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0-10-01   1271

[15호] 재판소의 변화가 "법의 지배"의 실현의 길

*이 글은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論座 2000년 8월호에 실린 글을 편역한 것이다. (편역 : 이종민,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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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붕괴 후의 폐색감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뭔가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의식에 더하여, 정치개혁, 행정개혁, 규제완화, 지방분권 등의 개혁이 진전했다. 그리고 지금, 일련의 움직임의 총체적인 완성으로써, 사법분야에도 개혁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있다.

이 과제에 몰두하기 위해 작년 7월에 사법제도개혁심의회가 발족했고 2년간의 기간을 정해 정력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나간 개혁들과 비교해 보면 사법개혁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적었다. 사법은 정치, 행정과 비교해서 국민과의 거리가 멀다. 투표를 위해 구청을 찾는 사람은 많지만 재판소 문을 빠져나간 적이 있는 사람은 국민의 극히 일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의 바람직한 방향"은 정치, 행정과 견주어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과 더욱 깊이 연결되어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후자를 규정할지도 모른다. 법률은 정치부문에서의 의사결정으로 제정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재판관의 주체적인 판단이 불가피하고 그 판단내용에 따라,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이 상당히 틀려진다.

이처럼 사법이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개혁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다소 세세한 기술적인 논점에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개혁이 현실적이기 위해서는 개별적 과제에 대해 상세한 제도설계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사법개혁전체라는 문맥에 위치 지워져야 한다.

"관(官)"과 사법 – 허술한 일본의 현상

"법의 지배"라는 사고는 일본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우리들은 "법의 지배"가 일본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중국에서는 아직 '법의지배'가 기능하고 있지 않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재일 미국계 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이, 구미(歐美) 사람들은 일본에 "법의 지배"가 확립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사법과 법의 역할이 일본과는 다른 것일까? 따라서 "법의 지배"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법의 지배"는 우선 국가기관에 의한 공권력의 행사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것은 법에 의해 국가기관의 행동에 제재를 가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한편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정개혁과 규제완화의 배경에는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라고 하는 슬로건이 상징하듯이, 공권력 행사를 담당하는 행정권한을 축소해 행정의존 구조를 벗어나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는 행정컨트롤을 제일의 임무로 하는 사법이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는 것과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행정 등의 국가기관과 개인, 기업이 대항하는 "관(官)대(對)민(民)"의 상황에서 일본의 사법은 거의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우선, 국가 또는 자치단체 등의 처분이 적법여부를 다투는 행정소송 건수가 현저히 적다. 1998년도에 지방재판소, 고등재판소가 제 1심으로서 수리한 행정소송은 전국에서 약 1700건. 이것은 구미 선진국들만이 아니라 대만, 한국 등과 비교해도 적다. 독일에서 1984년에 행정계 재판소에 제소된 건수는 303만 건 이상이었다. 일반민사소송수도 독일이 많지만 행정소송의 차는 대단히 크고, 90년대에도 인구비에서 일본의 700배 이상에 달하고 있다.

일본의 변호사 수가 다른 모든 외국에 비해 적다는 것이 지적되지만 행정소송수의 차이는 그 이상이다. 게다가 단순히 수만 적은 것이 아니다. 원고인 "민"의 승소율은 정보공개소송 등 일부를 제외하면 매우 낮다. 재판소는 행정소송의 원고적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원고의 주장을 엄격히 심사하며, 실질심리에 들어가도 국가기관의 재량권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사건수가 적은 것은 이런 재판의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재판소가 공권력 행사의 감시에 소극적인 것은 형사사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에 의한 통상적인 체포영장 청구 기각율은 94년에 불과 0.03%, 건수에서 31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효과적인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일본의 관민관계는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자가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과 "낙하산 인사"로 상징되듯, 이익을 공유하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고 양자 사이에 구미제국에 존재하는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 뉴욕에서 일했던 섭외변호사에 의하면 은행의 지점개설준비를 위해 일본의 본점에서 온 임원에게 처음 설명하는 말은 "뉴욕연방은행 이사를 접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법이 정하는 기준을 만족시킨다면 당연히 개설이 허가됩니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만약 재판소가 행정의 재량권을 적절히 제약한다면 기업은 안심하고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말해 보면 행정을 재판소가 감시해 주지 않을 때 행정을 추종하는 이외의 어떠한 선택이 국민에게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규제완화가 진행되어 행정권한의 절대량이 감소해도 공적규제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제완화의 실질은 정부규제의 전면적인 폐지가 아니라, 시장기능의 적용범위 확대에 어울리는 규제의 재편성이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기존의 규제가 강화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경쟁질서를 지키게 해 주는 독점금지법과 안전망의 확보, 새로움에 걸맞는 공적규제 등이다.

