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세계원조총회 무엇을 남겼나 (양영미)

부산세계원조총회 무엇을 남겼나

 

양영미(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KOFID 운영위원)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3일간 부산 벡스코에서 세계개발협력총회(이하 부산 총회)가 열렸다. 지구촌의  빈곤퇴치와 개발을 위한 원조 분야에서 역대 최대인원인 3천여 명이 참가해 세계개발원조의 새로운 틀과 패러다임을 논의한 부산 총회는 ‘효과적인 개발협력을 위한 부산 파트너십’이라는 제하의 부산선언문을 채택하면서 막을 내렸다. 부산 총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주최로 네 번째 열린 원조효과성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다.

 

총회는 170여 개국 정부를 대표해 외교부와 개발협력부 장관이 참석하고 78개 국제기구 대표들 이외에도 반기문 유엔총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토니블레어 전 영국총리, OECD사무총장, 르완다 대통령, 주제 라모스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등 정상들과 학계, 의회, 시민사회 대표들까지 참여한 화려한 세계원조총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화려한 회의의 외면과 달리 부산 총회는 아쉽고 미진한 결과를 남겼다.
 
효과적 개발협력을 위한 부산 파트너십
부산 총회 본회의 주요 의제는 크게 3가지였다. 1)파리선언과 아크라행동계획의 이행 결과를 평가하고 교훈을 도출하여, 미완의 과제를 점검하고 2)향후 새로운 개발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고 3)새로운 글로벌 개발협력 파트너십 등 부산 이후의 원조 거버넌스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부산 총회에서 원조의 획기적 발전과 글로벌 협력 체계를 기대했던 시민사회는 적잖이 실망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부산 총회에서 원조 증액에 대한 공약이 합의되지 못한 점, 파리선언과 아크라 행동강령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향후 이행의지도 미약하다는 점, 부산 이후 글로벌 파트너십의 구성 및 운영 방안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점 등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한계와 도전과제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부산 총회의 개최이유인 원조효과성에 의한 평가결과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파리 5원칙에 따른 정책 변화와 더불어 효과성 제고에 노력한 쪽은 공여국보다는 오히려 원조를 받는 수원국이었고, 공여국은 공여액을 중액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책 변화도 보이지 않아 원조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때문에 공여국은 부산이후의 새로운 틀로 옮겨가면서 파리선언의 책무성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되고 있다.

결과문서인 부산선언은 국제 원조정책의 패러다임을 ‘원조효과성’에서 ‘효과적인 개발’로 전환하고, 전통적 공여 선진국과 신흥국 등 다양한 공여 주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통원칙에는 △개발우선과제에 대한 개도국의 주인의식, △성과지향 △포용적인 개발 파트너십 △상호 투명성 및 책임성이 제시됐다. 4대 행동은 △ 개발정책과 프로세스의 민주적 주인의식 심화·확대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 강화, △남남·삼각협력에 대한 지원 확대와 개별 국가상황과 필요에 맞추는 지원 △개발도상국들이 다양한 형태의 개발 재원과 활동이 갖는 영향을 증진·강화하고, 개발협력 활동이 개발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부산 총회를 마지막으로 2003년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네 차례에 걸친 OECD차원의 원조효과성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개발효과성에 중점을 둔 새로운 글로벌차원의 원조 거버넌스를 출범시키는데 동의하고, 2012년 6월 글로벌파트너십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애초 시민사회가 2008년 이래 줄곧 요구해온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부산선언문 협상 과정에서 ‘효과적 개발’로 바뀌었다. 공여국 중심의 원조효과성을 공여국과 수원국의 공동 목표로서 개발효과성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시민사회에 의해 추동됐지만 협상과정에서 ‘효과적 개발’로 발표되었다. 말이 다른 만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2000년 유엔 새천년선언으로 빈곤퇴치가 목표로 천명된 이래, 국제사회는 2005년 파리에서 원조효과성 5대원칙을 선포하고 2008년 아크라에서 행동의제를 채택하며 지구적 차원의 빈곤퇴치와 원조효과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8년부터는 한국의 시민사회를 포함한 국제 시민사회 역시 ‘더 나은 원조’(http://www.betteraid.org)라는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OECD 원조회의에 파트너로 참가해 미래의 원조 거버넌스와 정책이 결정되는 부산 총회 준비 과정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왔다.

