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1419

[16호] 어려운 시절

인생에 대하여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시절, 젊다는 것 외에는 이 거친 세상에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변변치 않은 자산도 없었던 시절에 한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 주말 저녁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신촌에 위치한 대형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가 책 한 권을 사고, 그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진 오래된 음반가게의 친절한 아가씨가 골라주는 음반도 하나 사서 근처의 단골술집에서 생맥주 몇 잔을 들이키는 일이었다. 그 술집에서 자주 마주치다가 친해져버린 단골 손님들과 먹고사는 일하고는 관계없지만 더러는 작은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작은 키에 검은 안경을 쓴 주인이 틀어주는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새 자정이 다 되곤 하였다. 그러면 아쉽게 자리를 일어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새로 산 음반의 비닐 포장을 뜯어 전축바늘을 올려놓고, 아직 인쇄냄새가 가시지 않은 책을 읽었다. 인생이 내가 아직 반쯤밖에 이해하지 못한 두렵고 신비로운 무엇이었을 때 음악은 인생에 어떠한 액센트를 부여해주는 마법이었고, 책은 불안한 인생을 조금씩 밝혀주는 안내자였다. 그리고 생맥주는 분별 없는 삶을 향한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광기를 순화하고, 쓸쓸한 삶의 엉킨 매듭을 풀어주었다.

세월이 흘렀다. 주어진 일에 파묻히기도 하고, 동료들과 독한 술도 즐기곤 하는 사이 세상은 점점 풍족하고 화려하면서도 천박하고 초조한 곳이 되어갔다. 그 술집 주인은 가게를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다른 장사를 시작하였고, 레코드가게의 아가씨는 남반구의 어느 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그 서점만이 겉으로는 큰 변화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쩌다 예전의 그 거리에서 지인(知人)들을 만나기로 하였을 때, 그리고 그 부근에 새로 생긴 백화점에 다녀올 때 간혹 그 서점에 들러본다. 이제는 컴퓨터에 관한 책, 21세기에 관한 책, 그리고 돈을 버는 방법이나 시간을 관리하고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 가득하다. 전에는 새로 나오는 책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신간들이 너무 많아 신문에서 요약해주고 권유하지 않으면 책을 고를 엄두가 안 난다. 그 시절에는 꽤 널찍한 서점 안에서 눈을 감고도 어느 책이든 찾아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색해 보이고 겁나게 바쁜 아가씨들에게 묻거나 구석에 설치된 컴퓨터를 두드리지 않고는 책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은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였다. 누가 뭐라 해도 어쨌든 먹고 살만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책 <느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속도와 효율의 세상이 목가적이고, 느린 세상을 대체하고, 영악하고 날랜 인간들이 따뜻하고 느긋한 사람들을 몰아내는 세상, 소비하는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이 나라는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화 또는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논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도도한 흐름일까.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하여도 내실은 없이 구호만 높은 이 나라의 분위기와 일방통행식 흐름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탁류에 실려 흘러가고 종내 마멸되어 버리는 세월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이 나라의 경제가 부도가 난다, 국가가 경제주권을 내주게 생겼다고 아우성치다가 가까스로 헤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서글픈 일이지만 어쩌면 예정된 일이지 않았나 생각했다. 세상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이 나라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여가를 모두 줄이고 가족을 소홀히 해가면서 정신 없이 일만 하여 그럭저럭 재산을 모은 사람,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사람, 그 재산으로 흥청망청 생활할 줄은 알지만 그 재산을 나누거나 여가를 즐길 마음의 여유를 모르는 사람, 즉 일은 열심히 하지만 천박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졸부의 모습이다. 그런 식의 발전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일시적으로는 돈도 많이 벌고, 자신이 뭐라도 된 것인 양 고개를 쳐들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 내면의 깊이와 나눔의 지혜, 그리고 삶의 정취가 함께 성숙하지 아니하면, 그 무자비한 발전은 언젠가는 중단되기 마련이다. 설혹 그것이 중단되지 아니한다 해도 그 삶은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니고, 자손 어느 대에서인가는 초라한 결말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천문학적인 세금이 예쁠 것 하나도 없는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을 도와주는 데에 버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나라가 젊어서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때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은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한 세상을 그런 식으로 살다가 노쇠하여 아무런 기력이 없을 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할 처지에 놓인 노인의 꼴에 이르지 않은 것은 이 나라가 그래도 복 받은 나라인 것을 보여준다.

삶도 사회도 어느 하나의 가치와 속도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해서는 바른 삶과 좋은 세상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 삶이고, 허튼 천국이다. '느림의 즐거움'만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은 물론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속도와 리듬에 따라 살아가고 그것이 서로간에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람이나 사회의 다소 발전이 느려지고, 번거롭더라도 물질적인 발전에 걸맞은 깊은 철학과 고고한 문화를 배양하고, 서로 나누어야만 어느 날 갑자기 거덜나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 더 빨리, 더 악착같이 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설혹 이번에 우리가 일어나더라도 훨씬 더 잔인한 파국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느릿느릿 고전을 읽는 사람들, 차 한 잔을 마시며 지인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들, 게으르지만 선량한 사람들도 살아남을 수 있고, 때로는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진심으로 염원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조광희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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