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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권력에서 ‘법관 독립시키기’


 

이국운 한동대 법학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지난달 23일 이후 법원에서 불거지고 있는 몇 가지 의혹은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관련한 다수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려 했다는 것과 그 구속영장의 심사 및 형량에 개입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대법원이 삼성관련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넘기지 않기 위해 소부 재편을 통해 사건을 재배당했다는 것 등이 그 의혹의 대강이다.
시민들이 혼란스러운 까닭은, 지혜롭고 신사적일 줄만 알았던 법원 내부에도 사건 배당을 두고 정치적 계산이 오간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생각에서 각종 법조비리와 석궁테러 등에도 한사코 법원의 권위를 옹호하던 사람들마저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할말을 잃고 있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는 하루바삐 사실 규명과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사법권 독립의 핵심인 법관의 독립을 법원 스스로 훼손하려 했다는 항간의 의심을 풀 길이 없다. 일부 판사들의 당연한 문제 제기를 조직의 이름으로 무마하려다간 자칫 법원의 권위가 내부로부터 실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에 더하여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사실 어느 사건을 어느 재판부에 배당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권한은 법관의 인사권만큼이나 재판에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다. 재판이란 어느 사건을 어느 판사가 담당할 것인지가 결정돼야만 시작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되었던 법관인사 권한의 문제에 비하여 사건배당 권한의 정치적 중요성은 그동안 거의 주목된 적이 없었다. 단지 실제로 재판업무에 종사하는 판사들 사이에서만 간간이 문제가 되다가 이번에야 여론의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사건배당은 각급 법원장의 권한이며, 그 권한을 위임받아 수석부장판사 등이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민감성을 고려하여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른 무작위 배당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만 배당예규 기준에 따른 임의배당을 시행해 왔다고 한다.

이번 사태는 법원 내부의 이런 사건배당 관행이 상당히 불충분한 것임을 드러낸다. 해당 컴퓨터 프로그램의 공정성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었는지도 문제지만, 배당예규 기준에 따른 임의배당의 경우에 그 권한행사에 대한 합리적 검증과 민주적 통제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도적 개선은 평생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판사들의 기존 근무관행을 재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판사가 임기 동안 특정 재판부에 소속되는 것이 원칙이 된다면, 그만큼 권력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현재 각급 법원장이 가지고 있는 사건배당 권한을 각급 법원의 판사회의와 공유하게 하거나 그 행사과정에 판사회의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이다. 법원장이 지명하는 법관과 판사회의가 선출하는 법관이 법원장과 함께 사건배당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각급 법원장의 임명과정에 민주적 요소를 더하는 일에도 전향적이 될 필요가 있다. 판사의 인사평정 권한과 사건배당 권한을 가진 법원장은 재판에 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핵심통로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이 각급 법원장 인사안을 대법관회의에 부치기 전에 최소한 현재의 대법관추천위원회와 유사한 정도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최근의 법원 의혹 사태는 사건배당 문제에 관한 입법적 개입을 불가피한 요청으로 만들고 있다. 법원 권력으로부터 법관의 독립을 확보할 입법적 방안에 관한 국회의 토론이 시급하다.


 (이 글은 2009.3.4 한겨레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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