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0-10-01   1369

[15호] 사법시험 절대점수제만이 법조인력 수급에 원활히 대처할 수 있다.

대한변협(회장 金昌國)은 10월 1일 "절대점수제에 의한 사법시험 합격자 선발방식 도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변협은 "현행 정원제 대신 절대점수제를 도입할 경우 법조인력 수급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당분간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

의료사태와 대한변협의 선택

국민들은 최근의 의료사태를 보며 한편에서 의사들이 진료비 아닌 약값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의료제도의 개선을 촉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저생존권의 문제도 아닌 수입의 부분적 감소의 문제로 환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정의의 수호자라는 변호사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그리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의 변호사를 회장으로 선출한 새로운 변협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대한변협은 변호사 1인당 인구수가 1만여명에 이르고(미국250명), 높은 법률서비스 단가로 저소득층은 '민사상 치외법권'에 살고 있고, 노조전문 변호사는 단 1명에, 교도소 및 기타 수용시설의 많은 이들이 법의 보호 및 관심 '밖'에 갇혀있고, 기업활동에 대한 규범적 통제의 부재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IMF사태로 전재산을 날리고, 기업들도 '법대로 하면 손해본다'며 뇌물을 남발하고, 유학갔던 장애인 박사가 김포공항에 발을 디디며 '나는 다시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10만여명의 '고시낭인'이 인생을 건 도박을 할만큼 법조인들이 소수 특권층이 되어버린 정원제 하의 지금은 과연 법조인력의 공급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양질의 법조인력은 순수자격시험으로 구현

절대점수제가 시행되면 매년 합격자수에 변동이 있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률서비스가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매년 합격자 숫자가 백단위로 딱딱 떨어지는 것이 국민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도리어 양질의 법조인력을 확보하여 국민의 법조인력 수급에 원활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은 순수한 자격시험, 즉 절대점수제로 운영되어야 마땅하다. 양질의 법조인력 확보는 절대평가를 통한 순수 자격시험을 통해서만 구현된다.

현행 정원제 또는 상대평가제로는 양질의 법조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정원제 하에서는 객관적인 자질의 유무에 관계없이 등수에만 들면 변호사가 될 수 있다. 또는 반대로 자질의 유무에 관계없이 등수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자격을 주지 않음으로써 인력조달에 차질을 빚는다. 간단히 말해, 정원제는 무자격자에 자격을 줌으로써 법조인력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유자격자를 실격시킴으로써 유효 법조인력의 양을 축소시킬 수 있다. 법조인력의 양과 질은 순수자격시험으로 보호된다.

혹자는 '자격시험 형태로 운영하게 되면 오히려 합격자 수가 줄어들게 될 우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업이다. 자격시험은 변호사의 자질을 검증하는 시험이며 절대평가로 이루어지는 한 이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은 변호사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수자격시험 하에서 변호사가 충분히 배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변호사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적다는 것이고 이는 국가가 법학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해결해야지 정원제를 통해 자질이 없는 사람까지 뽑아가며 억지로 정원을 채우는 것은 이들을 모르고 선임하게 될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주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자질'이란 법률소비자인 국민이 요구하는 자질을 뜻한다. 즉 굳이 더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국민이 공히 동의한다면 전문가의 의견을 참작하여 스스로 합격점수를 낮추면 된다. 어쨌거나, 위와 같은 우려는 공상일 뿐이다. 현행 정원제는 수많은 객관적인 유자격자들을 실격시키면서 변호사의 숫자를 축소시켜 사회전체적으로 엄청난 폐해를 야기하였고, 우리는 순수한 자격시험제를 관철시켜 더 많은, 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재판을 통한 비효율적 규제의 통제

저렴한 법률서비스는 법치주의의 필수조건이다. 비싼 법률서비스의 단가는 서민층이 명백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정상적인 방법, 즉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 그리고 각 변호사마다 일정한 시장점유율이 보장되어 전문화를 통해 경쟁할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법률서비스의 총량이 적어 많은 사회적인 이슈들이 재판이라는 공론(public discourse)의 형식에서 배제되어, 좌우 빈부를 막론하고 뇌물, 폭력, 실력대결, 투표 등의 힘의 논리로 처리되어왔다.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는 비민주적인 투쟁문화가 편만(遍滿)하게 되었다. 많은 변호사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공익활동'에 더 무심해질 거라고 말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공익활동에 홀홀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나올 때 진정한 사회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도 취미로 하는 '공익활동'보다는 자신들의 백만원짜리 소송이라도 하나 더 맡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많은 변호사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단가가 너무 높아서 손님이 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참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비효율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수많은 규제들도 무조건 수적으로 줄이려 할 것이 아니고 하나 하나 변호사들의 입을 빌어 재판을 통해 효율성을 검증받으며 폐기 또는 개선되거나, 해석을 통해 그 구체적인 의미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법조활동의 총량이 적어 많은 규제들이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 그대로 법전에 남아있다.

