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6-01   1581

[05호] 진실을 밝히기가 이렇게 힘든 것일 줄이야…

서울시 공무원의 아내이며 두 아이의 어머니인 저는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낮에는 유아놀이방의 보모로 일하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판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모두 열한명의 선량한 사람들이 정미경, 김상덕(현역 소령) 부부와 이영주(김상덕 부하의 부인), 이 세사람이 공모한 사기사건으로 7억 여원에 이르는 재산손실을 입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84년 정미경과의 인연이 시작된 후 저는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으며 아울러 김상덕에 대한 신뢰감도 깊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 정미경, 김상덕 부부가 청주로 이사를 했고 얼마후 직업군인들에 대한 특혜 차원에서 분양권이 나온 아파트를 자신들은 경제적 능력이 안되니 옛일에 대한 은혜도 갚을 겸 언니(정미경이 본인을 부르던 호칭)의 노후를 생각해 투자해 두면 어떻겠느냐는 정미경의 권고가 있었습니다. 물론 남편의 뜻이라는 말과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한푼 두푼 절약해 모아 두었던 돈과 계를 들어 마련한 돈으로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착실히 정미경, 김상덕의 계좌로 보냈습니다.

그 후 경기도 구리시에 있던 군부대가 다른 지방으로 이전하여 그 부지를 일부 장교들에게 포상의 의미로 불하하는데 자신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으나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회이니 대신 불하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국방부의 기밀사항이라는 단서를 붙여서입니다. 저는 일개 소령에게 그러한 포상이 있다는 말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으나 워낙 군부대에는 기밀사항이 많을 거란 생각과 포상 서열상 김상덕의 윗 사람들은 더많은 양이 할당되었다는 정미경의 말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고 말았습니다.

저는 혼자 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땅을 그동안 빠듯하게 살면서 신세진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소개하여 다같이 혜택을 누림이 도리라 생각되어 다른 피해자들에게 이일을 권하여 정미경과 김상덕의 계좌에 입금시켰습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던 중 여타의 일들에 대한 권리증 등 그동안 입금시킨 돈들에 대한 청구서 확인을 요구했으나 정미경의 말인즉 이것은 군부대의 아주 이례적인 포상이므로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자신들만 믿고 기다리면 곧 등기이전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무고죄로 억울하게 구속되어

그러던 중 정미경이 말한 시기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막연한 불안감이 들어 청주의 그들의 집에 들러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살펴본 즉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그들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불안이 짙어져 보다 적극적으로 물증을 요구하자 아파트 분양이나 군부지불하가 모두 허위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미경은 "언니, 미안해!" 만 계속하며 울뿐 더이상의 말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김상덕 또한 아내가 저지른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발뺌하였습니다.

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저는 서울에서 사기꾼들의 거주지인 먼 청주까지 가서 청주시 서부경찰서(담당 임승열 경사)에 정미경, 김상덕을 고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일들을 조사하던 경찰서에 김상덕이 나타나 그 지역의 유지행세를 하며 국가의 녹을 먹는 군인의 신분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꾸밀 수 있었겠느나며 범인은 오히려 자신과 부인을 이용해 서울의 10명의 피해자들을 농낙한 민영순이라고 역설하여 저는 94년 1월 7일 무고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어쨋든 같은 지방 유지의 말만 전적으로 믿고 저의 탄원을 무시한 청주경찰서 형사의 어리석음과 담당 오세범 검사의 기소로 저는 청주교도소에서 미결수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청주지방법원 김시철 판사님 덕분으로 재판 종결 전에 석방되었고 95년 1월 21일 무죄임이 밝혀졌습니다. 김시철 판사님은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정미경을 직접 신문하기 위해 청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오기도 하고, 은행계좌추적을 통해 제가 현금으로 돌려받았다는 돈이 사실은 유일한 증인인 이영주의 계좌로, 정미경 처가 명의의 건물 매입자금으로 사용된 것 등을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인 검찰의 항소로 또 길고 긴 재판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96년 1월 19일 항소심(청주지방법원 제1형사부 재판장 이형하 부장판사, 이재호, 함상훈 판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재판과정에서 정미경이 간경화로 사망하였고 김상덕은 사망한 부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잘못된 초동수사가 사건 망쳐

물론 경찰이나 검찰에서 제대로된 수사를 하여 이런 사실들이 밝혀졌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제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검찰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죄를 선고받으면 다른 문제도 저절로 풀릴 줄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제적 손실과 신용을 되찾기 위해서는 길고 긴 법적 투쟁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앞이 막막합니다. 정미경의 상속인인 김상덕에게 이미 남은 재산이 거의 없고, 군인신분이어서 연금 등에는 손을 못대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청주시 서부경찰서 임승열 경사가 조금만 더 자세히 조사를 해 주고, 오세범 검사가 기소권을 조금만 더 신중하게 행사했다면 정미경이 사망하기 전에 이 사건은 종결이 되었을테고 억울한 옥살이나 경제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매듭을 풀기 위해 찾아간 수사기관에서 오히려 사건을 엉클어뜨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지난 96년 3월 29일 제가 돈을 도로 돌려받았다고 허위증언을 한 이영주를 대전지검(담당 이재헌 검사)에 위증죄로 고소하였습니다. 이번만은 검찰이 신뢰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걱정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영주의 위증 뿐만 아니라 김상덕이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이 법적으로 밝혀져 선량한 사람들의 피해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어쨋든 상담을 해 본 변호사들은 제가 잃은 돈을 다시 찾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을 쉽게 믿고 속아넘어간 제 잘못도 있지만 당사자가 사망하기까지 긴 시간을 끌어야만 했던 원인이 경찰과 검찰의 잘못된 수사에 있다고 생각하면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가 한없이 끓어오릅니다.

공무원으로서 월급까지 차압당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진실이 꼭 밝혀지고 다시는 저와 같이 수사기관의 오류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민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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