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국경너머로] 대외원조 정책의 개선을 위한 첫 단추는?

지구촌ODA정책감시 뉴스레터 7호

지난 호까지의 글들에서 독자들은 한국 정부의 대외원조 사업을 대강 일별한 셈이다.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OECD 회원국 운운하는 것에 비해 대외원조의 규모가 형편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일테지만, 그 적은 규모의 원조액이나마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마음을 놓기 어려운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ODA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우리 국민들은 개발도상국 대외원조에 높은 비율로 찬성하지만, 대외원조의 효과나 기여도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이 대외원조의 효과나 기여도에 낮은 점수를 주는 것은 단순한 감이 아니다. 상당한 근거를 가진 적절한 인색함이다.

수원국의 수요가 체계적으로 조사되지 않은 채, 수원국의 주요인사가 우리 정부를 방문했을 때 사업을 요청하면서 1차 사업이 시작된 사례도 있다. 이런 경우 수원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2, 3차 사업으로 연장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처럼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사업 지연, 예산 초과 등은 물론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사례만 우리를 불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처구니없이 연수를 한다면서 교육보다 관광에 시간을 더 많이 배정한 경우도 있다. 그나마 30%에 불과한 교육시간에는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교육생들에게 영어로 전문교육을 실시했다고 하니, 어느 국민이 사업의 효과성에 대해 선선히 높은 점수를 주겠는가?

하지만, 필자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업에 대한 사후평가작업이 매우 소홀하다는 것이다. 제3자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물론 자체 사후평가보고서조차 작성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후 평가체계의 허술함은 이후 사업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평가 및 사후 관리 시스템의 정비를 주문하고 있지만, 말만 무성할 뿐이다. 지난 3월 열린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첫 회의에서 보고된 ‘2006년도 국제개발협력 추진계획’ 자료에도 상반기 중으로 「평가소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버젓이 밝히고 있지만, 9월이 다가도록 감감하다.

이 글에서 평가의 중요성을 밝히는 것은 새삼스럽다. 하지만, DAC(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의 ‘개발협력사업 평가 원칙’에서 ‘사업의 적절성 및 목표 달성 여부, 효율성, 효과성, 영향 및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진행 중 이거나 완료된 프로젝트, 프로그램 혹은 정책 및 그것의 계획, 실행 및 결과에 대한 가능한 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의미’ 하는 평가의 정의와 ‘평가를 통해 얻은 교훈을 활용하여 차후의 원조사업을 개선하는 것과 대중에 대한 정보공개를 통해 원조사업의 책임성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 이라는 평가의 목적을 상기할 필요는 있겠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는 평가를 고작 국제개발협력 실적 정도의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개발도상국 어느 나라에 얼마의 금액이 지원되었는지 뿐 아니라 그런 지원이 수원국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지구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정당한 요구이다. 그래서 세계개발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는 부유한 국가들의 대외정책이 빈곤국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지, 폐해를 주는지 조사를 하여 발표하기까지 한다. DAC가입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개발공헌도지수(CDI)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ODA규모가 큰 일본의 경우조차 선진국 20여 개국 중에서 수년 째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을 보면 대외원조 사업을 그저 양적으로만 평가하는 한국 정부의 순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대충 짐작이 된다.

성실한 사업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적정한 평가지표와 객관적인 평가위원회의 구성이 우선적이다. 필자의 일천한 경험으로도 평가를 객관적으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전문성 부족에서 기인하는 주관적이고 일면적인 평가는 쓸데없다.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또한 독립적이지 않은 평가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외원조의 역사가 짧은 관계로 ODA 관련 전문 인력집단이 매우 적은 편이다.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는 정부의 하소연을 실감할 수 있다.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인력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족한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을 양성하고 개발하는 노력과 더불어 시급히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만들어 대외원조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사업자들의 부실한 보고 수준을 고려한다면. 자체 평가 외에 제3자의 독립적인 평가가 절실하다. 수원국 NGO와의 협력에 기반을 둔 평가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평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외원조의 가치에 바탕을 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엄격한 평가시스템을 갖추는 일만큼 중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이미지 개선이나 기업들의 해외진출 같은 국익우선 관점보다 빈곤이나 질병 퇴치 등 인도주의적 목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뉴스레터 5호 참조) 이에 비추어보았을 때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스스로의 목적을 ‘우리나라와 개발도상국가와의 우호협력관계 및 상호교류를 증진하고 이들 국가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국제개발협력을 증진하는 것’으로 두고 있는 것은 대외 원조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증대되는 국제적인 추세에 맞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구촌 시민사회의 좋은 이웃이 되려는 우리 국민들의 뜻에 못 미친다.

이러다보니 한국의 ODA는 UN이 지정한 극빈국가보다는 중국 등 한국 기업 진출이 많은 동아시아 국가의 비중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뉴스레터 4호 참조) 이런 무원칙한 지원 실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ODA의 원칙을 되살리는 것이 유일한 방도이다. 물론 현재 변변한 ODA헌장조차 없어 대외 원조의 목표와 원칙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지 분분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새천년개발목표(MDGs)수준으로의 합의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ODA의 근본 목적을 상기시키는 평가규정을 가질 때 비로소 한국 국민들은 수원국 주민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필리핀 사우스 레일 철도사업의 예처럼 사업 개시 수십개월이 지나도록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해당 주민들과 충돌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당황스러워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외원조 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해서 해당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평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일본 외무성의 대외 원조 평가 항목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의 부족으로 인한 장애요인은 없나?’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 항목까지 갖추지 못하더라도 사업수행에만 매달려 매 사업단계마다 최소한 이루어져야 할 사업 평가를 무시하고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구태는 시급히 청산해야겠다. 사업 평가를 의무시하는 관점이 절실하다. 사업평가는 독립적인 평가단위에 의해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 평가가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대외원조 개선 종합대책은 미래의 장밋빛 청사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를 평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박영선(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 뉴스레터 원본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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