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7-08-01   1276

[09호] 법원에 가보자 !

모니터리포트

법원에 가보자 !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사와 형사, 구속과 불구속, 지방법원과 대법원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른다. '범죄자'에 대한 편협한 사고나, 법조인에 대한 환상, 법에 대한 두려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법학도들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법원에 가보자. 거기서 사법을 움직이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 원고와 피고, 방청객들을 만나자. 사법과 국민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 그곳이 사법감시운동의 출발점이다.

3월 27일 서울지방법원 311호 법정에서 재판을 방청하였다. 법학도로서 처음 대하였던 이 재판에서 느낀 점은 재판내용보다 그동안 가졌던 판사, 검사, 변호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무너지는 실망감이라고 할 수 있다. TV에서 본 조리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변호사의 모습과는 달리 준비해 온 서류만을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그냥 줄줄 읽는 모습, 지나칠 정도로 판사에게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실망스러웠다.

같은날 횡령혐의에 대한 재판도 있었다. 참관한 재판 중 유일하게 증인이 출석하였는데, 판사가 증인에게 지난 번에 출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을 하였다. 아무리 질책하는 입장이었다 해도 심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증인이 못오게 된 사정을 말하려고 하지 증인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신경질적으로 "앉아요"라고 말했다. 또 판사가 피고인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내뱉은 "욕심 부린건가?, '뭐 좀 뜯어내려고?", "말이 되는 소리요?"등의 말은 내가 듣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 후 한 강도사건에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전면부인했다. 그러자 판사가 "그럴 줄 알았어. 앉아."라고 했다. 피고가 공소사실을 부인했을 때, 판사는 '그렇다면 왜 경찰과 검찰에서는 이같이 진술했는가?'라고 묻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사는 "그럼 검사가 거짓말로 작성했겠어? 목 잘릴려고?"라는 등 검사편에 기울어서 검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반면 피고인의 말은 무조건 믿지 않는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 판사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 양쪽의 의견 모두를 편견 없이 들은 후에 이성적으로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한쪽 얘기만 듣고 흥분하는 사람은 신문기자가 아닐까? 게다가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을 대하는 이런 판사의 태도는 선생님이 문제아를 대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또 한 사건은 노점상인이 단속나온 경찰에게 연행되는 과정에서 반항하다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검사는 징역3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에서도 판사의 노골적인 언사가 계속되었는데 "공포탄을 쏘는데 무섭지도 않나? 요즘 사람들은 무서움도 없나? 두서넛만 모이면 다 부술 것 같은데 하나씩만 보면 너무 선량하고 이게 우리 민족 특성인가봐"등의 재판의 요점과는 동떨어진 듯한 발언을 했고 판사의 주관적인 감정이 들어간 발언이 재판의 과정에서 굳이 있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화여대 법학과 1학년 박정미>

4월 11일 서울지방법원에서 형사사건을 참관했다. 525호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방청했는데 그날 다룰 사건은 총 59건 이었다. 미리 예상하기에는 형사재판이기 때문에 살인이나 폭력이 대단히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기사건이 14개로 가장 많았다. 영화나 소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인지 형사재판하면 대개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을 연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또한 영화나 소설로 인해 재판시간이 대단히 길고 치열한 공방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것도 틀렸다. 재판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그런 비슷한 재판을 여러번 한 후 판결이 난다고 한다.

옆에 정장을 한 사람이 앉았다. 방청객의 한사람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피고인 누구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이 나갔다.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범죄자라면 흉악한 외모를 지녔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졌었나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도 범죄자일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절감했다. <이화여대 법학과 1학년 박정화>

5월 16일. 마포에 있는 서부지원에 갔다. 법원에 간다는 것이 그리 즐겁고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한번도 접촉해 보지 않은 세계인 법원의 문을 여는 것은 조금은 설레지만 두려운 일이었다. 너무나 엄숙하고 고요한 법원 내부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다시 확인시켰다. 민사재판정에 들어갔다. 한 명의 판사가 있었는데, 대부분 당사자들이 원고나 피고로 판사 앞에 서서 진술하였다. 너무도 빠른 진행이어서 우리들에게는 내용을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형사단독재판도 참관했는데 경비 같은 아저씨가 일체의 기록을 하지 못하게 했다. 판사는 피고인이 긴 설명을 하려고 하면 단호하게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했다. 변호사는 이미 쓰여진 사건내용을 무성의하게 웅얼거리듯 읽고, 그에 대해 피고는 단지 동의나 부정만 표명했고 일체의 다른 언급을 하지 못했다. 마치 정해진 각본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4학년 최주영>

