다면, 시장의 힘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미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간다면, 약자와 실패자들을 안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체제로 굴러간다면, 공산주의 혁명과 문화 대혁명의 이름으로 희생된 수많은 중국 인민들에겐 중국이 영광의 조국이 아니라 배반의 이름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참여정부가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배반의 이름으로 남으려 하듯이….






김도희(한신대 중국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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