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8-02-01   2002

[10호] 양형제도의 개선과 합리화

사법개혁과제 23.1매

양형제도의 개선과 합리화

변호사 방희선

형사재판의 핵심적인 2가지 요소는 올바른 유.무죄의 판단과 적정한 양형이다. 특히 적당한 양형은 실제 사건에 있어서 절대 다수의 이해관계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건들 중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불과 몇 퍼센트 미만이고, 나머지는 유죄의 경우인 게 현실이므로 이 경우에는 결국 어떤 형이 선고되는가만이 관심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서구 각국에서도 범죄의 정도에 상응하는 적정한 양형을 추구하기 위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가해졌다. 그럼에도 이는 여전히 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되어 있어 끊임없는 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의 현실은 그간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다. 학계에서도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측면의 범죄론에만 집중하여 왔을 뿐 양형(sentencing)에 관하여는 오로지 판사의 재량판단에 속하는 일로서 연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었고 실무계에서도 뚜렷한 이론적인 분석이나 검토없이 판사 개개인이 알아서 실천해야 할 윤리상의 미덕 정도로만 생각해 왔던 게 지금까지의 실상이었다. 그러나 양형의 본질이 범죄에 대한 제재요, 형벌의 실현인 이상 명백히 구체적으로 법실현의 한 측면으로서 규범적 통제를 받는 영역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양형을 위한 이론적 연구와 실천적 방안의 모색이 시급하다고 본다.

판사마다 양형편차가 생기는 것은 당연

이러한 양형의 중요성과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양형실태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주먹구구식에 가까운 비과학적인 실정이라 생각된다. 앞서 본 자유재량이라는 전통적인 사고에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관념적 명제가 결합되어 형사사건의 양형은 오로지 판사 개개인 내지 해당 재판부가 각자 알아서 해야 할 윤리상의 덕목 수준으로만 이해되어 온 실정이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자연 재판부마다, 판사마다 형량차이가 생기는 일이 많아져 재판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낳았고, 급기야는 '유전무죄,무전유죄' 라는 오랜 유행어마저 생겨나게 되었다. 반면 판사들은 판사들대로 각자의 시각이나 인생관에 따라 편차가 생기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막막한 지경에 빠지기도 하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우리의 재판구조는 선진국과는 달리 유죄인부의 절차와 양형의 절차가 구분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양형 심리를 위한 어떠한 조사절차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그저 판사 혼자 일거에 전인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법윤리와 관련된 여러 부작용이 거론되기도 하고 시민들의 비난이 제기되는 반면 판사들은 판사들대로 반론으로 맞서 항상 해결점이 없는 상호 불신만 노정되어 왔다. 때로는 사회적 압력에 밀려 입법을 통한 형량의 가중을 낳아 도리어 경직된 양형을 초래하기도 하여 그로 인한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와 같은 무익한 논쟁이나 현상비판에만 매달려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 실제적인 양형의 개선방안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가 겪은 형사재판 실무경험과 선진외국의 제도, 기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기초로 몇가지 현실적인 방안을 거론해보고자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양형은 형사사법적 정의의 핵심요소의 하나이므로 이를 단순히 판사의 개인 윤리에 속하는 문제로 논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판사의 전인격적인 재량판단에 맡겨둘 일도 아니다. 범죄의 정도와 그에 대한 법적 제재의 균형, 즉 공평이라는 견지에서 이 역시 구체적 법적용의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상의 한 원칙으로 승인되고 있는 비례.균형의 원칙이 지배하는 영역이 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위하여는 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합리적인 양형, 과학적인 양형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본다.

표준적인 양형방침 마련 : Sentencing Guideline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양형을 위해서는 양형지침의 마련이 필요하다. 양형기준에 대한 현행제도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형법 제55조는 아무런 표준도 없는 선언적 기능에 불과하다. 범죄의 종류와 유형에 따른 합리적인 양형인자의 추출, 분류를 기초로 표준적인 양형지침서(또는 양형기준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판사 개개인의 개성에 따른 예측 불가능한 차이를 억제하고 합리적인 편차범위 내에서의 양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예전부터 대부분의 주(州)가 양형기준표를 제정하여 시행해왔을 뿐 아니라 1984년에는 연방차원의 Sentencing Reform Act 제창하여 미 전역에서 양형에 대한 표준적 통제가 실현되도록 하였다.

아울러 법조실무교육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실시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사법연수원의 수습과정은 물론 모든 재판관련 교육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지속적이고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사법실무에 있어서는 표준적인 양형지침에 관한 해설서나 주석서가 마련되어 Law School을 비록한 모든 실무교육과정(예컨데 변호사 직무교육이나 판사 직무교육) 등에서 필수적으로 학습하게 되어 있다.

양형심리단계와 양형조사제도를 통한 양형절차 확보

현재와 같은 공판절차와 소송구조하에서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양형자료의 판단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사건심리의 중심이 유.무죄의 판단에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대다수의 사건이 자백에 의한 간이공판절차 대상으로 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양형만을 위한 심리 기회가 있을 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막상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서는 충분한 객관적인 자료를 갖지 못한 채 그저 수사기록에 기재된 내용이나 피고인측에서 내놓는 변소자료에만 의존하여 재판장이 적당히 헤아려 양형요소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형사절차의 2분화를 도입하여 양형단계에서도 별도의 심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고 또한 필요한 경우 양형조사관에 의한 양형자료의 조사.보고가 이루어지도록 해야할 것이다(예컨데 일본의 판결전 조사제도). 이러한 절차의 운용에는 사법보좌관이나 예비판사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판결이유의 기재와 상소심리대상화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토대 위에서 실제로 합리적인 양형의 실현과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기하기 위하여는 형사판결의 이유에 양형의 사유를 기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에 대한 당부를 상급심에서 심사할 수 있도록 양형의 당부(當否)를 상소이유의 하나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는 양형기준표에 설정된 형량범위에서 벗어나는 양형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상급심의 심리판단 대상이 되어 있으며, 영국이나 독일 등 선신각국도 양형의 당부를 상급심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도 판결문에 양형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상급심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한 이후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양형배심 내지 양형자문위원회

우리에게 배심은 낯선 제도이며, 우리의 문화여건상 부적절하다는 비판론이 강한 편이다.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배심제도의 도입은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양형의 합리화를 보장.촉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양형절차에서 제한적으로 배심제를 도입하여 사회일반의 법의식.법감정과의 괴리를 줄여나가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각급의 법원에 양형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기 위한 양형자문위원회나 기타 양형협의체를 두어 양형의 객관화를 보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여러 지역에서 법원 내 판사들로 구성된 양형위원회(Sentencing Council)나 판사외에 다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양형자문위원회를 두어 판사들의 양형을 적접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양형자문위원회는 1934년에 이미 Washington 주에서 채택하였고 이후 California 주를 비롯한 많은 주에서 도입한 바 있다.)

이상에서 양형의 합리화 필요성과 이를 위한 몇가지 방안을 검토해 보았지만 이는 우리 형사사법제도의 구조와 직결되어 있고 재판실무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사항이므로 법조계 뿐 아니라 사회전체에 걸쳐 폭넓은 논의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순한 사법감시의 차원이 아닌,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통한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사회 전체의 공익 차원에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는 현행의 법과 제도를 개정함은 물론 새로운 입법과 정책의 수립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범죄에 대한 형의 양정이 더 이상 판사 개인의 윤리와 소신에 맡겨지는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기준과 원리에 입각하여 내려지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법 발견의 영역에 속한다는 의식의 전환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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