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1697

불매운동은 위법?

대법원 제2부(주심 이용우 대법관)는 작년 7월 13일 “마이클잭슨 방한공연 반대운동”을 벌인 시민단체를 상대로 공연기획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입장권판매대행계약을 파기한 “은행의 결정이 불매운동과 관계없이 스스로의 반성적 고려에 의한 독자적인 결정임을 알아 볼 수 있는 사정이 심리되지 않았다”며 원심의 심리미진을 이유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경제적 압박수단을 고지하여 이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우려, 본의 아니게 입장권판매대행계약을 파기케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위법하다고 보아야 하며, 그 목적에 공익성이 있다하여 이러한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시민단체 활동의 위법성 기준을 제시했다. 소비자 운동에 대한 미국판례를 중심으로 이 판결을 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은 언사가 가질 수 있는 폭발성을 간과케 하고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의 중요한 고리를 놓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말로만 하면 어떻게 성희롱이냐”라는 말속에 존재하는 시각 속에서 진행되는 사회개혁은 절름발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증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은 홈스판사의 사상의 자유시장(free market of ideas)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행동할 수 있는 자유 못지 않게 인간 행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 심리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언사가 진리나 선과 같은 어떤 객관적 가치에 이바지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궁극적으로 언사는 그 인과관계가 의사전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행동은 물리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진행되고 그 결과도 다른 사람의 참여에 구애받지 않고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언사는 언사를 듣는 사람의 행동 또는 언사를 듣는 사람의 정신상태를 통해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표현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에 가까워

자유민주주의사회는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이다. 즉 어떤 언사를 전달받고 이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선택이며 반응하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부자가 되고 못되고는, 자신이 얼마나 교육이나 기타 사회적 동기부여에 열심히 반응하고 노력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그 자신의 가정환경이나 사회조건에 규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는 사회이다. 자유로운 사회이니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이렇게 언사의 결과는 듣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에 “말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결과이든 간에 – 듣는 사람이 충격을 받았건, 듣는 사람이 제3자를 더욱 가벼이 여기건 – 그것은 듣는 사람의 선택으로 인한 것인지 말한 사람이 인과한(cause)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 하나의 주체(agent)로서 인과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사 스스로는 남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에 매우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사가 독자적으로 초래하는 결과는 없다.

물론, 위와 같은 대화성(communicativity)을 넘어서는 물리성을 가진 언사도 있다. 인과관계가 듣는 사람의 자유의지를 통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고 듣는 사람의 말초신경을 통해 전개되는 언사, 즉 음란물은 물리성을 가진 언사들로서 실제로 많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은 음란물을 비보호언사(unprotected speech)로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의 보호밖에 두고 있다. 그리고 언사를 듣는 사람이 말한 사람에게 직업적으로 또는 기타 관계를 통해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를 유발하는 언사들 또는 경제적 강제를 유발하는 언사들, 그 외의 언사 외적인 요소들과 함께 작용하면서 강제력을 행사하는 언사들은 모두 언사 자체의 내용이 다른 언사들보다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듣는 사람이 잘 듣고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듣는 사람을 즉각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물리성이 없는 언사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재판장 이용우대법관)은 지난 2001년 7월 13일, 1996년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에 반대해 그 공연 흥행사의 주거래은행에 해당 흥행사와의 거래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만약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해당 은행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시민단체들을 상대로 흥행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에 대하여 “경제적 압박수단을 고지하여 불매운동 대상자가 불매운동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여 부득이 본의 아니게 원고와 체결한 계약을 파기하였다”며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자유민주주의헌법 법질서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멀리가지 않더라도 해당 사건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던 원심판결이 명쾌하다. ‘인과관계가 없으며…(중략)…그들(은행들) 스스로 위 계약을 이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시민단체)가 공언한 불매운동 등에 의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영업손실을 비교 교량하여 독자적인 영업판단에 따라 선택한 결과”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규정지었다.(1998.9.1. 선고, 98 나18225) 위에서 필자가 설파한 대로, 시민단체의 언사를 수인한 은행직원들이 그 언사에 대해 생각하고(deliberate) 반응할 기회를 가진 순간부터 주체(agency)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이 시점에서 시민단체들의 언사가 초래한 인과관계는 끊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시민단체의 표현”과 “은행의 행동”은 인과관계 없어

대법원의 판결은 시민단체들이 주거래은행에게 “우리는 당신 은행과 거래를 하지 않고, 내친구나 내 가족들도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한 것을 “경제적 압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어느 은행에 가서 당신 은행과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압박”이라면 그 은행은 소비자들의 거래를 받을 “특권”이라도 있다는 말이지 궁금하다. 기업들의 경제적 결정은 환경 및 노동에 끼치는 영향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보장해주어야 하는 소위 시장경제 아래서 소비자들이 특정 업체를 애용하지 않겠다고 해서 이를 “강압”으로 모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반을 뒤흔드는 결정이다.

