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칼럼(is) 2009-02-19   1394

[아시아 인권옹호자-4] 하노이 지하로부터의 목소리, 저항시인 Nguyen Chi Thien

베트남의 노래하는 저항시인




이름: NGUYEN CHI THIEN (1939~)
국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분야: 인권, 민주주의, 저항시인





베트남의 역사

 베트남의 정식명칭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통해 공산화를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1945년까지 지속된 응웬 왕조를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2차 세계 대전의 종결 후 여러 외세의 침입에 맞닥트리게 된다. 이에 반발해 베트남에는 여러 민족 진영이 생기게 되는데, 그 중 하나인 베트남 독립동맹(베트민)을 중심으로 북 베트남에 베트남민주공화국이 설립된다. 남, 북으로 갈라진 베트남 통일 전쟁에서 남 베트남의 공산화를 우려한 미국이 1961년 참전하였으며, 한국도 이 때 지원군을 파병하였다. 1975년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 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이에 본격적인 베트남의 공산주의 체제가 시작하게 된다.

<사진 1>                                                     <사진 2>          
 

사진 1. 베트남 전쟁에서 폭격을 피해 달아나는 아이들
사진 2. 전투에 참가한 한국 병사들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베트남은 현재 상당부분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재체제하에서 베트남은 인권운동에 대한 탄압을 계속하고 있고 정치범들은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영장 없이 체포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사법부와 입법부는 정치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까지 종교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종교 단체들은 공산당이 운영하는 조국 전선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인권, 민주주의, 정권교체를 토론하는 반 체제주의자들이 학대당하거나 협박을 받고, 구속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수용시설은 불결하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하며 수용소 내에서는 고문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꿈꾸는 저항시인 NGUYEN CHI THIEN

 뉴우엔 치 티엔은 1939년 2월 27일 베트남 중산층의 아들로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배려로 그는 프랑스와 베트남 문화의 좋은 교육을 받게 된다. 1954년, 그의 나이 15살 때 북 베트남에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다. 당시 거의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북에서 남으로 옮겨갔지만, 그의 부모님은 하노이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이 외세를 몰아내는데 기여한 애국주의자들이고 그들의 정책이 서민을 지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어긋나고 1953년에서 56년에 걸쳐 이루어진 소련식 공산화 과정에서 수십만의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돌아오지 못하는 감옥으로 보내졌다.


 








사진 3. 뉴우엔 치 티엔

 이 때부터 티엔은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시를 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시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베트남을 떠돌게 된다. 1960년 12월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었던 한 친구의 부탁으로 티엔은 두 시간 동안 역사 수업을 맡게 된다. 당시 사용되었던 교과서인 “Cach Mang Thang Tam 1945” (8월 혁명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이 만주에서의 소련군대의 승리 때문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진실은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두 개의 원자폭탄 때문에 일본이 항복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약 두 달 뒤 그는 반정부선전의 혐의로 체포되어 2년의 형을 선고 받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푸토와 엔바이 지역의 노동캠프에서 3년 반을 복역하게 된다.


 그는 약 100여 편의 시를 캠프 안에서 쓰는데, 모두 그의 마음 속으로 쓰게 된다. 왜냐하면 캠프에는 시 쓰기를 위한 집필도구도 없었고 그러한 시를 쓰고 읽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쥐, 거미, 곤충 등 캠프 내에 살아있는 생물은 모두 멸종될 정도로 캠프 내 환경은 열악했다. 극한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티엔은 시가 영혼의 아내와 깉이 곁에서 그를 위로하고, 격려했다고 회상한다.


 1964년 석방 후 티엔은 기억 속으로 저장해 두었던 시를 옮겨 쓰고 그것들을 그의 친한 친구들에게 낭독해 주기 시작한다. 곧 그의 시는 하노이와 하이폼에서 널리 퍼지게 되고, 1966년 반동적 시를 썼다는 이유로 그는 다시 12년의 감옥행을 선고 받는다. 그는 이 긴 시간 동안 300편이 넘는 시를 마음 속으로 집필한다.


 1977년, 남 베트남이 몰락한 2년 후, 정치범들을 수감하기 위해 북 베트남 정부는 그를 석방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의 증언으론 그는 ‘걸어 다니는 해골’이라 불릴 정도로 깡마른 상태였다고 한다. 티엔은 그의 시를 해외로 보내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대사관으로 갈 것을 결심하고 3일 밤, 낮에 걸쳐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시 400편을 옮겨 적는다. 7월 16일 마침내 그는 영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고 3명의 외교관에게 셔츠 속에 숨겨두었던 그의 시들을 넘겨주게 된다. 그들은 티엔에게 시를 출판할 것을 약속한다. 티엔이 대사관의 뒷문을 나오자 마자 그는 경찰에 다시 체포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동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과 국제사회에 티엔의 상황을 알려온 해외거주 베트남인들의 도움으로 그는 1991년 10월 석방되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만난 세 명의 영국 외교관은 약속을 지켰고, 티엔의 시는 미국, 프랑스 그리고 다른 나라의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퍼지게 된다. 1982년 Asiaweek 지는 “하노이 지하로부터의 목소리”란 제목의 기사를 싣고, 티엔에 관한 BBC 방송이 이어지면서 세계는 그를 베트남의 저항시인으로 주목을 하게 된다. 티엔은 “Amsterdam Poetry prize”, “American PEN Freedom Award” 등의 상을 수상하게 되고 1988년에는 “Freedom to Writer” 상을 받는다. 그의 시는 지금 영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베트남의 인권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베트남과 미국의 수교가 정상화된 후 미국으로 이주한 티엔은 40년 간 떨어져 있던 그의 동생과 지금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Though the night seems impenetrably deep
And boundless over my head,
I still pray,
Still live and trust
That the dawn will come, the dawn will come.”
“비록 밤이 칠흑처럼 깊을지라도,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해도,
나는 여전히 기도합니다
여전히 살아가고 믿고 있습니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새벽이 오리라 것을”
티엔의 시 中에서

참고자료
http://www.vietamreview.net/Nguyen_Chi_Thien_author.html
http://www.vietnamlit.org/nguyenchithien/autobiography.html
http://en.epochtimes.com/news/6-5-3/41077.html
http://en.wikipedia.org/wiki/Nguyen_Chi_Th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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