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15-05-29   1355

[아시아생각] 보수개신교, ‘반동성애’ 운동이 활로?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5 아시아생각] ① 아웅산 수치, 미얀마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이유는?

[2015 아시아생각] ② IS의 광기는 美 지배전략의 산물 
[2015 아시아생각]
 ③ 중국편승? 중국견제?.. 둘 다 틀렸다!

 

 

보수개신교, ‘반동성애’ 운동이 활로?

미국 37개 주 동성 결혼 합법화 안보이나

정현희 성적지향 ·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한국에서도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존재와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근래 성소수자 이슈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까닭은 성소수자의 삶과 낙인, 차별과 인권침해의 문제가 널리 알려진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성애 반대’ 혹은 ‘탈(脫)동성애’를 슬로건으로 내건 보수개신교단체들의 조직화된 움직임이 발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무산된 과정에서(프레시안 2014.12.08 “박원순 시장, 당신 곁에 지금 누가 있습니까” 기사 참조), 또 서울시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청소년무지개와함께지원센터> 예산이 불용된 과정에서 반성소수자-보수개신교 단체들의 직접적이고 로비와 항의가 작용해왔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관련 인권정책, 차별금지법 등의 입안,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 대한 공공장소 사용 승인 등 국가 및 공공기관에서 ‘성소수자에게 차별 없는’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맹렬히 이를 공격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그룹이다. 이들은 현재 6월에 서울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인 퀴어문화축제를 막고자 성전(聖戰)을 준비하고 있다 한다.  

 

미국은 현재 37개주에서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동성결혼의 전국적 합법화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사상 최초로 성소수자 특사를 임명하고, 전 세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막기 위한 임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 역시 동성결혼이나 시민결합(Civil Union)제도를 통해 동성 간의 파트너십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법적성별정정을 위한 특별법과 지원프로그램,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성 교육 및 기업정책을 도입하는 등 의식적, 제도적 발전을 이루어왔다. 국제인권규범에서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의 흐름은 미국과 EU국가들의 이러한 발전에 따라 더욱 힘을 얻고 있다.  

 

UN인권이사회는 2014년 9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한 차별과 폭력 금지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UN인권이사회 사상 최초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관한 결의안인 2011년의 결과를 이어받는 의미가 있다. 한국 정부 역시 2011년, 2014년 각각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포함하여 국제사회에서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수준 높은 인권 보호를 결의하는 데 앞장서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또 2015년 3월, 방콕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국가인권기구 포럼(Asia Pacific Forum)에도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회원국 자격으로 참가하였는데,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를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며,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인권교육 프로그램의 주제로 포함시키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관용도’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가 39개 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동성애에 대한 관용도’ 조사 결과(발표 2013년) 한국의 관용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세대별 인식 차이도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의 국가 정책과 법제화 상황은 밑바닥 수준이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sogilaw.org)가 지난 5월 17일 발간한 연간보고서 <한국 LGBTI 인권 현황>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지수(‘무지개 지수’)는 유럽 49개국과 비교했을 때 45위 수준으로 44위와 45위를 기록한 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한국은 지난 2014년 국가 및 공공기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재단의 설립 허가 거부, 공공행사 장소사용 불허 등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인해 2013년 보다 인권지수가 하락하였다. (무지개지수(Rainbow Index) : 국제성소수자협회 유럽지부에서 EU 국가들을 대상으로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법제화 상황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고, 그 결과를 매년 보고서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정부와 인권보호에 책임이 있는 인권위원회 등의 국가기관은 국제적으로는 아시아를 선도하는 인권보호국가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러한 국제적 포지셔닝과는 달리 국내적으로는 조직화된 반성소수자단체 및 보수개신교계의 압박을 ‘중립적 입장’ 또는 ‘여론’으로 수용하고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인권보호에 대한 제도와 인식의 측면에서 아시아는 공히 뒤쳐져있지만, 갈등과 진통을 겪는 가운데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경우, 최근 도쿄시의 시부야구에서 동성파트너십을 인정하는 조례를 제정하는 변화를 보였다. 이전에는 동성애자보다 트랜스젠더가 더욱 가시화되어 있어,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정부 주도로 설계되어 교육 일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만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내각 및 총통부가 공동으로 동성결합법을 포함한 <인권보장기본법> 제정을 추진한 바 있으며,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나라이다. 동시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축제 및 퍼레이드가 개최되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정정을 제도화하고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관련 법률을 폐기하기로 하는 등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늦었지만 빨리’ 법제적 약진을 보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종교운동의 성격을 띄는 조직화된 반성소수자운동이 정치적, 법제적 변화를 늦추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 아시아 국가들의 식민지배 및 독립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기 전까지는, 동아시아는 유교와 불교, 동남아시아는 불교, 힌두교 또는 이슬람교 등 다종교 사회였으며, 식민지배나 근대적 법제도 및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이전의 종교이념이 반영된 정치제도들을  ‘악습’으로서 폐기하고 사실상 강제적인 정교분리를 경험한 배경이 있다. 개신교나 가톨릭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의 식민지배 또는 영향력 속에 유입되었다.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근대화된 국가들에서는 어떠한 종교적 영향력도 약화되는 배경을 가진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정교분리에 입각한 근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법의 원리와 금지 조항들이 근대법의 기초에 영향을 미친것과는 다른 역사적 맥락으로 보아야한다.  