많지 않은 "룰에 의한 해결" – 뛰어난 사법의 역부족

"법의 지배"가 우선 국가기관을 향한다고 해서 그 외의 상황, 즉 인간간의 분쟁 해결이 "법의 지배"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의 궁극적인 목표가 국민의 자유보장에 있고, 국민의 자유는 공권력 이외의 것으로도 침해받는 이상, 사회에서 생기는 다양한 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법의 지배"의 내용이다.

개인 대 개인, 기업 대 기업이라는 "민대민(民對民)"의 상황에서 일본사법은 이미 진술한 " 관대민"의 상황과 비교해 그 나름의 역할을 다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분쟁을 제소하는 것에, 많은 장해가 있기 때문에 분쟁의 일부밖에 재판소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다.

각종의 노동상담에는 연간30만 건을 넘은 사안이 제소된다고 추계하고 있지만, 재판소가 처리한 건수는 90년대의 증가경향에도 불구하고 98년도에 기껏 2천 5백 건 정도이다. 프랑스에서 15만 건 이상, 독일에서는 약 63만 건, 잉글랜드 웨일즈에서 약 7만 5천 건의 노동소송이 제기되고 있다(이상, 95년). 나까보오 코오헤이(中坊公平) 변호사가 강조하는 "2할 사법"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태를 가리키고 있다. 그 때문에 법에 비추어 해결되어야 할 사안의 대다수가 비공식적인 방법에 의해, 게다가 많은 경우 약자의 단념에 의해 결말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재판소에 제소된 사안의 처리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의 사법은 사법의 이용자인 국민에게 친절하지 않다. 이것은 법조 3자 모두에게 해당하지만, 특히 재판관은 과중한 부담 속에서 사건처리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정중한 심리보다도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건수를 처리하는 것에 강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당사자의 심정을 배려하지 않고 쓸데없이 화해를 도모하는 재판관도 드물지 않다.

반대로 노동사건, 의료과오 사건에서는 판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이 많고 최종해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일 조차 있다. 판결내용에 관해서도 "최고재판소 판례를 당연히 중시하며, 새로운 사회상황에 걸맞은 창조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개개 사건에서의 타당성을 특성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재판관 자신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사법은 복잡 다양한 사회의 요청에 응해 전문적인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는 일이 요구되고 있는 데도 일본의 사법은 양적, 질적으로 능력부족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 기업간의 분쟁이 해외 재판소에 제소되는 예가 있는 것은 사법이 경제활동의 기본적인 인프라로써 충분히 기능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사법개혁의 중심과제 – 다양한 재판관

재판소는 사법제도의 중핵이며 이곳이 약해지면 사법은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관대민", "민대민" 쌍방의 상황에, 어떻게 하면 "법의 지배"를 실현할 수 있을까가, 솔직하고도 철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이하에서는 여러 외국제도를 참고하면서 두개의 관점으로부터 검토해 보겠다.