태어나서 처음 법원에 가보았다. 민사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재판정에 들어갔다. 나의 환상은 깨어지고 말았다. 첫 사건에서 변호사 없이 판사 앞에 선 원고는 판사의 말에 답변조차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때때로 원고나 피고가 답변을 길게 할 때면 그 답변을 무시하고 질문한 내용에 짧게 답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재판이란 성문화된 법규범을 근거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판을 진행할 때 판사는 피고나 원고측의 모든 변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대체로 판사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이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피고와 변호사가 함께 나왔다. 첫 사건과는 달리 판사는 변호사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았다. 변호사는 비교적 논리적으로 진술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판사는 전혀 위압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았다. 판사는 논리적인 진술에 대해 수긍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첫번째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일반인들은 너무나도 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경우 법은 너무나도 특정 계층에게만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해결을 위한 사회규범이다. 그렇다면 대중들로부터 발생되는 갈등과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대중들 스스로도 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4학년 최하정>

대법관님을 뵈려고 대법원을 찾아갔다. 무척 웅장한 건물이었다. 우리는 약간의 위압감을 느끼면서 어색하게 걸어들어갔다. 수위 아저씨의 검문이 있긴 했지만 의외로 친절히 대해주셨다. 건물 안은 서울지방법원과는 달리 사람이 없어서 조용했다. 숨이 막히는 듯했다. 우리는 두 번의 검열이 더 있은 후에야 무사히 판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법관님을 뵈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고영환, 김문석 부장판사님 두 분을 뵈었다. 하지만 훨씬 덜 부담되고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사형 선고나 무기징역 같은 무거운 형을 선고해 보신 경험

–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얼굴을 여러 차례 보았는데 대법원까지 올려면 이미 여러차례 선고를 받고 올라오기 때문에 벌써 얼굴빛부터 잿빛으로 바뀌어 있고 산사람 같지 않다. 인상이 너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하고 대학에 와서도 고시에 청춘을 바쳐서 오로지 공부만 잘하고 타인과 사회에 대해 경험도 없고 올바른 관점도 정립되지 않았는데 고시만 합격했다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재판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수한 지적 능력, 건전한 판단력, 풍부한 사회경험 등의 조건 중에서 어떤 것이 우선한다고 생각하는지

– 모든 사건에는 해답이 있고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판사의 임무이다. 그래서 우수한 지적능력이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머리가 나쁘면 그런 해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판결을 내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판단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판사는 법에 따라 재판하기 때문에 풍부한 사회경험이 오히려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 법관이 되신 이유와 보람을 느낄 때

– 법관이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성적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법관이라는 직업은 명예와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리고 직업에 안정성이 있어서 좋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부수적이다. 다른 어떠한 직업이라도 사회적으로 일정한 수준에만 이르면 그 자체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다.

▶ 애로사항

– 일이 너무 과중하다. 한 사람당 맡은 사건이 많기 때문에 외국처럼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나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 친지나 아는 사람이 재판을 잘 해달라고 요구할 때

– 아는 사람의 재판은 자신이 회피할 수도 있고, 법적으로도 제도(제척, 기피, 재배당 등)가 마련되어 있다.

▶ 만약 범인이 공소장에는 범행을 자백하고서 공판 때는 부인하거나 억지쓸 때

– 범인이 자백하고 안하고는 범인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소장 일본주의라고 해서 공소장만 보고 들어가기 때문에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백지상태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판사나 사건에 따라서는 괘씸죄로 양형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 법학도에게 충고 한마디

– 법관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지 재판할 권한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란다. 그래서 권력을 갖고 싶어서 법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길로 돌아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 판사의 인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

– 단순히 인원을 늘리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판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일을 재판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국가적으로 시간과 인력의 낭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법원 내부에서는 모든 사건을 재판으로 해결하지 않고 대화나 타협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고 있다.

바쁘신 가운데도 우리에게 시간을 내 주신 판사님들께 감사드린다. 공판 때 피고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판사라는 존재에 실망을 했었는데 인터뷰 내내 보여주신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와 진지한 모습에 감동했다.

<이화여대 법학과 1학년 박정미 소은영 손진현 손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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