부자가 되도 자기책임이고 빈자가 되어도 자기책임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압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반독점법(antitrust law)위반 즉 불공정거래이다. 미국에서는 한 업체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또는 여러 업체가 담합하여, 소비자들에게 특정 가격이나 특정 제품을 파는 행위는 1913년부터 일찍이 강매로 규정되어 왔고 꾸준히 처벌되어왔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담합”하는 것은 반독점법위반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에서는 일찍이 판례로써 정리된 바 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사회라고 해서 말로만 하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법상으로도 위 사건에서 적용가능한 불법행위 유형들로는 계약관계 방해 (tort of interference with contractual relations), 계약이행 방해 (tort of interference with performance of contract), 장래경제적이익 훼손 (tort of intereference with prospective economic advantages), 치상허위(injurious falsehood)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위법행위들 모두 (1) 정당한 방법의 사용과 (2) 정당한 목적으로 완전항변 될 수 있으며, 마이클잭슨 방한 사건에는 미연방헌법 수정조항 1조에 의해 보호받는 정당한 방법인 “언사”만이 사용된 것이다.

생각의 교환은 행동하게 할 기회를 의미

1982년에 지방도시의 흑인들이 시정부가 인종평등정책을 실현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격렬한 시위를 통해 백인상점에 대해 보이콧하자, 백인상인들이 계약관계방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미연방대법원은 NAACP v. Claireborne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여기서는 보이콧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사(speech)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보이콧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였고 이런 행위는 사회적 강압(social pressure)과 사회적 따돌림(social ostracism)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중략)… (그러나) 언사는 그것이 남들에게 창피를 주거나 그들을 강압하여 특정 행동을 하게 한다고 해서 그 보호성을 잃는 것이 아니다. Justice Rutledge가 말했듯 ‘표현의 자유는 행위와는 관련 없는 추상적인 토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중략)….”생각의 자유로운 교환”은 단순히 사실을 표현할 기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특정행동에로 설득할 기회를 뜻한다.’ Thomas v. Collins, 323 U.S.516, 537.

마이클 잭슨 방한공연 반대사건에서는 실제원인행위가 격렬한 시위나 과격한 비난 또는 따돌림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해당은행에 보낸 편지 두어 통 뿐이다. 게다가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그 언사를 사용한 목적이 정치적인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닐 경우에는 더더욱 항변이 강해진다. Enviornmental Planning and Information Council of Western El Dorado County, Inc., v. The Superior Court of El Dorado County, 36 Cal. 3d 188 (June

7, 1984)에서 한 비영리단체는 한 언론사의 환경문제에 관한 논조를 비난하며 원고의 신문에 광고를 내지 말 것을 광고주들에게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계약훼방에 대해 우리는 ‘제3자에 의한 의도적인 훼방이 정당화된 것인가는 훼방행위에 의해 실현되는 사회적 또는 사적 목표의 중요성과 훼방 받는 이익의 중요성을 교량 하여 정해지며 훼방자의 행동과 당사자들의 관계 등의 제반사정들이 고려되어야 한다……예를 들어, 경쟁업자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계약이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피고의 목표는 환경과 연관된 공론에 대한 풋힐타임스의 논조를 바꾸어보려는 것이었고, 이 목표 자체는 명백히 합법적이었고, 사용된 방법도 평화로운 2차 불매운동으로서 (역자 – 불매대상업체의 거래처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것) 이 주의 보통법상 합법적인 것이었다.

캘리포니아대법원은 피고의 주장에 부합하는 케이스를 딱 하나 찾았었다. 유타에서 한 동물애호가 협회가 특정 지역의 개 수용소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관광 자체를 거부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그 지역을 관광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고, 하급심은 그 지역 관광업체들의 손배소송을 인정하였었다. (Searle v. Johnson (Utah 1982) 646 P.2d 682.) 하지만 결국 이 판결은 유타대법원에 의해 파기되었다.

박경신 | 한동대 법학과 교수,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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