첫번째로, 재판소는 다양한 재판관에 의해 구성되어야만 한다. 사회 속에 다양한 가치관, 이익의 대립이 있고 게다가 규제완화가 진행되면 빈부의 차가 증대하고 계층분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재판소의 판단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제도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장을 가진 재판관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성의 필요는 사회의 특정 입장에 있는 자만으로 사법부가 구성되는 일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백인만이 재판관이라면 사법은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인가? 실제 영국에서 90년대에 행해진 재판관 임명절차의 개혁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가 재판관에 당선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또한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유럽대륙 국가에서도 재판관의 구성은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 나라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젊은 법률가를 직업재판관으로서 채용하는 "캐리어 재판관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실질은 일본과 많은 차이가 난다. 일본은 사법수습생에서 직접 재판관을 채용하고 재판소 내부에서 육성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재판관 층의 자질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은 모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캐리어 재판관을 채용하는 한편 실무경험이 6년 이상 되는 변호사를 중심으로 많은 법률가를 재판관으로 채용하고 있다. 양자의 비율은 이전에 1대1 이었지만 작년도는 외부 채용이 70%정도에 달했다. 벨기에도 같은 상황이고, 최근에는 캐리어 재판관과 동수이상의 재판관을 10년 정도의 실무경험을 가진 변호사 및 대학교원, 공무원, 회사원(다만, 모두 변호사자격자)중에서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캐리어 재판관제가 낳는 폐해를 없애는 데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독일에서는 아마추어 재판관이 직업 재판관과 더불어 재판을 담당하는 "참심제"가 널리 채택되고 있고, 이는 캐리어 재판관의 경험부족을 보충하고 있다.

사법과 민주주의 – 재판관 채용에의 국민참가

두번째로 필요한 개혁은 재판소에의 국민참가이다. 재판소의 사법심사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본질적인 긴장관계가 있다. 선거에 의해 정통성을 부여받지 않은 재판관이 왜 법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정하며, 입법이 헌법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의 재판소가 사회에 대해 그만큼 큰 역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긴장관계가 강하게 의식되는 일은 없었다. 현행제도에 있는 민주적인 요소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의 국민심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긴장을 국민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에 두기 위해서는 국민의 사법참가를 강화하고 재판소에 민주적인 요소를 보다 많이 주입할 필요가 있다.

사법은 다수결의 원리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인 존재라 해도 그 정통성과 정당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단위에서든지 국민의 의사와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재판관은 일부의 변호사 임용자를 제외하면 사법수습직후에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에 의해 채용된다. 그러나 1970년이래 56명의 채용희망자에 대한 "임관거부"를 둘러싸고 지적되어 왔듯이 그 채용기준은 매우 불명확하다. 금번 사법개혁에서는 주로 변호사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서 재판관을 채용하는 "법조일원" 제도가 논의되고 있지만 어느 쪽 제도를 채용하건, 재판관의 임용절차에 국민의 관여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스스로가 재판관으로서 적당하다고 생각한 자에 의해 재판 받을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닐까? 실제 캐리어제를 채용하는 독인,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는 재판관, 검찰관과 더불어 변호사, 법학교수, 의원, 더욱이 시민대표 등을 멤버로 한 특별한 위원회가 만들어져 재판관의 임용절차에 관여하고 있고 위원회의 판단은 실제로 존중되고 있다. 사법개혁에는 "배심" 제도와 함께, "참심"제도도 논의되고 있지만, 이러한 배심제와 참심제 역시 국민의 사법참가라고 하는 관점에서 그 옳고 그름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개혁후의 사회 – 추궁되는 "공정함"

사회의 다양함을 반영할 수 있는 재판소, 그리고 국민이 참가 할 수 있는 재판소의 실현은 "사법개혁"의 성패(成敗)의 척도이다. 그러면 그 실현이 이룩된 사회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사법과 접촉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일까? 개혁의 목적을 선명히 하기 위해서도 "사법개혁후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자.

"법의 지배"가 실현된 사회는 우선 투명하고 공정한 룰에 기초해 국민이 쉽게 스스로의 권리를 실현하고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사회이다. 지금까지 국민은 행정의 보호적 기능에 의해 지켜져 왔다. 반면에 행정권한이 후퇴하게 되면 국민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대립하는 이익이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충돌하며 또한 분쟁의 증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가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행정이 해 왔던 보호적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그것은 국민이 사용하기 쉽고 친절한 사법에 다름 아니다. 국민, 특히 일반 시민들이 용이하게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으면 국민은 그러한 사회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민대민"의 상황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분쟁이 당사자의 실력에 의해 해결되면 힘이 약한 쪽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말 할 필요가 없다. 강자만이 계속해서 승리해서는 다원적인 사회의 유지는 불가능하다. 이런식으로 생각하면 "법의 지배"는 그저 절차의 공정성만을 충족시키는 수준으로는 불충분하며, 내용의 공정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공정한 룰이야 말로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공정한 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법이 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사전규제의 제정과 달리 사후규제의 룰은 재판소가 구체적인 사안처리 속에서 만들어 낸 판례에 크게 의존한다. 재판소의 판단과 이에 대한 비판이 쌓이면서 무언가 공정하다는 것이 서서히 확정되어 가는 것이다.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를 반영하며 국민에게 열린 재판소는 이러한 과정을 충실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생리로써의 소송 – "남소(濫訴)사회"를 두려워하기 전에