당연히 공무원들은 규제들을 자의적으로 적용 및 해석할 수 있는 달갑지 않은 권한을 누리게 되었고, 뇌물과 부패의 숨통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국민 자신도 규제들이 엄정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신뢰가 없게 되었고, 소위 '법대로 하면 손해본다'는 생활관념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어 법과 현실의 괴리는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법률서비스 증대는 법조인 증원으로

우리와 사법제도가 비슷한 일본의 한 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겠

"구조조정과 탈규제의 흐름은…. 계속 확산될 전망이다. 점점 더 많은 경제규제들이 폐지되고 있으며….. 사회경제활동의 기준과 질서는 공정의 원칙의 구체화를 통해 지켜나가야 하며, 이는 사법부의 판결들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반독점법의 집행에 있어서 피해 당사자 기업의 법률행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주주들의 대표소송도 기업들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 바 이는 최근 여론화되고 있는 기업 내부의 스캔들이나 부패 사건들에 비추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흐름에서 법원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에 맞게 법을 개혁해 나가는 사회통제의 기관으로 작용해야 한다…..더욱 시급한 이슈는 법률서비스의 보급이다….효율적인 민사소송제도는 법 아래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건설에 매우 중요하다…..더 많은 사람들이 민사소송에 참여함으로써 더 많은 판결례들이 많은 분야에서 공정의 원칙을 구체화시킬 수 있다. 이때 법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의 숫적 요구를 충족시켜고 변호사그룹내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이를 위해 일본법무부, 대법원, 변호사협회 등의 오랜동안 토의를 통해 1999년부터 1000명을 선발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숫자가 충분한 지에 대해 검토해보아야 한다.

법률서비스의 부족은 경제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미국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기업운영자의 사기 및 부실운영 때문에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법적 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 더욱 유의가 요청된다. 우선, 소송비용이 매우 높다. 변호사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 변호사 비용이 비싸다. 최근 일본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는 인구 6천6백명당 한 사람의 변호사가 있는 반면 미국에는 인구 300명당 한 사람의 변호사가 있다. 성공보수에 의해 수임계약이 드물고 원고측은 상당한 수임료를 선불로 지불해야 한다. 또, 소송에서 이겨도 판결액이 낮은데 이는 응징적 배상금이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본 민사재판은 길기로 유명하고 끝날 때까지 수년이 걸린다…..투자자대표소송이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부실한 기업운영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미국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별 효용을 보지 못하고 있다…..최근에는 투자자 소송을 촉진하기 위해 법이 개정되었다…..일본에서는 기업운영에 관련된 많은 스캔들을 생각할 때 투자자의 보호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경제인프라로서의 법률서비스의 중요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강조되어, 정원제의 입법례로 거론되는 영국도 이미 10만 법조인력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solicitor에는 숫자제한이 없어졌고, barrister들의 '독과점' 철폐를 위해 barrister만이 가지고 있던 폭넓은 소송대리권을 solicitor들에게 부여할 계획을 점차 시행해나가고 있다. 일본도 최근의 일본변호사연합회 집행부가 사법제도개혁의 흐름을 받아들여 '시민을 위한 개혁'을 목표로 현재 연간 1000명 정도의 합격자수를 2-3배로 증원할 것에 동의한 바 있다.(인구비례 변호사 숫자는 일본이 이미 한국보다 2배정도 많다.) 영국과 일본 모두 정원제의 질곡을 벗어나 세련된 사법개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본받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1999년 11월 19일 참여연대는 사법시험 정원제 폐지의 정당성을 홍보하기위한 공청회를 서울대에서 가진 바 있다. 같은 해 11월경 대통령 자문 사법개혁추진위원회도 약 1년간의 연구 및 토의작업을 마무리짓는 최종시안에서 사법시험 합격 정원을 2000년에 800명, 2001년에 1,000명으로 늘이되 장기적으로는 절대평가제로 전환할 계획을 수립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예고된 사법시험법의 입법예고안은 정원제 폐지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지난 수년간 법조계, 학계 및 시민단체가 부단한 토의를 통해 얻어낸 합의를 거스르고 세계적인 법조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변호사협회의 선언문이 기억난다.

"변호사시험은 지원자가 사실관계에서 법적 쟁점들을 찾아내고, 그 쟁점들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기본적인 법리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쟁점들을 논리적으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시험해야 한다. 시험은 지식, 기억 및 연륜을 측정할 것이 아니다. 시험의 목적은 공공의 보호이지 면허를 받는 변호사들의 숫자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다." 즉 변호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시험문제의 형태로 전환하여 소비자 보호, 법률수요의 성격, 법치주의 달성 등의 제반 공익들을 고려하여 일정한 수준의 변호사의 자질을 자격요건으로 결정한 후, 이를 일정 점수의 합격선으로 정량화하여 운영할 경우 양질의 법조인력을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편집부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