 

9세기 영국 및 20세기 중반 미국 등에서 발흥한 도덕성 운동은 자위, 외설, 낙태, 매춘, 동성애 등을 ‘비가족적 성’으로서 제재하는 신우익-신보수 이데올로기와 이를 수용한 공권력 및 입법을 탄생시킨다. 일찍이 구약성서에 기초로 남성동성애를 금지하는 소도미법(sodomy law)이 있었던 서구사회에서는 동성애 금기는 매우 중요한 통치 요소였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의 토착종교나 중세 및 근세 역사에서 ‘동성애 금기’ 전통이나 금지법의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또, 불교나 기타 토착종교 등 에서 오늘날의 ‘트랜스젠더’나 ‘간성’과 유사한 양성적 존재를 신성시해왔던 문화가 보고되고 있다. 강조하면, 성소수자를 처벌하거나 금지하는 ‘나쁜 법’은 서구 열강을 통한 세속 종교로서의 개신교와 가톨릭의 유입, 또 서구의 법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여 유지되고 있는 유사 소도미법(한국의 군형법에서 남성 간의 합의된 성행위를 ‘추행’으로 범죄화하고 있는 것이 한 예) 등이라 할 수 있다.  

 

수년 전까지 만해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벌였던 것은 주류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배척되어왔던 일부 소규모의 복음주의 교회였다. 그러나 최근 대형교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이 대규모 ‘반동성애’ 운동에 가세하면서 보수적인 정치 권력과의 결탁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수교회가 현대적, 진보적 가치와의 충돌을 겪으며 신도의 숫자가 줄고 교회에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드는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하나의 방책이다. 특히, 교회는 교회의 안방이었던 서구사회에서 성소수자 시민권과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제화를 추진하는 변화의 기세에 밀려 필패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격전지를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옮기는 행보도 발견된다. 

 

미국의 성소수자인권옹호단체 휴먼라이츠캠페인(Human Rights Campaign)은 ‘혐오의 수출(Export of Hat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복음에 입각한 미국의 주요 반동성애론자들이 아시아, 남미, 유럽 등 국가에 ‘반동성애’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 역시 “미국도 유럽도 무너졌다”며 한국이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을 토대로 반동성애, 북한 척결 등을 내걸고 어버이연합과 같은 보수애국단체와 동맹을 맺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좋은 법’ 역시 국제인권규범 및 서구 선진국들의 인권규범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점이며, 국내에서 성소수자인권운동이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주한 유럽연합대표부와 유럽 10개국 대사관에서 한국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으며, 미국, 프랑스 등 대사관에서 2014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등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와 비판 역할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진통과 갈등, 지지와 변화는 발전된 서구사회가 이미 밟은 수순을 뒤늦게 겪고 있다고 볼 것이 아니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 VS 인권보호라는 서구적 각축의 자장 속에서 동시적이고 초국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성소수자인권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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