투명하고 공정한 룰의 형성을 위해서는 많은 분쟁이 재판소에 제소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는 소송이 병리가 아닌 생리로써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소송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법해석을 통한 룰의 확정은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많은 분쟁이 소송을 이용하지 않고 해결되어 왔기 때문에, 예를 들면 국제 거래분야 등에서는 중요한 논점에 대해 전혀 판례가 없고, 있어도 2차대전 이전의 판례 정도이다. 이것은 예측가능한 비즈니스 환경을 방해하고 일본 시장의 국제화에도 장해로 다가올지 모른다. 개별의 분쟁해결을 위해서 소송이 아닌 "ADR" 이라 불리는 각종 재판 외 분쟁처리절차의 이용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그러나 룰의 형성을 위해서는 일정 수 이상의 소송이 재판소에 제소될 필요가 있으며 사법과의 접촉확대는 국민의 권리실현뿐만 아니라 이 관점에서도 이해되어야 한다.

소송의 촉진을 주장하면 미국과 같은 소송사회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미국사법의 일부에 병리적인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전체로서의 미국사법의 건전함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일면의 사실이다. 가령, 미국이 바람직한 수준에 비해 "남소"의 경향에 치우쳐 있다고 해도, 일본은 바람직한 수준에 비해 소송이 적은 경향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소송사회"를 "남소(濫訴)사회"로 슬쩍 바꿔치기 해 공연히 두려워하기보다 현단계 일본에서는 소송제기를 촉진하고 룰이 명확해 지는 것을 우선시 해야 할 것이다.

구미 여러 나라들에서도 소송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과 비교해 보면 소송건수는 적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남소에 이르지 않고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일은 당연히 가능해야 한다.

법률가의 역할 – 세분화의 극복을

이렇듯 법이 하는 역할이 커지는 사회에서는 사법의 인적 기반인 법률가 층이 양적, 질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법률가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어 왔지만 국민에게 가까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법률가가 활동분야를 넓혀 개인, 기업, 행정 등 각각의 분야에서 보다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행정의 보증에 의해 행동하고 있던 기업은 문제에 직면한 때에서야 변호사에게 법률적인 의견을 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지금까지 행정기관에는 법학부 출신자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법률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행정기관도 변호사를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인다.

이미 국제경제법의 영역에서는 변호사가 관청에 채용되어 배출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외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치분야에서도 법안의 작성을 법률사무소에 의뢰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법률가, 특히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소송중심의 업무형태로부터 탈피해 보다 종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현재는 변호사와 인접직종이 세세한 자격으로 분화되어 있고 법조 3자 속에서조차 공통의 정체성이 꼭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더욱이 법학연구자와 실무가도 분리되어 양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일본의 법률가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새로운 사법을 지탱하는데 족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분리의 극복이 필요하다.

이상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사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았지만 현실에서는 개혁의 목적과 일본의 사법전통·현상과의 균형을 어떻게 도모할지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전통·현상에 구애된 나머지 개혁의 목적이 파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다른 한편 개혁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명치유신 후, 급속히 유럽, 특히 프랑스, 독일의 법 제도를 수입하고 근대국가로서의 형태를 정비했다. 법 제도는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본연의 모습과 분리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적인 법 제도는 일본적인 특성으로 변화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세계화의 진전은 일본사회 자체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법제도가 변용되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요구되고 있는 것은 단지 "개량"이 아닌, "개혁"이라는 것을 다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스아미 다까오 | 교수(早稱田대학 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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