 

부산 총회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우선 이제까지 OECD에 의해 주도되던 거버넌스가 하나의 우산 속에 다양한 행위자가 함께 논의하는 다자 구도로 바뀌는 것이다. 새천년개발목표로 빈곤퇴치를 천명하고서도 원조 거버넌스 논의에서 소외된 유엔이나 ‘신흥공여국’이라 불리는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브라질)국가들이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지 은 채로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공동 논의 구조에 합의해 온 것은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빅 텐트’라 불리는 이 글로벌 파트너십의 갈 방향은 2012년 6월이 돼야 결정될 것이다. 중국은 파리선언이나 아크라 행동의제 등 OECD차원에서 운위되는 규범과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수원국 시스템 이용 결의는 성과
개발원조사업에 수원국인 파트너 국가의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강조된 것은 바람직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남반구에 위치한 수원국들의 남남협력과 삼각협력 등이 강조된 이번 회의에서 많은 남반구 수원국들은 자발적으로 부패를 청산하고 행정 거버넌스를 개혁해 더 많은 개발협력을 유치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피력했다. 실제로 수원국의 행정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수동적 수원국의 자세로부터 능동적 파트너국가로 주인의식이 놀랍도록 성장할 것이라 기대된다. 그리고 부차적이지만 과거 원조액의 3분의 2가 공여국의 컨설팅과 인건비로 환원되고 정작 수원국에는 3분의 1도 채 전달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감안하면, 수원국의 국립은행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에서 ‘부산정신’이라고 불리는 포괄성과 민주성, 투명성, 다양성, 책무성, 파트너십이라는 개발협력의 정신을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미흡했던 반면, 시민단체의 우려는 훨씬 더 많아졌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부채와 개발에 대한 유럽네트워크’(EURODAD) 관계자인 보도 엘머스는, 중국과 인도 등 개발원조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거대한 신흥 공여국의 눈치를 보느라 과거 오랫동안 충실히 규범을 준수하며 원조를 해온 유럽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생략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협상 기간 내내 전통적 공여국의 정부대표는 ‘세르파’라 불리는 협상단 회의를 통해 거대 신흥 공여국들에 공동 규범을 적용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려 했지만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끝내 자발적 참여 수준의 합의에 그치고 말았고, 그 논의에 힘을 쏟느라 무엇보다 중요한 포스트 부산의 주체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이 회의를 종료했다. 구체적 역할분담과 책임소재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것은 2012년 6월 이후 글로벌 파트너십 회의가 잠정적 표류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의 참여, 원조와 이윤의 딜레마 낳기도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래 국제경제는 점점 더 상황이 악화돼가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의 국가 부도 위기는 유로존의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 북미라고 해서 경제적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통적 공여국들은 2015년으로 약속된 새천년개발목표(MDGs)의 달성 시한이 성가시기만 하다. 많은 원조단체들은 2015년 MDGs달성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총회는 주요한 지구적 공공재 확보의 한 수단으로 민관협력(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을 강화한다는 주제를 주요 의제로 포함시켰다. 기업들이 개발협력사업에 초대된 것이다.

 

EURODAD의 엘머스는 이에 대해 재원확보와 기술력 등 민간섹터의 참여는 과거 없어왔던 것이 아니나, 기업들이 특별히 기여한 바도 없이 이번 총회를 통해 원조사업에 무임승차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와 국제기구가 공통적으로 국제법적 의무를 가지거나 납세자인 국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에 반해 기업, 특히 초국적 기업들이 적절한 규제 조치가 없는 채로 개발협력사업에의 참여하는 것은 위험한 시도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원조정책의 구상이나 이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상업적 이해에 민주적 절차가 희생될 수 있는 위험이 있고, 원조가 빈곤퇴치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희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조 투명성제고의 국제적 흐름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입찰조달과 사업선정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원조사업의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효과성을 제고한다는 논의가 영국과 북유럽국가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원조투명성을 위한 국제이니셔티브(IATI: International Aid Transparency Initiative)라 불리는 국제기구는 2008년 아크라 회의 이후 설립돼 현재 공여국과 수원국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도 가입해 자체 투명성을 증명하는 정보 공개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한국 정부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원조효과성을 위해 채택되었던 파리선언의 유효성에 대해 ‘더 나은 원조’ 등 시민사회들은 이 원칙들의 지속적 이행과 심화를 촉구하고 있다. 수십 년간의 공회전을 넘어서 개도국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원칙으로 수원국의 주인의식 강화, 원조조화, 원조책무성 등을 강조한 파리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의 지속적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 총회를 통해 이 원칙들은 가볍거나 사소하게 다루어졌으며, 6개월 후 있을 회의에서 재론될지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 이 글은 Economy Insight 2012. 0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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