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7-05-17   1334

<안국동窓> 김성호 법무장관과 ‘불신사회’의 문제

온 국민을 놀라게 했던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이 사건은 8대 재벌에 속하는 한화재벌의 김승연 회장이 폭행당한 아들의 ‘복수’를 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2007년 3월 8일 밤에 저질러진 이 ‘복수’ 자체가 사실 대단히 놀라운 ‘범죄’였지만, 경호원과 폭력배를 동원한 ‘조직폭력’의 방식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더욱 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찰의 ‘늑장수사’였다. 경찰은 이미 이 ‘폭력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남대문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에게 제대로 보고를 했는가의 여부마저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말았다. 경찰의 존재이유와 존재방식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우려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합통신에서 이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했으나, 실명을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한겨레신문이었다. 한겨레신문에서 처음으로 이 사건의 실명을 보도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재벌은 언론에 대해 말 그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무튼 연합통신과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 국민들은 이 사건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호 법무장관이 5월 15일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김승연 회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다시금 국민들을 경악과 분노로 몰아넣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범죄’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김성호 법무장관의 발언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5월 16일 연합통신 보도를 통해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1. 김 장관은 “어떤 기업 회장이 구속됐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들이 눈이 찢어져 온 것을 보고 흥분했고 혼자 힘으로 안돼 힘센 사람을 데려가 되갚은 사건”이라고 운을 뗐다.

– 이미 누구나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데 ‘어떤 기업 회장’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대단히 어색하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의 ‘복수’를 하려다가 구속된 것을 ‘참 안타까운 현실’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야에 다수의 경호원과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들을 납치해서 폭행을 행사한 엄중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한달 이상이나 수사조차 받지 않다가 언론의 보도로 국민의 질타를 받고 겨우 구속된 것에 대해 법무장관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하다니! 김성호 법무장관의 ‘법 의식’은 경찰의 수사의지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김 장관은 이런 김 회장의 행동을 두고 “사실 부정(父情)은 기특하다. 정상참작 여지가 조금 있다”고 했다.

– 자식이 맞아서 피 흘리고 들어온 것을 보고 화가 나지 않을 부모는 없다. ‘복수’해야겠다고 달려나가는 부모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욱이 경호원과 폭력배를 동원해서 ‘복수’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더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대다수 부모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참고 넘어간다. 그러므로 재벌총수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심야에 ‘보복폭행’을 일으킨 사람에게 ‘부정은 기특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다수 부모들을 모욕하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심각한 폭력범죄에 대해 ‘정상참작 여지가 조금 있다’는 말까지 하다니, 김성호 법무장관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보복폭행’을 권장하는 것인가?

3. 김 장관은 특히 “우리는 집단 왕따나 따돌림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 모든 언론이 (사건 보도에) 20일을 퍼붓고 있다”며 “1년에 몇십만 건 상해 사건이 나오는데 (피해자가) 2주 상해를 입은 이번 사건은 왜 이렇게 오래 가나. 집단 따돌림 아닌가”라고 했다.

– 이 발언에 대해서는 우선 ‘보복폭행 사건의 검찰 송치를 앞두고 자칫 사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솔한 발언’으로 지적되었다. 그런데 김성호 법무장관이야말로 누구보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첫째, 다수의 경호원과 폭력배를 동원해서 심야에 ‘보복폭행’을 저질렀다. 둘째, 경찰은 이 사건의 수사는커녕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셋째, 사건의 ‘주범’이 김승연 회장이다. 국민들은 재벌총수가 ‘보복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황당해 하기도 했지만, 재벌총수이기 때문에 ‘보복폭행’도 저질렀고 경찰의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큰 의혹을 안고 있다. 오늘날 재벌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권력’이자 ‘세습권력’이다. 재벌의 개혁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서 여전히 핵심적 과제이다. 따라서 언론과 국민이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듯 당연하고 중요한 관심을 ‘집단 왕따나 따돌림’으로 매도하다니, 김성호 법무장관은 언론과 국민의 ‘망각증’을 바라고 있는가?

4. 물론 그는 “한편으론 사회의 지도자급이기에 (비난받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아닌가 싶기도 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라는 것은 이 사건과 사실 무관하다. 그것은 법을 잘 지킨 사람이 법 이상의 ‘선행’을 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승연 회장의 잘못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법을 대대적으로 어긴 것이다. 사실 한국의 재벌들은 숱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재벌총수가 직접 폭력범죄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고 해도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이 사건을 다소 엽기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재벌들에게 바라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할 ‘준법정신’이다. 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운하는 자들은 모두 ‘반민주적 특권세력’을 꿈꾸는 자들이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사회의 지도자급다운 준법정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어야 옳지 않을까?

5. 김 장관은 “불공정한 행위로 손해보는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사회적 지위 계급은 법보다 권력, 인맥, 힘으로 과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고 하는데, 이제 주먹을 썼다가 구속됐으니 법이 주먹보다 센 것이 증명된 것 아니냐”며 법의식이 선진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 이 말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의 발언과 연관지어 보자면, 과연 이 말의 진실성을 믿어도 좋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군다나 구속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노라면 더욱 더 그렇다. 언론의 보도와 여론의 질타가 없었다면, 김승연 회장이 과연 구속되었을까? 아니, 이 사건 자체가 또 하나의 ‘루머’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김승연 회장도 이런 생각을 갖고 ‘보복폭행’을 강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증명’된 것은 ‘법의식의 선진화’가 아니라 ‘불신사회’의 원천과 실상인지 모른다.

6. 법무부 홍보관리관실은 16일 “김 회장이 부정에 따른 범행이어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결국 구속된 것은 사법기관에 법과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였다”라고 설명했다.

–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법과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보복폭행’에 대해서는 ‘부정은 기특하다’며 감싸고, 올바른 관심에 대해서는 ‘집단 왕따나 따돌림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는 말로 매도했다는 말인가? 정말로 ‘법과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면, 김승연 회장의 터무니없는 ‘보복폭행’은 매섭게 질타하고, 언론과 국민의 관심에 대해서는 깊은 감사의 말씀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김성호 법무장관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게 했다. 그의 발언이 경솔한 것이었는지 신중한 것이었는지는 그저 부차적일 뿐이다. 그의 발언은 그 자체로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보며 대다수 국민들이 느낀 우려, 즉 재벌이라는 특권층이 법을 무시하는 정도가 말 그대로 ‘특권층’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를 확인해주는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면 손해본다”고 말한다. 심지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다. 법을 믿지 않고 지키는 않는 ‘불신사회’의 참담한 실상이다.

재벌을 비롯한 정치인, 고위관료 등 ‘특권층’이 법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를 만든 ‘주범’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김성호 법무장관의 발언은 ‘불신사회’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 같다. 적어도 법무장관은 올바른 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법가’가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상앙’에게서 배울 것은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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