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0-10-01   1623

[15호] 시민 불복종을 옹호한다.

대법관 퇴임(退任)의 변(辯) 유감

이 글은 한겨레신문(2000.7.18) 게재칼럼을 개고(改稿)하였다-편집자 주

지난 7월 10일, 임기만료로 재야로 돌아간 6명의 대법관들이 퇴임의 변(辯)을 밝혔다. 여기서 퇴임대법관들은 법과 현실의 괴리라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법원은 "먼저 국민이 만든 법을 그대로 실현하고, 그 법의 괴리가 심화되었을 때는 판례를 통해 그 괴리를 메워 줄 입법절차를 촉구"해야 한다고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대법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의 이름으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듯이 급조된 국민여론을 내세워 법의 권위를 짓밟는 사회현상과도 냉철한 판단으로 대응할 때가 되었다"라고 강한 어조로 선언하였다.

이러한 퇴임사는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퇴임사의 내용을 극찬하면서 민주주의의 구호 하에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나아가 이 사설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과 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관용발언을 법치주의를 뒤흔드는 사회풍조를 만든 대표적 행동으로 꼽고, 이를 '포퓰리즘'(populism)으로 낙인찍기까지 하였다.

법원판결은 무엇을 말했는가

먼저 우리는 퇴임 대법관이 퇴임사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러한 정치적 발언을 굳이 했어야 했는가 의문스럽다. 사법부에서 항상 하던 말처럼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하는 것' 아니었던가? 또한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대법원의 어법을 거꾸로 사용하자면―"법의 이름으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듯이 급조된 정치세력을 내세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짓밟는 일"을 주도 또는 방조한 세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더욱 강화해야 할 현 시기에, '법의 권위', '법치주의'의 이름 아래 막 성장하는 시민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시민운동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로워서도 안 된다.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이 일종의 유행이 되어 정체불명의 단체가 NGO를 자처하기도 하고, 시민운동가의 일부가 권력과 유착된다거나 도덕성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이든 조선일보든 시민운동을 비판하려면 과거의 자신의 모습부터 겸허하게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이 만든 법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집권한 세력의 '통치'와 '지배'의 도구에 불과하였다. 당시 국가체제를 '불법국가'라고 부른다면 과장일까? 당시 대법원은 조악한 법률실증주의에 사로잡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언론기본법 등 각종의 반민주악법을 여하튼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던지, 이 법들을 최소한 해석을 통해서라도 그 부작용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얼마나 노력하였던지 묻고 싶다.

한편 조선일보의 사설은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의 아픔" 운운하고 있으나 조선일보가 독재정권과 어떠한 관계를 유지했는지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체제가 강요한 '실정법 준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저항권'(right of resistance)을 행사한 민주화운동 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불복종은 민주주의의 한 형태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기는 했으나, 아직 우리의 법, 제도, 관행 등에는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 보다 높은 단계로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 권위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숙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필수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민운동은 조선일보의 지적처럼 "지키기 싫은 법은 안 지켜도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시민운동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과 제도는 개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모든 합법적 수단과 절차를 동원하며,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행한다.

'시민불복종'에 대한 세계적 (법)철학자 두 사람의 견해를 간략히 보자.

먼저 존 롤즈(John Rawls)는 '시민불복종'은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을 변경하려는 의도로 행해지는 법을 위반한 공적·양심적 행위라고 정의하고, 민주주의체제 하에서도 '시민불복종'이 필요한 것은 민주적 절차가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 불완전성을 시정하기 위해서라고 갈파하였다. 또한 로날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시민불복종은 헌법에 비추어 의심스러운 법에 대한 저항이라고 정의하면서, 법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도덕적으로 무분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국가기관은 '시민불복종'에 대하여 관대해야 할 책임을 지며, 기소여부를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만약 기소되는 경우 법원은 형의 감경 및 선고유예 등을 통하여 가볍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요컨대 '시민불복종'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가 전제하는 항의의 한 형태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운동이 취하는 최후의 행동지침이다. 이로 인해 창출되는 사회적 긴장은 민주주의 사회가 기꺼이 감내해야 할 비용이며 사회진보를 위한 보약일 것이다.

'법의 권위'와 '법치주의'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법의 실질적 내용이 민주주의와 정의에 부합해야만 한다. 시민운동은 '법파괴운동'이 아니라 바로 법의 내용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불어넣어 궁극적으로는 법의 진정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운동이다.

조국 | 교수(동국대 법학,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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